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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월요일, 생태마을 크리스탈워터스에서의 셋째 주는 똥과 함께 상쾌하게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변비의 기나긴 터널을 뚫고 결국은 이루었다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월요일의 오전 수업이 물 정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우리가 사용하는 물, 특히 변기 물 처리에 관한 이야기들.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일을 보고(그립다) 물을 내리면 나의 똥오줌은 어디로 흘러갈까? 물과 함께 쏴아하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려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나의 피조물들. 궁금하다고 해서 가는 길 함께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별로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드럽잖아. 아무리 내 몸의 일부였다지만.  

 

알고 보니 걔네들은 '쏴아' 하고 변기 안으로 연결된 파이프를 따라 흘러흘러 동네 탱크에 착착 쌓이고, 착착 쌓이면 파아란 트럭, 아침에 보면 그 날 재수가 좋다는 똥차가 와서 걷어가고, 파아란 똥차에 실려 분뇨처리장으로 간단다.

 

거기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화학약품 세례 좀 받으면서 찌꺼기는 가라앉히고 깨끗해진 물은 강으로 간다. 남은 찌꺼기들은 모여 태워지기도 하고 땅에 묻혀지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외롭겠다, 똥오줌들이. 주인조차 더럽다고 냄새 맡기도 꺼려하고 혼자서 파이프 따라 똥차 따라 그 먼 길을 떠나면서도 단 한 번도 환영받지 못하다니.  

 

똥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수업을 받는 에코센터 옆에는 탱크가 하나 묻혀 있다. 에코센터 화장실의 똥오줌은 짧은 파이프를 타고 그리로 다 모인다. 차곡차곡 쌓인 똥오줌을 양분 삼아 벌레들이 생기고 벌레들이 부지런히 우리들 똥오줌을 먹고 나서 볼 일을 봐대면 그건 훌륭한 비료로 쓸 수 있단다.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의 양분이, 필요한 존재가 될 테니 똥오줌으로서는 보람찬 일생이다. 맥스는 가끔 탱크 뚜껑 열어 벌레들 잘 지내나 음식찌꺼기랑 썩는 쓰레기도 가끔 간식으로 주고 잘 신경써준다니 똥오줌들은 외롭지도 않겠다. 게다가 이 날은 우리도 친히 놀러 가줬다. 맥스를 따라 모두 함께 에코센터 뒤꼍의 똥 탱크를 탐방한 것.

 

맥스가 서슴없이 똥 탱크의 뚜껑을 열 때 나는 사실 바짝 긴장을 타고 있었다. 얼마나 더러우며 얼마나 냄새가 날 것인가. 태연한 척 했지만 몸을 표시 안 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뒤로 기울이고 숨을 잠깐 동안 쉬지 않았는데, 그런데….

 

 

별 거 아니네? 물론 휴지와 맥스가 벌레 먹이로 넣은 다른 쓰레기들과 뒤섞여 그리 깨끗해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상상했던 만큼 나쁘지도 않다. 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게 개구리를 두려워하는 나에게는 감점 요인이 된다면 된 달까. 무엇보다 기대했던 냄새가 안 난다. 탱크 내부로부터 시작해서 지붕에서 끝을 맺는 파이프가 또 하나 있다. 냄새들은 그 파이프를 통해 빠진단다.

 

사실 이런 거, 똥오줌을 외롭지 않게 보람찬 일생을 살도록 해주는 거 별 거 아니다. 우리도 자연스럽게 했던 거잖아. 지금도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푸세식 화장실. 더럽다고 이용하기 꺼려했지만 거기에서라면 똥오줌들이 지금보단 행복하겠다. 푸세식 화장실의 똥오줌들은 나중에는 밭에 가서 비료가 되어주겠지. 그럼 그 밭에서 자란 음식을 우리가 먹고, 음식은 다시 똥오줌이 되고 또 다시 음식이 되고.

 

에코센터 옆에서 봤던, 설명하자면 시스템 복잡한 탱크의 최종 목표도 결국 이 순환을 되찾으려는 거다. 냄새가 좀 덜 나는 게 미덕이라면 미덕인 거지. 지금껏 내가 먹고 내가 싸놓고는 나만 깨끗한 척 하려고 똥오줌들 외로운 건 생각도 안 했다. 미안해.

 

닭을 먹는 게 아니라 키운다고라

 

닭을 키우는 건 우리의 프로젝트 중 하나다. 고로 사실 우리는 우리의 닭을 맞이할 준비를 첫 주 때부터 하고 있었다. 닭장 디자인부터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였는데, 뭐 생전 닭과는 켄터키후라이드치킨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닭장에는 물통, 모이통, 알 낳을 둥지, 횃대가 필요하고, 횃대는 무엇이냐 횃대는 닭들이 쉬고 자고 하는 막대기로군, 아하 닭들은 막대에 발을 감싸 앉아 쉬는구나, 라는 사실들을 내가 차차 알아차리고 있을 무렵 이미 닭장은 완성되었다. 사실 별 거 아니다. 횃대까지 갖춰진 이동식 닭장은 준비되어 있었으니 물통 넣고 모이통 넣고 알 낳을 둥지로 쓸 박스 넣고.

 

 

우리가 맡게 될 6마리 닭들은 지난 주 금요일에 도착했다. 사실상 '우리'라 함은 지금으로선 브렌단과 나를 뜻한다. 현재 우리 참가자 6명은 '닭팀'과 '소팀'으로 나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닭팀'은 닭을 돌보고 맥스의 정원을 살피는 일을 맡고, '소팀'은 맥스의 소들이 있는 곳으로 가 어쩐지 주로 잡초를 뽑는다. 나와 브렌단과 샘이 닭팀, 알리샤와 성천이와 우구가 소팀. 그런데 샘이 지금 친구 장례식에 가 일주일째 자리를 비우고 있으니 실질적인 닭팀 활동은 나와 브렌단이 맡아하고 있다.

 

 

"닭들은 어두워지면 반드시 닭장으로 돌아온다"

 

6마리 닭들은 맥스의 닭장에 안착했다. 그런데 재차 말하지만 닭과는 켄터키 혹은 삼계탕 이상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뭐가 어찌 되는지 알리 없다. 브렌단은 채식주의자지만 모르는 건 한결같아 우리는 맥스의 지시에 따라 닭들을 보살피기로 했다.

 

 

닭들을 일단 닭장에 둔다. 3일 동안 두어 닭장이 자기 집이라는 걸 인식하도록 한다. 4일째부터는 오후 5시 반쯤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이 밖에 나가 풀들을 쪼아 먹도록 한다. 6시가 넘어 어두워지면 닭들이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모이를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래서 4일째인 4월 1일, 5시 반에 닭장 문은 열렸고 닭들은 나갔다. 그러나 나와 브렌단은 '6시가 넘어 어두워지면 닭들이 돌아온다'는 포인트에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얘네들이 어디로 머나먼 여정을 떠나 풀을 쪼고 있는 줄 알고 돌아온다고 확신을 한단 말인가? "이거 괜찮을까? 정말 돌아오나?" 하는 우리의 질문에 맥스의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걱정할 필요 없어. 닭들은 어두워지면 반드시, 반드시 돌아온다."

 

이날 맥스와 브렌단은 사라진 3마리의 닭을 찾고자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들고 20분간 닭장 주변을 누벼야 했다. 나는 먼저 집으로 와서 몰랐지만 브렌단한테 전해들은 바로는 맥스는 "진짜 이상하네"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두 마리 닭은 다음날 아침 닭장 앞에 옹그린 채로 발견되었지만 한 마리 닭은 아직까지 실종 상태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닭은 여섯 마리에서 다섯 마리로 줄었다. 그리고 다섯 마리 닭들은 현재 강도 높은 '닭장 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닭장에서 못 나오는 거지 뭐.

 

<크리스탈워터스에서 만난 사람들 ② 정성천>

 

 

성천이를 두 번째 이야기 주인공으로 선정하면서 나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 기쁨이란 한국말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것이요, 슬픔이란 이번이 지나면 아마도 다시는 한국말로 인터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온 것이다.

 

크리스탈워터스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힘들다. 몇 년 전에 한 한국인 가족이 1년간 머무르다 간 이후로는 거주자가 없단다. 그런 고로 성천이는 현재 나와 함께 크리스탈워터스에 있는 유이(二)한 한국인이다.   

 

성천이는 한국농업대학교 재학생. 충남 서천에서 왔다. 할아버지부터 대대로 농업을 이어받고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사를 지으시며 꾸준히 여러 사업들을 시도하고 계신단다. 꽃 축제를 13년째 주최하고 계신다든가 교육농장을 유치하신다든가.

 

재작년에 성천이의 아버지는 크리스탈워터스에도 와서 교육을 받고 가셨다. 성천이는 아버지의 추천으로 크리스탈워터스의 지금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마침 대학교의 2학년 과정이 실습인지라 기쁘게 뛰어들었다.

 

성천이는 나중에 아버지 농장을 이어받을 거라서, 크리스탈워터스에서는 유기농업에 관련한 지식과 경험을 쌓기를 기대하고 있다. 

 

성천이는 성실하고 능력 있다. 우리가 지난주에 죽을 똥을 싸며 데려온 #비는 현재 젖 짜기에 적응 중이다. #비의 주인 에디가 새벽 저녁으로 와서 젖을 짜는데, 우리 중 유일하게 성천이만 새벽 저녁으로 따라가 에디를 돕는다. 그리고 농사를 거들면서 자란지라 김을 매거나 채소를 심거나 할 때면 우리 중에 월등하게 뛰어난 능력을 자랑한다.

 

 

1987년생으로 남자들 중에서는 제일 나이 어리지만 어째 브렌단과 우구보다 성숙해 뵐 때가 있다. 첫째 과묵해서. 물론 그 과묵함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가장 잘 안다. 둘째 사려 깊어서. 무심한 듯 하면서도 정이 많고 세심하다. 첫 주 저녁에 알리샤랑 나랑 남자들을 초대했을 때 채소며 꽃이며 선물로 따온 사람이 성천이다. 트루디가 챙겨준 요거트나 우유, 알리샤나 내가 까먹고 놔두고 오면 우리들 집까지 배달오는 사람이 바로 성천이고. 이외에 성천이는 좋은 점이 많고 많지만 입 아파서 그만 하기로 한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입 아파서 그만하는 거다. 그치 성천아?

 

SPECIAL EDITION

'크리스탈워터스에서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사소한 것들(만의 하나를 대비해!)' 물론 크리스탈워터스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1. 토스터를 수시로 확인하라.

 

이주일 만에 토스터를 한 번 청소해볼까 읏쌰 하고 들여다보니 나방 한 마리가 바삭바삭해져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매일 아침마다 식빵 구워먹었는데….

 

2.  가방을 베란다 바닥에 널어놓지 말아라.

 

안 그러면 우구처럼 이런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은 남자들 집에 성천이만 남았던 사이 일어난지라 성천이는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불명예스러운 시기를 겪었다.


3. 소파 쿠션을 수시로 들춰봐라.

 

 

알리샤가 언제부턴가 소파에서 냄새가 난다고 진저리를 쳐가지고 맡아봤는데 알리샤 냄새 밖에 안 났었다. 그러기를 삼일 째였나 낮에 또 냄새난다고 진저리를 치길래 쳐다봤더니, 팔을 높이 들고 있어 알리샤 네 겨드랑이 냄새 아니겠니? 혼자 생각했지만 차마 말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녁에도 또 냄새가 난다며 급기야 소파 쿠션들을 들쳐보다니 "오 이거야 이거!!!" 하면서 기겁을 했다. 왜 그래? 하며 들여다보니 도마뱀이 죽어있었다.

 

도마뱀. 우리 집에서 자주 눈에 띄던 쪼그만 놈. 우리 집을 이제 자기 집으로 정했나 보다 하면서 알리샤랑 귀여워했는데, 그 놈이 왜 하필 소파로 들어와 있어가지고. 그 놈이 죽었다는 것도 충격이고 게다가 우리 소파 뒤에서 죽었다는 것은 우리 둘 중 누군가에 깔려죽었단 거고, 아 패닉이었다.

 

알리샤랑 같이 비명을 지르며 얼마간 방방 뛰었다. 나는 저거 우리가 못 치우지 누구한테 부탁하자 그러려고 알리샤를 보니 알리샤는 이미 지 손수건을 은행강도처럼 얼굴에 두르고 잡초 뽑을 때 써서 시꺼먼 장갑을 마악 착용 중이다. 웃겨죽는 줄 알았네….

 

근데 알리샤는 내가 왜 웃는지 몰라. 발발 떨면서도 도마뱀을 치우려는 게 웃기고도 기특해서 내가 한다 그러고 발발 떨며 신문지로 납작해진 도마뱀을 잡아 치웠다. 그때서야 나는 도마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 냄새는 강렬해서 알리샤가 티트리 스프레이를 난사하고 난 후에도 안 가시고 족히 이틀 동안은 남아있었다.


태그:#크리스탈워터스, #생태마을, #생태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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