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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을 강화도에서 하루 보낼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강화도 걷기 계획인 '강화올레'에 신청을 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아침엔 비가 조금 내리긴 했지만, 그래도 날씨가 점차 개면서 산책을 하기엔 아주 좋은 날이 되었다.

 

가이드 역할을 해 주신 이유명호 선생님은 비가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에 나는 감기 기운으로 몸이 좋지는 않았지만 꽃과 바람, 그리고 바다, 산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명호 선생님은 즐거운 말솜씨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는데, 남북이 하나가 되고, 세계가 생명을 존중하는 맘을 가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맘을 갖고 강화도 전체를 걸어서 다녔다는 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올레를 통해 자신에게만 숨겨 놓고 조금씩 다녀보고 싶다는 그 소중한 산인 봉천산을 우리에게 공개하는 성심을 보여주셨다.

 

김밥과 생수를 한 병씩 받아 낳고서 일행은 하점면사무소에서 봉천산 길을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까닭에 여유를 가지고 올라도 금방 올라설 수 있는 곳이었지만, 땀이 나오고 숨이 차오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오랫동안 몸을 쉬게 해 주었더니, 더 그랬을 성싶었다.

 

나무와 진달래, 새소리가 청명했다. 봉천대 근처에 올라 점심으로 김밥을 느긋하게 먹고,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봉천대에 오르는 길은 상쾌하고, 진달래가 여기저기에 피어 경치가 보기에 좋았다.

 

봉천대에서 일행은 단체 사진을 찍고, 이유명호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랩(rap) 형식으로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를 합창했다. 즐거운 맘으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생의 소풍을 즐기자는 선생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나옹선사는 고려시대 왕사를 지낸 스님으로 나온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네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말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 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 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저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조그마한 일에도 들뜨고, 슬퍼하고 화내는 것이 사부대중의 일인 듯싶어 산다는 것이 어렵고 고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행은 봉천대에서 길을 내려서서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이름없는 무덤과 진달래 무더기들을 만났고, 숲이 좋은 길도 만났다. 그리고 아직도 옛날 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일행을 만나, 예전에 장사를 지내던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상여를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직 옛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고집스러움이 미련하기보다는 삶의 철학을 지키는 것처럼 보여서 보기에 좋을 때가 있다.

 

마을 길로 내려서서, 수로를 따라 해안가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날씨도 따스로왔고, 길가엔 꽃들과 쑥, 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자라 올라, 새봄의 향기가 듬뿍 느껴졌다. 다리는 점차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멀리 보이는 산과 들, 수로가 한 곳에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로 느껴졌다.

 

 
한참 평지를 걷자, 점차 다리가 아파져 오고, 발바닥도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다니고, 전차를 애용하는 다리라, 제 힘으로 걸어다니는 데 익숙하지가 않다. 나도 공원 산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근래에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꼴찌를 면해보자며, 열심히 걸었던 관계로 겨우 쓰러지지 않고, 해안가에 가 닿을 수 있었다.
 
바다를 만나서 일행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갈대와 어선,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의 경치가 마음을 탁 트이게 해 주어서 좋았다. 아해들은 신발을 벗고 갯벌 속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따라, 어른 몇도 맨발로 갯벌을 만끽했다.
 
우리 일행은 잠깐 해안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바다 냄새와 하늘, 그리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저렇게 검고 냄새나는 갯벌에서도 생명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건 다만 내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생명은 어디서나 나고 청정함을 만들고, 죽고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마지막을 가질 뿐이었다. 짧은 인간의 생각으로 우주를 논하려는 것은 치기임이 분명했다.
 

바다 구경을 끝내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교육장으로 이동했다. 모두 피곤해서 잠시 잠에 곯아떨어졌으나, 폐교를 교육장으로 개조한 '오마이스쿨' 교육장에 들어서 화전을 만들기 시작하자 곧 생기를 되찾았다.

 

모두 소꿉장난 같은 화전을 만들기 위해서, 진달래꽃을 따와서는 꽃술은 제거하고, 동그랗게 예쁘게 떡을 만들어서, 그 위에 꽃을 조심스레 올려놓는 게 할 일이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교정을 흔들고, 사람들은 화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 잔씩 들이켰다. 다정다감한 대화들과, 봄바람과 함께 한 화전은 그 맛보다는 분위기가 더 압권이었다.

 

매년 화전을 만들어 먹자고 한 이유명호 선생님은 그 화전 만드는 의미를 잘 알고 계셨던 듯하다. 아주 어릴 적에 먹어봤던 화전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만들어 보니, 꽃으로 먹는 것을 대신하던, 어렵던 시절도 생각나고, 어려운 삶이지만, 꽃을 사랑할 줄 아는 옛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해서, 참 좋았다.

 

강화도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다리는 아프고, 눈은 감기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피곤함과 막걸리 냄새, 그리고 사람 냄새로 부산했지만, 마음만은 무거워진 발걸음만큼이나 여유로워졌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열심히 도와준 <오마이뉴스> 최진희 팀장님을 비롯한 운영자님들, 이유명호 선생님 모두 고생 많이 하셨고, 감사했습니다. 


태그:#강화도, #봉천산,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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