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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 계곡 용담의 물줄기
 수타 계곡 용담의 물줄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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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 저 아래를 좀 내려다 봐? 수타사 뒤의 작은 동산 말이야”
“저 아래 냇물로 둥그렇게 감싸인 동산 말이지. 저 둥그런 새알처럼 생긴 동산이 수타사 뒷산 맞아?”
“정말 그러네. 그러고 보니 이 산이 공작산인데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잖아?”

지난 15일 강원도 홍천의 공작산을 오르는 길이었다. 약수봉으로 가는 능선길에서는 산 아래 수타사 뒷동산이 잡목 숲 사이로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런데 수타사 앞을 지나올 때는 몰랐는데 위에서 내려다 본 형상이 정말 둥그런 새알 같은 모습이었다.

날개 펼친 공작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

공작산은 산 모양이 마치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정상에 오르기 전이어서 공작새의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먼저 공작의 알을 보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홍천을 거쳐 승용차를 몰고 찾아간 공작산 입구는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법 넓은 개울을 건너 수타사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 공터에 차를 세웠다. 등산로를 찾아보니 길은 일단 계곡으로 뚫려 있었다. 개천가에는 옮겨 심은 지가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산수유나무들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수유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봄꽃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한 꽃이다. 그런데 벚꽃도 지고 있는 요즘에야 피어난 것을 보면 이 골짜기가 얼마나 깊은 곳인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이 온통 하얀 바위로 뒤덮여 있는 용담근처를 지나자 길은 왼편으로 구부러져 산위를 향하고 있었다. 약수봉으로 오르는 길이었다. 산은 흙산이어서 발바닥으로 느끼는 감촉이 매우 부드러웠지만 경사가 상당히 심했다.

개천가의 산수유꽃 줄기가 거친모습이다
 개천가의 산수유꽃 줄기가 거친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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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의 생강나무꽃, 줄기가 매끈하다
 산속의 생강나무꽃, 줄기가 매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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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입구 산길 안내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3,2km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날씨가 포근하여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것이 겨울보다 훨씬 더 힘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린다.

능선길 주변에 서있는 나무들은 소나무나 잡목이나 모두 날씬하게 쭉쭉 뻗어 오른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능선 옆의 양지쪽에는 진달래도 무더기무더기 피어 있었다.

“어, 이 능선에도 산수유나무 꽃이 피어 있네.”

그런데 일행이 가리키는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니 산수유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다.
그러나 꽃모양이 너무 비슷하여 꽃과 나무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착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 구별법

“저 나무는 산수유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 꽃인 걸”

내가 산수유가 아니라고 하자 모두들 어리둥절해 한다. 골짜기 개천가에서 본 산수유나무 꽃과 구별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자 자세히 보라고, 이 생강나무는 줄기가 매끈하잖아? 그런데 조금 전 골짜기에서 보았던 산수유나무는 줄기가 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처럼 아주 거칠었거든. 하산할 때 자세히 살펴보라고, 초봄에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를 구별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줄기를 살펴보는 거야.”

그러고 보니 생강나무도 산수유처럼 초봄에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다, 그런데 생강나무도 산수유나무처럼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초봄에 피어나야할 꽃들이 늦장을 부리다가 이제야 꽃을 피운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허위허위 한 시간 가량 올라가자 능선길이 나타났다. 능선길은 길도 편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여전히 흙길이었다. 길가에는 연분홍진달래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어서 아름다운 모습이다. 손에 잡히는 진달래꽃 몇 개를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보니 달착지근한 맛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약수봉 정상 풍경
 약수봉 정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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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이 많은 골짜기의 집
 돌탑이 많은 골짜기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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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맘때면 앞동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따먹곤 했었다. 그 시절에는 설탕이 아주 귀했기 때문에 단맛이 나는 진달래꽃도 아주 좋은 군것질거리가 되었었다. 진달래꽃을 따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걷고 있을 때 누군가 산 아래쪽을 바라보고 둥그런 수타사 뒷산을 공작새 알처럼 생겼다고 한 것이다.

약수봉에서 공작산 등산을 접다

약수봉으로 가는 능선길에서 잡목들 사이로 바라본 수타산 뒷산은 정말 둥그런 모습이었다. 더구나 앞과 뒤쪽에 하얀 모습으로 바라보이는 계곡 하천이 감싸며 흐르고 있어서 더욱 아늑해 보이기도 하고 새알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능선길을 걸어 두 시간 만에 약수봉에 올랐다. 골짜기에 세워져 있는 3,2km라는 정상 표지는 바로 이 약수봉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봉우리 위에는 곱게 핀 진달래꽃 앞에 약수봉이라는 표지석 한 개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주변을 향한 다른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아니, 이거 안 되겠는데, 공작산 정상까지는 이 봉우리에서 4,6km를 더 가야 되잖아, 이제 힘이 빠져서 정상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모두들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모처럼 따뜻한 날씨에 가파른 산을 오르느라 지쳐 있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일행 중 한 사람은 전날 모임에서 과음하여 몹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자, 그럼 할 수 없지, 오늘 산행은 이 약수봉에서 접기로 한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내가 결정을 내렸다. 모두들 나이든 사람들인데 공연스레 무리를 하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나리가 활작핀 작은 연못 풍경
 개나리가 활작핀 작은 연못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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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이 흐르는 귕소
 흙탕물이 흐르는 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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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봉 정상에서 간식을 들고 곧 하산길로 나섰다. 하산은 올라왔던 길이 아닌 ‘귕소’라는 안내판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도 흙길이었지만 경사가 심하여 낙엽을 밟고 미끄러지기 일쑤여서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갔다.

산 밑에 이르자 저만큼 안쪽에 수많은 돌탑들이 바라보인다. 누군가 계곡에 집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마당과 그 일대에 수십 개, 아니 백여 개의 돌탑을 쌓아 놓은 것이었다. 돌탑들은 규모도 상당히 큰 편이어서 쌓는데 많은 인력과 돌이 소요되었을 것 같았다.

돌탑들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가의 집에는 바깥뜰에 연못을 만들어 놓았는데 주변에 뒤늦게 피어난 개나리가 여간 화사한 모습이 아니었다. 골짜기 길을 타고 내려오자 수타사 계곡 상류가 나타났다.

흙탕물이 흘러도 아름다운 귕소와 수타 계곡

약수봉 능선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공작새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개울이었다. 계곡은 바닥에 하얀 바위들이 깔려 있거나 절벽 사이로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계곡을 흐르는 물이 흙탕물이다.

상류 어느 지점에서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타사까지의 거리가 1,6km인 계곡을 따라 걷는 경치가 가히 절경이다. 귕소라는 낯선 말은 이 지방의 방언 중에 ‘여물’을 ‘귕’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가마소에서 끓인 여물을 소에게 먹인 곳이라 하여 ‘귕소’라는 아주 특이한 이름이 생긴 것이다. 아름다운 계곡은 수타사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명주 실타래가 모두 풀려야 바닥에 닿는다는 가마소를 지나자 용이 나왔다는 용담이 나타났다.

안에 사천왕상이 서있는 봉황문
 안에 사천왕상이 서있는 봉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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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얼굴 표정의 사천왕상
 특이한 얼굴 표정의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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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은 귕소와 함께 수타 계곡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었다. 계곡 바닥이 억겁의 세월동안 물에 씻겨 생긴 아름다운 모습이 발길을 붙잡고 늘어졌다. 용담에서 잠깐 쉬면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수타사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 한글불경 발견된 수타사

수타사는 입구의 사천왕문부터 특별했다. 이름이 사천왕문이 아니라 봉황문이었기 때문이다. 봉황문 안에 서 있는 사천왕상의 모습도 여느 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아주 특이한 얼굴의 사천왕상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할 만큼 무서운 얼굴이었다.

신라 성덕왕 7년에 창건된 사찰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려  4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인조 임금 때 중창했다고 전한다. 수타사라는 이름은 순조 때 바뀐 이름인데 당시에 지은 건물로는 대적광전과 삼성각, 사천왕문인 봉황문, 흥회루,심우산방과 요사채 등이었다.

이들 건축물 중에서 대적광전은 강원도유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었고,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내부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이 수타사는 보물 745호로 지정된  최초의 한글 불경인 월인석보가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수타사 대적광전
 수타사 대적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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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을 둘러보고 나오자 앞뜰의 넓은 지역에 상당히 크고 넓은 연못을 조성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지만 공사가 끝나 물을 채우고 연꽃을 심어 꽃피우면 아주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었다.

공작을 닮은 공작산의 아늑한 품안에 안긴 공작새알 같은 모습의 동산과 수타사가 따뜻한 봄볕에 고즈넉한 풍경이다. 절집을 돌아보고 나오는 동안 승려들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 몇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태그:#이승철, #공작산, #수타사, #귕소, #월인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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