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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평소와 같이 산책을 나서는데 우리 아파트 동 앞에 웬 사람들이 모여 있다. '누가 이사를 하나?' 생각하며 얼른 지나가려는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띈다.

"어머! 아역 탤런트 아니야?"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얼굴을 익혀 온 연기자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리허설준비를 위해 열심히 대본을 보는 연기자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코디와 의상을 준비하는 연기자, 분장을 고치는 연기자, 자전거를 타며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순서를 기다리는 연기자 등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촬영을 하기 전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무 명도 넘는 스탭들과 나처럼 지나가다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는 주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아파트광장이 꽉 찼다.
▲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 촬영을 하기 전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무 명도 넘는 스탭들과 나처럼 지나가다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는 주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아파트광장이 꽉 찼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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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하기 전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무 명도 넘는 스탭들과 나처럼 지나가다가 무슨 일인가 싶어 지켜보는 주민들로 아파트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난 산책을 포기하고 다시 집에 들어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호기심에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방송차도 보이고, 연예뉴스에서만 보아 오던 방송장비들이 즐비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 내외뿐만 아니라 동네 꼬마들은 물론이요, 퇴근하던 사람들, 아는 사람에게 빨리 나와 구경하라며 전화를 하는 아주머니들까지…. 그야말로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다 모였다. 난 옆집 아주머니와 눈인사를 하고 오늘 촬영에 대해 물어 보았다.

마침 아침운동을 함께하는 지인이 대본을 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에 하는 드라마인데 우리 아파트에서 밤 10시까지 촬영을 한단다.

연기자들의 목소리는 아파트를 울리고 구경하는 우리는 소리를 죽여야했다.
▲ 드라마 촬영 장면 연기자들의 목소리는 아파트를 울리고 구경하는 우리는 소리를 죽여야했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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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촬영이 시작 되었다. 조명담당자와 카메라담당자가 연기자 가까이 서 있고 조연출로 보이는 스탭들은 주민들 가까이 서서 촬영에 방해가 안 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자! 시작 합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아이들은 스탭들의 이런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호기심에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을 통통 튀기던 아이들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차량도 동시녹음 방해에 한 몫 했다. 퇴근시간이라 각자 집으로 오는 차량이 늘어났고 "촬영 시작 합니다"라는 소리는 계속 반복 되었다.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로 촬영은 자주 중단 되어야만 했다
▲ "컷!"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로 촬영은 자주 중단 되어야만 했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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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들의 목소리가 아파트를 쩌렁쩌렁 울리니 그제야 모두들 조용해졌다. 연기자들에게 사인을 받던 여고생도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던 주민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연기를 지켜보았다.

"에미야!"

대사를 외치는 연기자.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은 안 나나보다. 똑같은 장면을 방향을 바꿔가며 여러 번 찍은 후에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연기자도 힘든 직업이구나, 연출자도 마찬가지고. 그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데서 싫은 내색 없이 오랜 시간 촬영하는 연기자들에게 간식을 가져다주는 주민들도 있었다.

대사를 가만히 들어보니, 사치와 허영에 들떠 명품을 좋아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야기 인가보다. 기다리고 있던 빚쟁이역할의 연기자들이 그 역할에 맞는 의상을 입고 나와 연기를 한다. 도망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주민들 사이로 연기자가 도망을 갔다. 그러니 그들의 연기에 한층 더 집중하여 보게 되었다.

뜻밖에 찾아온 드라마 촬영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좋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 아파트 입구의 현수막 뜻밖에 찾아온 드라마 촬영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좋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 허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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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보고 산책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애완견 목줄을 잡아당기니 애완견도 촬영하는 분위기를 아는지 안 가겠다고 네 발로 버틴다. 아마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 좋은가보다. 바깥에서 하는 촬영은 다 끝났다며 장비를 거두는 시각, 벌써 주위가 어둑해졌다. 그 때부터 우리아파트 어떤 집 안에서 촬영을 한단다. 집에 들어와 내려다보니 다른 동에서 늦은 시각까지 촬영은 계속 되고 있었다.

일하는 분들은 힘들었겠지만 난 재미난 구경을 했다. 얼굴만 아는 주민들끼리 이걸 계기로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에도 서로 이야기 할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에 드라마 촬영한 것을 알리는 현수막까지 붙은 걸 보면 말이다.


태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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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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