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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늘 묻는 말이 있다.

 

"학교 다니기 재밌냐?"

"응 그냥…."

"대답이 뭐 그려? 재미없으면 다니질 말어."

"학교에서 애들하고 노는 건 재밌는디, 오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좀 힘들어."

 

중학생이 된 인효 녀석이 시골과 도시를 오가야 하는, 그 시차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녀석의 등굣길을 따라 나섰다.

 

"학교 다니기 재밌냐?" "응 그냥…."

 

아침 6시 50분. 학교가는 시골길엔 아무도 없다. 인효와 단 둘이다. 한창 힘겨운 세상을 배우고 있는 '인효의 길'처럼 눈 앞에 안개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길 옆 개울가의 물소리는 맑디맑다. 헌데 개울물에 기름띠가 섞여 흐른다. 저 위에서부터 저 아래까지 끝이 보이질 않게 기름띠가 흐르고 있다.

 

"어이구 워떤 눔이 개울에다가 기름을 버렸어 이거!"

"어제는 똥 기저귀도 떠내려 가든디."

 

뒤에서부터 차 한대가 휑하니 앞질러 간다.

 

"저 차 여기쯤 가믄 꼭 지나가는디…."

"어뗘? 학교 재밌어? 고 놈은 인저 애들 안 괴롭히지?"

"반장 되고부터 착해졌어."

 

입학하자마자 교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었던 녀석에게 반 아이들이 반장을 시켜줬더니 아주 얌전해졌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짱을 먹었다'는 그 녀석은 반장이 되자마자 전혀 딴 아이로 돌변했다고 한다. 인효 녀석에게 공포분위기를 몰아가는 녀석을 반장 시켜주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그게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인효 녀석은 물론 다른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 '짱을 먹었다'는 녀석은 자신이 반장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태어나서 가장 기분 좋은 일이 벌어졌다고 소감을 말했다고 한다. 녀석은 그동안 온갖 골통 짓 다 하고 다닌다면서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억압을 당했을까 싶다.

 

녀석은 어쩌면 그동안 어른들에게 당한 억압을 고스란히 친구들을 되돌려줬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괴롭혔던 친구들이 반장으로 뽑아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자신을 인정해 주는 반 친구들이 고마웠을 것이다.

 

녀석은 반장이 되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놀려도 싱글벙글 웃기만 하는 '착한 바보'가 되었다고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들 앞에서 착한 척, 바보처럼 헤헤거리다가 국회의원 완장을 차게 되면 추접하게 돌변하는 저들과는 전혀 다르다.

 

'초등학교 짱'에서 반장이 된 아이와 국회의원

 

"어제는 어떤 애가 학교 매점에서 햄버거 먹고 배탈이 나서 병원 갔어. 어제 햄버거 먹은 아이들은 다 검사 받았어, 어휴 다행여, 나두 먹고 싶었는데 참었거든."

"그려 그러니께 아빠가 그런 거 먹지 말라잖어, 근디 수업시간은 재밌냐?"

 

"어제는 또 어떤 선생님이 우리 반 애를 무릎꿇게 하고 허벅지를 때렸다."

"왜? 왜 때려!"

"뭐 외워오라고 숙제 냈는디, 그거 모른다고."

 

"그랬다고 때려? 얼마나 때렸는디?"

"두 대 때렸는디, 딱딱 큰 소리가 날 정도였어, 맞은 애는 울고. 도둑질한 것 두 아니고, 친구들 괴롭힌 것도 아닌디, 너무 심하게 때렸어…."

 

얻어맞은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굴욕감을 느꼈을까? 맞고 있는 아이를 지켜봐야 했던 반 아이들은 또 얼마나 불안하고 공포스러웠을까? 화가 났다.

 

"그려, 니 말이 맞어, 모른다고 맞아야 할 것이 아닌겨, 너는 절대로 맞지 말어, 모르는 게 죄냐? 만약 선생님이 모른다고 때리면 절대루 맞지 말어, 뭐라구 하면 아빠가 맞지 말라구 했다구 혀, 그리고 니 친구들 그렇게 심하게 매질하면 모르는 게 죄냐구 따져. 알았지? 좋지않은 일에는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하는겨."

 

아이들 간의 힘다툼이 정리되는 듯 싶었는데 이제 선생의 억압이 시작됐던 것이다.

 

경쟁제일주의·개발지상주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일제히 일제고사가 시작됐다. 일제고사는 교육을 경쟁체제로 돌입하겠다는 의미다. 학교는 경쟁이라는 전쟁에 돌입했다.

 

학교 저마다 다른 학교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선생들을 부추기고, 몰지각한 일부 선생들은 발 빠르게 아이들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르면 무조건 맞는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할 것이다.

 

실력 향상, '살아남기 경쟁'에서 학생의 인권이 끼어들 자리가 어디 있을까 싶다. 학생의 인권침해는 이미 박정희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오면서 뼈저리게 온몸으로 견뎌 온 일들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 나는 학교에서 '학생의 인권'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들네 반의 체벌

 

중학교 1학년 때 늘 장교 출신임을 강조했던 선생이 있었다. 그 선생에게 뺨을 맞는 일은 예사였다. 그것도 좌우 왕복으로 시뻘겋게 뺨을 맞기도 했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들은 단단히 각오해야 했다. 높은 난간에 발을 올리고 손깍지를 낀 채로 엎드려뻗쳐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군대에서 군기 잡기로 자행됐던 '얼차려'가 공공연하게 학교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잘난 '사랑의 체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행했던 것은 일류고등학교에 좀더 많은 학생들을 내보내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선진 국가를 향한 초석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학생 인권 침해는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오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과연 인효네반 교실에만 국한된 것일까?

 

학생들을 경쟁체제로 몰아붙이고 있는 일제고사는 그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학교의 우열을 가리는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되면 '실력향상'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또 어떤 가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체벌은 경쟁에서 나온다. 경쟁 속에서 '사랑의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매질은 또 다른 매질은 낳을 뿐이다. 대물림 된다. 인권문제는 안중에도 없이 선생이 매질을 가하는 것은 학창시절 매로 다스렸던 선생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학교 다닐 때 '사랑의 매'를 맞았기에 좋은 대학 나와 오늘날의 선생님이 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얻은 지식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얻어맞고 습득한 지식은 결국 누군가를 억압하는데 쓰이게 될 것이다. 악습이다. 악습은 끊어야 한다.

 

"친구들하고 싸우다가 얻어맞을 수는 있지만, 모른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때리면 절대루 맞지 말어, 모른다는 것은 절대루 맞아야 할 죄는 아닝께."

 

인효에게 다시 한번 강조할 무렵 버스 타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집에서부터 15분 걸렸다. 걷기에 딱 좋은 거리다. 아쉽다. 녀석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삼삼한 시골길을 함께 걷는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은 없냐?"

 

"인제 기분 나쁜 얘기는 그만 하자, 그래두 학교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을 거잖어."

"우리학교 야구부 투수 엄청 잘 한다. 공이 너무 빨라서 공이 안보여, 공이…."

 

인효는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는 유명 야구선수가 다녔던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 운동장을 야구부 아이들이 독차지하는 날이 많은 모양이다.

 

인효는 방과 후에 가끔씩 야구부 아이들 연습 하는 것을 구경하고 온다는 것이다. 야구장 한번 가보지 않은 시골 촌놈이 무척 신기하기도 할 것이었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야구부 아이들의 빽빽 소리치는 낯설기만 한 기합소리며 자신보다도 몇 배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신기하고 재밌을 것이었다.

 

"아, 요새 재밌는 일 또 있다. 쫌 있으믄 전체 회장 선거가 있는디, 3학년 형들이 '2번 찍어, 2번' 해가며 돌아다니는디 엄청 웃겨."

"니들 초등학교 때 선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

"시내 돌아다니는 무슨 국회의원들 같어. '예, 알았어요'하면 장소를 이동해 다른 애들 한티 다가가서 '2번 찍어, 2번 찍어'라 하는디, 엄청 웃긴다니께."

 

5분쯤 기다리자 저만치서 인효가 타고 갈 버스가 다가온다. 인효에게 "재미있게 놀다 와라" 인사말을 건네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길 건너에서 우두커니 서서 버스 안을 훑어본다. 혹시 인효와 초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탔을까? 버스 창문이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녀석들이 보고 싶다. 체벌 없이도 아이들을 사랑할줄 알았던 좋은 선생님 밑에서 사이좋게 웃고 까불고 재미있게 어울려 공부하며 놀았던 녀석들이 가슴 아리게 보고 싶다.

 

녀석들 역시 인효처럼 험난한 세상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배워야 할 것보다는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더 많이 배우고 있을 것이다. 그 잘난 지식을 배우기 위해 '잘나고 못난 아이' 갈라놓는 경쟁 속에서 억압과 복종을 배우고,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 무릎 꿇고 매를 맞아야 하는 굴종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세상살이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어리석고 어리석은 어리석음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아, 이런 학교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인효는 이런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 것일까? 인효가 탄 버스가 멀리 사라진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태그:#체벌, #진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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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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