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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불과 2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번 18대 총선은 '처음으로 참여하는 총선'이라는 점에서 내게는 특별하다. 17대 총선이 있었던 4년 전, 나는 만으로 19살이었지만 당시에는 선거가능연령이 만 20세여서 아쉽게도 투표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4년 후, 드디어 내 손으로 국회의원을 뽑을 수 있게 된 나는 지난 주 이미 부재자신고까지 완료했다.  

 

나의 선거구는 대학입학 전까지 20년을 살아온 부산광역시 남구을. 한나라당 텃밭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서 세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던 김무성 의원이 공천에서 탈락한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남구을에는 김무성 후보 이외에도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정태윤 후보, 평화통일가정당 김인숙 후보 그리고 무소속 박재호 후보가 출마했다.

 

 

부재자신고도 했고, 후보자 등록도 끝났겠다, 지난 26일 나는 이 네 명의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놓고 있는지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보기로 했다. '매니페스토 평가'를 시작하는 초보 유권자의 마음은 처음엔 설렘으로 가득 찼다. 이게 바로 '투표의 즐거움'일까.  

 

'매니페스토 평가'위해 들어간 후보들 홈페이지... 공약아 어딨니

 

 

먼저 각 후보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김무성 후보의 경우, 남구을에서만 3선을 지낸 후보답게 그간 남구발전을 위해 노력한 성과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가 이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앞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4년 동안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언급된 것이 없었다. '남구발전과 국가발전을 위해 더 큰 일을 하겠다'고는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았다.

 

한나라당 정태윤 후보 홈페이지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경우 홈페이지 메인에 '정태윤이 말하는 정책과 비전'이 유권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분명한 것은 우리 남구를 새롭게 건설할 방법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를 제대로 이끌어 줄 리더가 없었고 또한 우리가 제대로 노력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과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누가 앞장서 나가느냐입니다….'

 

남구를 새롭게 건설할 많은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과 '자신감'말고 더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는 정 후보 홈페이지에 나와있지 않았다.

 

후보자 등록이 끝난 것은 26일이지만, 정 후보의 공천이 결정된 것은 3월 13일, 김 후보가 출마를 선언한 것은 14일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제대로된 공약을 알 수 없다니. 언론보도를 찾아봐도 한나라당 공천과 관련된 두 후보의 갈등에 대해서만 나와 있을 뿐 국가 발전을 위해 또 남구 발전을 위해 내건 공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른 후보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평화통일가정당 김인숙 후보는 일단 홈페이지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그러다 평화통일가정당 홈페이지에서 김인숙 후보의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클릭을 해보니, '부산 남구을 평화통일가정당 김혁해'라는 블로그 명이 떴다. 김인숙 후보 블로그에 김혁해가 웬 말인가 싶었지만 '아직 글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후보 프로필에 있는 후보 인터뷰 역시 아직 '준비 중'이었다. 결국 김인숙 후보에 대해서는 증명사진과 주요경력 이외에는 어떤 정보도 얻어내지 못한 채 씁쓸한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떠나야 했다.

 

국가-지역구 발전위한 구체적 공약없어... 뭘 보고 찍으란 거야

 

이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초 나의 계획은 남구을에 출마한 후보들의 매니페스토를 하나 하나 평가하려던 것이었는데, 공약이 뭔지 조차도 알 수 없다니….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매니페스토 평가지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마지막으로 무소속 박재호 후보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그래도 후보 네 명 중 적어도 한 명은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했겠지, 정말이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

 

먼저 박 후보는 '우리 부산, 남구는 지난 12년의 일당 정치 독점으로 한 걸음도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오늘의 부산의 경제위기와 남구의 발전 정체는 이러한 독점 정치구조에서 비롯되었습니다'라며 김무성 후보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이박대리전에서 시민주권을 찾아드릴 독립후보'가 되겠다며 자신을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경제발전만을 주장해서는 남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남구의 주거, 산업, 교육, 문화 등 모든 것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정책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야만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그가 말한 비전의 전부였다. '남구의 주거, 산업, 교육, 문화'를 어떻게 복합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것인지… 앞서 언급한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너무도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이처럼 각 후보들은 모두 자신이야말로 '남구의 일꾼'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근거는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 친이냐, 친박이냐, 평화통일가정당이냐, 무소속 후보냐 라는 간판만 보고 투표할 수도 없고…. 나는 답답했다.

 

남구을 뿐만아니라 다른 지역구 후보들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본 결과, 유권자들이 알기 쉽도록 자신의 매니페스토를 제시해 놓은 후보는 찾기 힘들었다. 몇몇 후보의 경우 홈페이지에 공약은 없고 선거운동원 모집, 후원금 납부 안내 창이 가장 먼저 떠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홈페이지는 선거 공보물이 나오기 전까지 유권자들이 가장 손쉽게 각 후보들의 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잘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27일부터 각 후보들 뒤늦게 홈피에 공약 제시했지만... '공론의 장' 언제

 

다행히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 27일부터는 각 후보들의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구체적인 정책이 제시되고 있는 듯하다(나의 선거구 후보들의 홈페이지는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중앙 선거관리 위원회도 28일 각 후보자들의 공약을 업데이트 할 예정이라고 한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란?

 

후보자는 당선되었을 때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사업의 목적, 착수 우선순위와 완성시기, 예산 확보 방법 등 구체적인 공약을 개발하여 제시하는 것입니다.

 

유권자는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서 가장 실현가능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자가 임기동안 자신이 제시한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평가하여 다음 선거 때 또 지지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거가 불과 2주, 부재자 투표는 한 주도 남지 않는 상황에서 이는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홈페이지에 공약을 제시한 후보들 중에는 앞서 언급한 후보들처럼 일찌감치 공천을 받아놓았거나, 출마를 결심한 후보들도 많았다.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의 한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공천이 너무 늦게 끝나고 심지어 후보자 등록 하루 전 날 공천이 마무리 된 경우도 있어서 전체적인 선거운동 일정이 늦춰져 유권자들이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힘든 선거가 되었다"며 "적어도 후보자 등록 한 달 전에는 공천을 완료하고 유권자들에게 공약을 제시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빠른 시일 내에 후보들의 공약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공약이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엔 현재로써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각 후보의 공약에 대해 개인 혼자서 평가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남구을에 출마한 각 후보들의 정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고 또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싶다. 그러나 당장 4월 3일 부재자투표를 해야 하는 나는 지금 막막하다. 나는 과연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태그:#매니페스토, #정책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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