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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영탁 연구원이 "왜 우리는 핀란드 ‘몰입교육’에만 흥분하는가"라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핀란드 교육이 전세계적으로도 훌륭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명성이 자자한데, 보수나 진보나 핀란드 교육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이식하려고 하여 우려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핀란드 교육의 세 가지 성공 비결은 무상교육, 공동체 지향 교육철학, 우수한 교사이니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전국민적인 논의와 운동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이영탁의 취지에 백분 공감한다. 외국 사례의 무비판적 이식과 실패의 반복이 한국교육의 고질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을 괴롭히고 있는 신자유주의 교육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따라서 외국 사례의 기본 철학 및 방안, 그리고 한국교육의 토양과의 비교 등을 면밀히 진행한 가운데 교육정책을 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영탁이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이영탁이 우려하는 지점, 즉 핀란드 교육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이식하려는 세력에 이명박 정부와 함께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가 거론되었기에 반론성 의견을 남긴다.

모든 공약은 그 하나만으로는 한계 뚜렷

이영탁이 문제삼는 부분은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공약이다. "심상정 후보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모형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핀란드 종합학교의 기저에 깔려있는 공교육에 대한 철학과 교사들의 열정을 담보하지 못한 채 제도의 개선만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단순히 눈에 띄는 몇몇 장점들만을 들여올 경우 선진 유럽형 자율학교는 또 다른 입시명문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공약만 놓고 보면,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심상정의 공약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선거공약은 그 하나만 놓고 보면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학등록금을 예로 들어보자. 여러 정당이 등록금을 낮추겠다고 공약한다. 액수 상한제, 후불제, 서민맞춤형 등록금 등이 방안으로 제시된다. 만약 이 방안들이 실현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일단 등록금 부담이 확 줄어들 것이다. 그 다음엔? 등록금이 줄어 한해 500만원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면, 사교육비가 늘어날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중학교 무상교육이다. 어느 정도 무상교육이 되어 20만원 내던 돈이 고스란히 지갑에 남게 되자, 20만원은 학원으로 향했다.

물론 등록금 부담이 줄고 사교육비 지출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건 등록금 정책의 잘못이 아니다. 등록금 정책은 충분히 자기 몫을 했다. 다만, 등록금 정책의 정신이 학벌이나 사교육 등의 다른 영역에서 벌어지지 않은 게 문제다. 하지만 더 우스운 것은 사교육비로 빠지는 게 우려되므로, 사교육이 없어질 때까지 등록금을 내리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정당의 선거공약은 단지 그 하나만 놓고 보면 안된다. 선거공약은 일종의 세트다. 한국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염두에 두면서, 각각의 영역에 맞게 대학등록금은 이렇게 하고, 학벌사회는 저렇게 하고, 사교육은 요렇게 하겠다고 제시한다. 전체를 생각하면서 부분을 밝히는 거다.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학벌 철폐·입시폐지·대학평준화와 한 세트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로 돌아가보자. 이 공약은 지역 교육공약이다. 심상정이나 심상정이 속한 진보신당의 전체 교육공약이 아니다. 전체 교육공약 중 지역에 해당하는 한 부분이다. 지역 교육공약이기 때문에, 그 안에 학벌사회 해소나 대학서열체제 해소와 같은 큰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따라서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전체 교육공약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체와 지역 교육공약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야 한다. 하지만 이영탁은 심상정이나 심상정이 속한 진보신당의 전체 교육공약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상정의 홈페이지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곧,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 본 사람은 심상정이 아니라 이영탁이다. 동네 슈퍼에 가서 아파트를 왜 안 파냐고 하면 안된다.

참고로, 심상정이 속한 정당이자 필자가 있는 진보신당의 전체 교육공약은 다음과 같다.

"학력학벌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대학졸업장을 폐지하여 학벌없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각종 입시의 영어시험부터 폐지(자격고사화)하고 단계적으로 입시도 폐지하겠습니다"
"국공립대부터 함께 뽑고 가르쳐 대학서열구조를 없애겠습니다"
"대기업의 법인세로 대학등록금 걱정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두발 자유화와 체벌 금지로 학생인권을 보장하겠습니다"
"학급당 학생수 25명으로 줄여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교육과정 자율화로 다양하고 특성화된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학교자치를 실시하여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주인되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대학교수 1만명 증원으로 비정규직 교수를 정규직화하고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겠습니다"
"의무교육(초중학교)은 줄세우기 시험을 보지 않겠습니다"
"학교운영지원비, 학교급식비, 수업료와 입학금를 징수하지 않고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사교육 수강료 신고포상금제로 학원비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학벌 철폐, 영어부터 입시 폐지, 국공립대부터 대학평준화'를 슬로건으로 하는 전체 교육공약과 심상정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지역 교육공약을 함께 놓고 그 모습을 떠올려 보자. 특히, 무상교육, 공동체 교육철학, 우수한 교사 등 이영탁이 밝힌 핀란드 교육의 세 가지 비결과 비교해보자.

핀란드 교육의 비결은 세 가지 말고 더 있다

이영탁은 핀란드 교육의 비결로 무상교육, 공동체 교육철학, 우수한 교사 등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부분을 이식하려고 하지 말고, 핀란드 교육의 시사점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영탁이 핀란드 교육의 비결로 제시한 세 가지를 한국에 적용하면 제대로 작동할까. 아니, 현재의 핀란드 교육을 한국에 그대로 가져오면 제대로 작동할까. 불행히도 핀란드처럼 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핀란드와는 달리 학벌사회이고,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하고, 학력간 학벌간 임금격차가 심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이미 알고 있다. 학부모 대부분은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로 사교육비를 지목하는데, 사교육비의 제1순위 원인이 학벌사회라고 답한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사교육이란 학벌사회이자 대학서열사회인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비록 오답임을 잘 알고 있지만, 정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빵점은 면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오답이라도 찍는 거다. 따라서 교육부문이 핀란드처럼 된다 하더라도, 학벌사회가 지속되는 한 핀란드형 교육은 다시 한국형 교육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학벌사회의 문제는 곰곰이 따져보면, 교육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학벌사회는 대학서열이라는 교육의 문제도 있지만, 임금격차, 사회복지, 취업 및 승진 차별 등의 사회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모색한다면, 핀란드 교육의 비결뿐만 아니라 학벌사회 해소책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교육정책, 노동정책, 사회복지정책이 한 묶음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핀란드와 한국의 학교교육 간단 비교
 핀란드와 한국의 학교교육 간단 비교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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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 그리고 핀란드 사회와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일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면, 핀란드 학교가 1960년대부터 교육개혁을 단행하고 거의 10년 주기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처럼, 한국 또한 하나하나 끈질긴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른다.

이게 성공하려면 이영탁이 언급한 전국민적 논의와 합의는 필수다. 그런데, 논의의 자리는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총선도 그 하나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정책선거가 실종된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만큼 선거 이후에라도 사회적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1963년 기본 방향에 대한 의회의 결정이 내려졌으나 1972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교육개혁을 실시한 핀란드의 사례처럼, 교육이란 건 사회적 합의와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 * 송경원은 노회찬과 심상정의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다.



태그:#핀란드교육, #진보신당,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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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고 지금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에 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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