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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뜬금없다 싶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저는 머릿속에서 그런 인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있었나를 생각하며 상대방의 다음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얼른 떠오르는 그림은 없었습니다.

 

"오늘 차를 찾았습니다.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강원공업사 공장장님도 정말 친절하고요. 그래서 술 한잔 하고 집에 들어와서 그냥 잠들 수가 없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생각나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사흘 전 이른 아침에 주차장에 서 있던 차를 후진하다가 그만 살짝 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저는 차 주인의 연락처가 있을까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함을 와이퍼에 꽂아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명함을 꽂아두기까지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오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명함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았나 생각들어 그 자리로 다시 가보았습니다. 차와 명함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명함을 다시 빼들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주차장에서 후진하다가 차를 받았는데, 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어떡할까?"

"많이 망가졌어요?"

"아니."

"차 주인에게 연락했어요?"

"연락처가 없어서 못하고, 명함만 꽂아두었는데, 전화도 안 오네. 본 사람도 없는데, 명함 빼올까?"

 

CCTV가 없는 동네입니다. 아내도 망설이더군요. 어떡할까? 다시 묻는 내 말에 아내 역시 얼른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연락이 오겠죠. 주차장에 서 있던 내 차가 그렇게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속상하잖아요. 관리실에 물어보면 차 주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해준 아내가 고마웠습니다. 관리실에 전화를 해보니 모르는 차라고 하더군요. 다시 집을 나와 망가진 차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명함도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잘 꽂아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차의 주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저녁시간쯤이었습니다. 제가 부주의해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차도 좋은 것 아니데요 뭐. 그리고 몇 번 그런 경험이 있는데, 연락처를 남겨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요즘 어디 그런 사람이 흔합니까. 망가진 차를 보고는 솔직히 화가 났지만 명함을 발견하고는 그런 마음 사라졌습니다. 수리만 해주면 됩니다."

"강원공업사에 차를 보내주면 수리해 줄 것입니다.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속상하더라도 이해해주십시오. 렌터카가 필요하시면 보험회사에 요구하세요."

"아닙니다. 저는 카풀을 하고 있어서 불편한 것 없습니다. 교통비만 좀 주시면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연락처를 남겨주신 선생님 때문에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강원공업사의 위치를 설명해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평소 알고 지내던 강원공업사 공장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차가 들어오면 친절하게 잘 해주시라는 부탁을 드리고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를 했습니다. 그 후 보험회사에서 사고처리를 잘 하겠다는 전화를 한 통 받은 후, 잊고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언제 소주 한잔 같이 할 수 있을까요? 꼭 한번 뵙고 싶습니다."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내일이라도 당장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것도 인연이 되겠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니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부끄럽기도 하고요. 명함을 남기면서 본 사람이 없어서 망설였었거든요."

"아닙니다. 선생님은 연락처를 남겨주셨잖아요. 그리고 강원공업사 공장장님께도 친절하게 해주라는 말씀까지 해주셨다고 그러더군요. 정말 요즘 그런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내일 저녁에 만나서 소주 한잔 하자는 말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자신의 차가 망가지고, 그것을 고치고 나서 기분이 좋아 술을 한잔 했다는 그분의 전화가 오늘 저를 분에 넘치는 행복을 느끼게 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제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한 것뿐이었는데, 그것이 어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니 조금은 혼란스러운 경우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내가 해야할 마땅한 도리를 실천하지 않는 요즘 사회가 그분으로 하여금 자신의 차가 망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명함 한 장 받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저는 참 행복한 전화를 받은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gwhappynews.com 에도 실립니다.


태그:#양심,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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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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