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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반찬 해가면 좋겠냐?"

"음~지난번에 해 준 부추생조리개 맛있던데."

 

"그래? 알았다, 또?"

"뭐, 엄마가 알아서 적당히 해 오세요."

 

"동생은 뭘 먹고 싶어 하냐?"

"잡채 정도?, 아니 그건 엄마가 너무 힘들겠다."

 

"아니, 힘 안 들어, 그럼 일단 부추생조리개랑 잡채, 그리고 나머지는 엄마가 알아서 챙겨 갈께."

"옙, 참 김치도 거의 없네요!"

"알았다. 그럼 내일 보자."

 

오늘(2일)은 부산에 있는 아이들한테 가기로 한 날이다. 어제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고 준비를 했다. 한동안 못 갔다. 젊은 지네들이 오면 얼마나 좋아. 좀 한가한 날 오면 가까운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서 챙겨 주겠건만. 잘 움직이지 않는 애들 기다리다가 내 마음만 타는지라, 역시 또 내가 움직여야 한다. 어쩌겠는가, 오늘은 작정하고 부산에 있는 애들한테 다녀오기로 했다. 늘 이런 식이다. 거의 한달 동안 밑반찬을 해다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애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고, 부추생조리개, 버섯볶음, 배추김치, 무김치 등을 준비했다.

 

오늘은 반찬 통에다 넣지 않고 투명봉지에 담아 짐의 무게와 부피를 줄였다. 그러고 보니 손에 들고 다니는 가방보다는 배낭을 이용해야 했다. 왜 이걸 그동안 생각 못했을까. 늘 낑낑대며 팔이 빠지도록 아파하며 들고 가다서고 가다서고 하면서 걸어 다녔는데, 배낭에 넣으면 좀 나을 것 같았다. 두어 개만 통에 담고 나머지는 투명봉지에 넣은 반찬을 배낭에 차곡차곡 넣었다. 이렇게 하길 정말 잘한 듯하다. 얼른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오늘 날씨는 아주 맑음, 화창하다.

 

집밖으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가는 길. 아파트 화단에 심어놓은 벚꽃나무에 벚꽃이 팝콘처럼 피어 있었다. 햐~이젠 벚꽃이 완연하다. 어쩜, 지하철역이 가까워오자 꽃구름이 내려앉았을까. 저만치 길 양쪽으로 길게 도열해 있는 벚꽃나무들이 환하다. 꽃구름 둥실둥실 떠올라 있는 것 같다. 벚꽃나무들은 한낮의 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참 상쾌한 날씨다. 내 등의 짐이 제법 무거운지 어깨가 점점 무거워졌다. 지하철을 탔다. 낮이라 그런지 조금은 한적한 지하철은 선로위로 조용히 미끄러지며 곧 출발했다. 준비해 온 책을 펼치고 책 속에 머리를 파묻는다. 활자가 마음속에 깊이 박히지 않고 튕겨나간다. 바깥풍경이 자꾸만 나를 잡아끈다. 책 속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책에 파묻기를 반복하다 도무지 안 되겠다,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대자연의 신비에서 눈을 돌리긴 쉽지 않다. 긴 둑길과 높고 낮은 산과 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흐르는 강물까지. 찬란한 봄날,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낙동강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물이 올라 유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고, 강물 위에 한낮의 햇살이 은빛비늘처럼 반짝이며, 벚꽃, 개나리, 동백꽃, 목련꽃들이 여기 저기 피어있다. 또 죽은 듯한 메마른 땅 위로 생명의 움이 트고, 갈아엎어 놓은 땅과 들에는 봄 아지랑이 번져 가는데 어떻게 책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있을 수 있나. 아예 책을 덮고 낙동강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호포역을 지나 금곡까지 갔다.

 

금곡에서부터는 지상이 아니라 드디어 지하로 들어간다. 지하로 들어서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산에 도착, 잠시 내려놓았던 배낭을 어깨에 메고 지하철을 벗어나 경사진 길을 올라간다. 등 뒤에 맨 배낭은 아까보다 더 무겁다. 그래도 손에 들고 낑낑대며 왔을 때보다 한결 가볍고 편했다. 이곳에도 벚꽃이 만개해 꽃구름을 이루고 있었다.

 

'툭!' 등 뒤에 있던 짐을 내려놓자 좀 살 것 같다. 배낭을 열고 준비해 온 밑반찬을 꺼내자 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완연하다. 아들은 요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20대, 찬란한 청춘인 것 같지만 그 시절을 지나는 젊은이들에겐 결코 찬란하지만은 않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진통을 겪으며 힘겹게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아참, 냠냠이(고양이)가 출산했던 새끼들은 얼마나 컸을까. 냠냠이는 딸이 만들어준 박스로 된 제 집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갓 태어났을 땐 물에 빠진 생쥐 같았던 아기고양이들이 이젠 털이 보송보송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새끼고양이 다섯 마리가 냠냠이 품속으로 자꾸만 파고들고 있고, 냠냠이는 모든 것 다 내어 줄 듯한 표정으로 새끼들에게 몸을 내맡기고 있다.

 

 

새끼고양이들은 자꾸만 더 깊이 머리를 파묻고 젖줄을 파고든다. 냠냠이가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나, 다섯 마리의 새끼들이 어미 고양이 품에 안겨 젖을 먹는 광경에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냠냠이가 새끼를 배고 있을 땐 예민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주 편안하고 넉넉한 표정을 짓고 있다. 표정이 달랐다. 어쩌면 슬픔과 연민이 깃든 표정 같기도 하다. 아기 고양이들은 지네 엄마가 화장실 가느라 잠시 움직일 때면 다섯 마리가 하나로 모여 누워있었다. 참 신기하다.

 

봄이라서 참 다행이다. 추운 겨울에 새끼고양이들이 태어났다면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까. 찬란한 4월은 이 어린 것들에게도 복이 아닐 수 없다. 반찬통에 반찬을 담아 보관하라고 이른 뒤 다시 나왔다. 벚꽃이 환한 거리를 걸어 지하철을 타고 양산에 도착했다. 역시 이곳에도 벚꽃이 환하다. 밤늦게 아들한테서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냠냠이네 식구 말고, 얼룩덜룩 점박이 고양이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냠냠이가 새끼를 놓고 난 뒤 자꾸만 돌아다니는 얼룩고양이를 현관 앞에 묶어 두었는데 갑자기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만 해도 현관 앞에 줄로 묶여 있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냠냠이와 냠냠이 새끼들한테 신경 쓰느라 얼룩이한테 신경을 못써줬다고 가출을 한 것일까. 곧 돌아오겠지. 오늘 하루가 진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준비해서 또 부산까지 왕래하고 하다보니 나도 꽤 피곤했었나보다. 자꾸만 하품이 나온다. 이 시간쯤 애들도 잠이 들었을까. 늦게까지 또 깨어있을까. 애들 잠든 모습과 냠냠이네 식구들이 잠든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태그:#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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