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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의 최우선 과제를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실현으로 상정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7일(현지시각) 미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갔다. 미 의회 상·하원 지도부를 만나서 한미FTA 비준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미 의회 상·하원은 FTA 비준을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하원은 이 대통령 방미 직전 부시 미 대통령이 제출한 미-콜롬비아FTA의 비준을 위한 이행법안을 거부하는 '저력'을 보인 바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호랑이 굴'에 자진해서 들어간 셈이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 FTA 비준 처리에 대한 다짐을 받기 위해선 이 대통령으로서도 피할 수 없는 길인 셈이다. 청와대측은 "CEO 출신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라고 자평했다.

이 대통령 "오늘 만남을 기다려 왔다" 별렀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등 간부들과 회견을 하고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오전(현지시각)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 등 간부들과 회견을 하고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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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분위기는 좋았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복도에서부터 이 대통령을 영접했다. 이 대통령은 의회 방명록에 별다른 메시지 없이 "이명박(LEE M. BAK)" 이라고만 서명하고 간담회장으로 들어섰다.

펠로시 의장은 "한국 대통령의 국회의사당 방문을 환영하고 깊은 우의를 느낀다"며 "이번 만남이 두 나라 안보증진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방문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는 펠로시 의장이 일부러 '안보 증진'에 힘을 주며, 전면전을 피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작심한 듯 "한미 관계 증진을 위해 오늘 만남을 기다려 왔다"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FTA 반대 의사를 가진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40여분간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시종일관 한·미FTA 비준 지지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FTA를 체결하고, 지역적·범세계적 차원의 협력 등 동맹관계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한·미FTA가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 전반을 강화시키는 전략적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미FTA는 한미 공동의 이익에 기여를 하고, 그것이 한미 관계발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조속한 비준과 발효를 위한 하원 지도부의 관심과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동의안 통과는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국에는 미국 자동차가 4000대 밖에 안 들어가는데, 미국에서는 (한국 자동차가) 50만대 이상 팔리는 것은 언발런스(불균형)하다"며 협상 내용의 구체적인 문제점까지 지적했다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문제와 관련 "전문가가 낸 검역 관련 회의가 있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이 완료되길 기대한다"는 정도로 간단히 답했다. 대신 FTA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에 도움이 되니까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 특히 민주당 소속인 펠로시 의장은 간담회 내내 한·미FTA 비준안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와 관련 간담회에 참석했던 정부 고위관계자는 "민주당 의원들이 FTA에 대해 반대한다는 걸 다 알고 찾아갔다"면서 "(펠로시 의장의 침묵은) 손님을 맞는 입장에서 대통령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이 직접 미 의회 상하원 지도자를 만난 중요한 목적은 FTA에 대한 한국 정부의 강한 의지를 설명하고, 그것이 미 의회에서 비준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간담회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17일 이명박 대통령의 만찬 테이블에 오른 '몬테나'산 쇠고기 요리.
 17일 이명박 대통령의 만찬 테이블에 오른 '몬테나'산 쇠고기 요리.

스스로 '엠바고' 깬 이 대통령, '몬테난'산 쇠고기로 저녁식사

그래서였을까?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미국 주요 기업인들과의 만찬에 참석해 "FTA에 걸림돌이 되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합의됐다고 들었다"며 쇠고기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다. 12시간 뒤 한국에서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발표할 내용을 대통령이 앞서 공개한 것이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거세다는 점 때문에 대통령이 아니라 협상 주체인 농수산식품부에서 발표하도록 했던 청와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른바 기자들에게만 적용되던 '엠바고(보도유예)' 조치를 대통령이 깬 셈이다.

이 대통령의 협상 타결 소식 발표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이 대통령도 흐뭇한 표정으로 "여러분들이 FTA가 반드시 체결돼야 한다는 그런 강한 집념을 보여주셨고, 또 지지를 보내주셨기 때문에 양국의 대표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어제 밤샘 협상을 했다고 들었다"고 치하한 뒤, "새벽에 두 사람(양측 협상대표)이 잠결에 합의한 것 같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여기 계신 분들은 한미 협력에 가장 앞서 계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대통령 입장에서도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쇠고기 문제 등을 들어 FTA 협상에 반대하고 있는 미 하원 의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 대통령으로서는 쇠고기 협상 타결 소식이 누구보다 반가웠던 셈이다. 18~19일 예정된 부시 대통령과의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도 할 말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 대통령이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은 이날 미국 기업인들과의 저녁식사에서 '몬테나'산 쇠고기로 만든 요리를 먹었다.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자 마자 그동안 수입이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를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맛보게 된 것이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한ㆍ미FTA, #쇠고기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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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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