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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후보 등록이 시작된 25일에야 통합민주당의 '마감시간에 쫓긴' 공천작업이 완료됐다.

 

이날 신계륜·이상수 전 의원이 각각 무소속으로 출마한 성북을과 중랑갑에 박찬희 전 민주당 대변인과  임성락 치과원장을 공천함으로써 전체 245개 선거구 중 205곳에 후보자를 냈다. 비례대표 후보도 전날인 24일에야 40명을 확정했다. 그러나 영남 35곳 등 총 40곳에서는 후보를 내지 못했다.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은 1월 29일부터 시작해 57일이 걸렸다.

 

"지역구도, 비례대표도 박재승이 전권 행사"

 

지난 2월 25일 공천심사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박재승 위원장은 "제가 순진하다"고 말했다. 손학규 대표와 박상천 대표가 공천 원칙·기준 등에 대해 '훈시'를 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두 분 대표가 말씀하신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신들이 말한 그대로 할 테니, 공천 결과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공개적인 압박이었다. 

 

그는 이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다. 그는 3월 5일 '금고형 이상 형확정자 일괄 공천심사 배제' 기준을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취재진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일제 때 항일투사도 다 희생했지만, 지금은 국립묘지에 가 있다"며 '선방'을 날린 것이다. 내부 공심위원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당 지도부가 자신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자 공천심사를 중단했다. 그러다가 바로 다음날 "더 이상 공천작업을 지체할 수 없다"며 회의를 속개하고, 자신의 안을 공심위 안으로 확정시켰다. '전원합의'가 아니라는 반발이 일자, 표결을 해버렸다.

 

통합민주당의 대부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 박지원씨와 김홍업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업자' 안희정씨, 총선 실무책임자인 신계륜 당 사무총장 등 거물 11명의 출마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는 이들 11명의 구제에 대해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특히 신계륜(성북을)·이상수(중랑갑)·이호웅(인천남동을)·김민석 전 의원(영등포갑) 지역구에 대해 무공천 흐름이 나타나자, 신청자가 없는 인천남동을을 제외한 세 지역에 바로 후보를 추천해버렸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공개적인 압박이었다.

 

결국 손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이들 지역에 당 후보를 공천했다.

 

 

그는 비례대표 후보 추천심사위원장도 겸했다. 40명 비례대표 후보 확정발표 뒤에 우상호 당 대변인은 "비례대표도 사실상 박재승 위원장이 전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당 최고위원회가 일부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해서는 재심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으나, 어차피 박재승 위원장이 안 된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냥 뒀다"고도 했다.

 

정대철 전 고문의 아들 호준씨에 대해서는, 손 대표가 상위순번을 약속했음에도 박 위원장은 24번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대선 후보였던 이인제 의원을 탈락시키면서 '공천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공천배제 대상자인 박지원씨, 김홍업 의원, 이상수·신계륜·이호웅 전 의원은 탈당후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이용희 의원은 자유선진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박선숙 총선기획단 부단장은 이번 공천에 대해  "이제 우리 당 후보들이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꼽았다. 이명박 정부의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박재승 공심위'가 아니었다면 '전국 80석'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비례포함 현역의원 교체율 31.9%, 호남 물갈이 폭은 37.9%

 

공천 이전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포함 현역의원 141명 중 45명이 불출마·탈당·공천심사탈락 등으로 18대 총선에 나서지 못해 현역 의원 교체율은 31.9%였다. 한나라당은 38.5%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만을 놓고 보면 전체 31개 지역구 중 불출마를 선언한 김원기 의원과 염동연 의원을 제외한 29개 지역에서 11명(37.9%)이 공천심사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현역의원들만 놓고 보면, 호남은 최저 30%, 다른 지역은 20% 교체한다는 공심위 목표에 현저하게 미달했다. 여론조사 반영폭을 크게 한 것이 그 한 원인이었다. 2차 심사에서는 여론조사 50%, 경선에서는 100% 반영한 것이 인지도가 높은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박재승 위원장도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인정했다.

 

특히 수도권 현역의원들은 대부분 공천을 받았고 이를 비꼬는 '태현실'(태반이 현역실세)공천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재판이 아니냐"는 지적에 공심위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미 2월 29일 공천 신청을 마감했을 때부터 미신청지역이 70개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경선없는 공천... 비례대표 선정도 후퇴

 

2004년 열린우리당은 당시 243개 지역구 전체에 후보를 내면서 이중 83곳(34.1%)에서 경선을 실시했다.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왔지만, 우리 정치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번 통합민주당의 공천은 사실상 박재승이라는 '절대자'가 좌지우지했다. 정당정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참 후퇴한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상향식 공천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경선원칙은 당헌당규에만 있었을 뿐, '제18대 국회의원선거 후보자 추천규정'에 담긴 경선의 정신은 '여론조사'뿐이었다. 대선참패 이후 당의 '체력'이 경선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대통합민주신당 시절 대선후보 경선 때의 '명부떼기'와 '동원선거'라는 경선 후유증의 영향이 컸다.

 

그럼에도 후보자가 넘치고 체력이 충분한 호남지역에서조차 경선을 외면한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신계륜 전 사무총장이 "호남에서는 경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곧 묻혀버렸다. "다음 총선도 박재승 같은 사람을 찾아서 맡길 거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비례대표 선정과정도 후퇴했다. 열린우리당 때는 당내외 인사 30여명으로 '비례대표 선정위원회'를 만들어 비례대표 후보들을 심사하고 규모를 정했다.

 

실제 당선권을 정하는 순위 확정은 당내외 인사가 5대 5로 참여해 구성한 '비례대표순위확정위원회'라는 별도기구가 맡았다. 이 위원회에서는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자 순번을 결정했다.

 

이번처럼 '손학규-박상천-박재승' 등 소수 유력자의 뜻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폭을 최대한 줄였던 것이다.


태그:#박재승, #손학규, #공천심사, #민주당,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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