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나라당 후보(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였던 김택기씨의 돈 선거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당 밖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구태를 재연한 한나라당을 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이 따갑고, 당내에서는 김씨의 공천을 둘러싼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26일 오전 긴급회의를 소집해 김씨의 제명을 결의한 뒤 윤리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공천을 고집한 공천심사위에 이번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윤리위는  김씨의 공천을 반대했지만, 공천심사위가 이를 끝내 거부했기 때문이다. 윤리위는 김씨가 ▲ 93년 국회 노동위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리다가 실형을 선고받았고 ▲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구 여당에 몸 담았다가 공천을 받으려고 최근에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점을 들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인명진 윤리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심위에 참여한 당내 인사들은 (김씨가) 공천받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당헌당규에 저촉되는 공천을 했다"며 "누군지 조사해서 해당행위가 밝혀지면 이를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 위원장은 "당규대로 시행할 책임이 있는 사무총장이 당헌당규를 어기는 공천을 용납했다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방호 사무총장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공천 과정도 논란... 1차 심사에서 탈락했다 뒤집어

 

윤리위의 문제 제기가 아니더라도 김씨의 공천은 최종 결정까지 당내에서 적잖은 논란을 일으켰던 게 사실이다.

 

김씨의 지역구에는 총 6명이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는데, 당초 김씨는 1차 심사에서 탈락해버렸다. 그런데 김씨는 3배수 후보들(김용학·문태성·최동규)을 제치고 지역구 공천을 받아내는 '뚝심'을 발휘했다.

 

경쟁 후보들은 '날벼락' 같은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나라당 예비후보였던 김용학 전 의원은 9일 기자회견에서 "3배수에 올라온 후보들 중 한 사람이 됐다면 승복할 수 있다. 그러나 3배수에도 들지 못한 정치철새가 공천을 받은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한나라당 지도부도 17일 공심위에 '김택기 공천'의 재심을 요청했지만, 공심위는 3일 뒤 이 같은 요청을 기각했다. 공심위 내부에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공천이 재의결됐고, 당 지도부도 더 이상 공심위 결정에 이의를 달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공심위가 힘을 실어줬던 김씨가 금품 살포 사건으로 낙마한 상황에서 김씨를 공천한 심사위원들이 '오판'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계파간 나눠먹기 산물? 공천심사위원들에게도 로비?

 

그렇다면, 공심위는 왜 이렇게 '김택기 카드'에 집착했을까?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풍문이 나돌고 있다.

 

첫째는 '계파 안배설'이다.

 

김씨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를 위해 지역에서 득표 활동을 한 인물인데, 이명박·박근혜 양대 계파가 공천 문제로 갈등을 빚는 와중에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은 박근혜측 몫으로 한다"는 묵계를 맺었다는 얘기다.

 

김씨와 공천 경쟁을 했던 모 후보는 "박근혜 측에서 안 그래도 '죽는 소리'를 하니 공심위가 김택기의 흠결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넘어간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상득 불출마' 서명에 참여했던 이명박계의 한 의원도 "우리가 23일 기자회견에서 '개혁공천의 퇴색'을 문제삼은 것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당에 유입되거나 남아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나눠먹기 공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은 "김씨는 캠프에서 직책을 맡은 인물도 아니었고, 한 사람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연결짓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둘째는 '공심위 로비설'이다.

 

김씨가 15년 전 국회 노동위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돌렸고 이번에도 돈 문제를 일으킨 점을 들어 일부에서 이런 주장을 펴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선진당 법률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정인봉 후보(서울 종로)는 이날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무리한 공천은 한나라당 실세와 공심위에 대해서도 (김씨의) 로비가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며 "검찰이 김씨의 모든 계좌를 압수수색하고 부당한 청탁 여부를 엄정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심위 "이광재 이길 후보 공천하는 것만 고민했었다"

 

당 윤리위가 김택기 사건에 대한 공심위 책임론을 제기하고 당내에 온갖 얘기들이 나도는 상황에 대해 공심위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내부인사로는 강창희 전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 이종구·임해규·김애실 의원이 공천 심사에 참여했는데, 이중 이종구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초 공심위는 이번에 김택기 대신 공천된 최동규 당협위원장을 유력 후보로 생각했지만 그는 통합민주당 이광재 후보와의 1대 1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 썩 만족스런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전했다.

 

"최 위원장이 고향(평창)이 같은 이 후보에게 밀린다"고 생각하던 차에 공심위가 2000년 총선 당시 태백·정선에서 당선된 김택기씨를 이광재와 1대 1 가상대결을 붙였고, 김씨가 6명의 후보 중 본선 경쟁력이 가장 강한 후보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어떻게든 노무현 측근 이광재를 꺾을 후보를 찾느라고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문제로 회의를 3번이나 했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김씨의 노동위 돈봉투 사건과 '정치 철새' 전력을 들어 반대하는 공심위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공천을 안 주는 건 지나치다"는 동정론이 점차 힘을 얻었다는 후문.

 

그는 "계파 안배도, 실세의 압력도, 금품 로비도 없었다. 우리는 이광재를 이길 후보를 공천하는 것만 고민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공심위 측의 이 같은 해명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총선 승리에만 집착한 나머지 후보의 도덕성 검증을 게을리 한 공심위의 오판은 집권여당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돈 선거 파문으로 당 지지율이 최소한 5% 이상 더 빠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자 국민과의 언약식'에 참석한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이 그 동안 차떼기의 오명을 벗기 위해 몸부림을 쳤는데, 당의 온도 변화를 잘 모르고 옛날 방식에 젖은 사람이 갑자기 영입돼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김씨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태그:#김택기, #이종구, #인명진, #이방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