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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겨우내 기다렸던 벚꽃의 개화가 시작되었다. 허나 벚꽃은 피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진다. 그래서 한없이 아쉬운 별리를 상징하는 벚꽃… 그 벚꽃이 부산의 달맞이 언덕, 철거될 해운대 AID 주공아파트 단지 내에 서서히 열꽃처럼 푸른 하늘에 번져가고 있다.
 
 
세상에나, 이렇게 사람 살기 좋은 집이 어디 있어요 ?
 
하루에도 몇 가구씩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AID 중동 아파트. 'AID'란 아파트 이름이 붙여진 것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 차관을 빌려 와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35년이 넘는 이 아파트 단지는 5층짜리 13평과 15평 건물로 40동이 넘는다. 대단지 아파트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낡은 아파트지만 처음 입주 당시는 부산 시내 유명인사들이 꽤나 많이 살았다고 한다. 부산 시장을 지냈던 김현옥 시장도 얼마 전까지 이 아파트에 살았다고 한다.
 
풍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아파트에 방문했다가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이 어디 있느냐고 감탄했다는 해운대 주공 AID 아파트…. 이제는 미국에서 빌린 차관을 다 갚고 개인의 소유가 되었다. 이 아파트가 부산에 건립될 시기만 해도 아파트란 것이 부산에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산 시민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AID 아파트…. 그동안 재건축 때문에 말도 많았던 아파트다. 현재는 아파트 주인보다 월·전세입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형편이다.
 
 
꿈결 같은 속절 없이 지는 청춘의 꽃
 
벚꽃은 한자로 앵(櫻)으로 쓰고, 이 글자는 조개 패(貝)와 계집 녀(女)로 조합되어 있다. 그래서 조개 목걸이를 한 여인에 이 벚꽃을 비유한 이도 있다. 벚꽃을 우리나라 시조나 전설 속에 잘 찾아볼 수 없다. 꽃들을 유난히 사랑했던 우리 선비들은, 아마도 여성을 천시하는 경향에서도 연유하지만, 일본의 국화라는 것을 은연중에 의식해서 이 벚꽃을 표면화하는 데 인색했다는 담론도 있다. 아무튼 벚꽃은 너무나 빨리 피다가 지는 것이 청춘의 꿈결 같은 꽃이다.
 
 
여기보다 서민적인 벚꽃, 사람 땀 냄새 나는 벚꽃 단지는 없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워서인지 가로수가 벚나무가 많다. 그리고 아파트 주변에 관상수가 대개 꽃이 좋은 벚꽃이 많아서 아파트마다 무슨 무슨 아파트 벚꽃 축제가 많이 열린다. 바닷가에 접한 부산의 아파트 단지에 벚꽃 축제가 열리면, 아파트 주민들뿐만 아니라 먼 곳의 관광객들이 이 벚꽃 축제에 찾아온다. AID 아파트가 있는 위치는 해운대 달맞이 동산이다. 대한팔경의 달맞이 길의 벚꽃 길은 정말 유명한 만큼 아름답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살아온 AID 아파트 단지 안의 벚꽃만큼, 사람 냄새 나는 벚꽃은 아닌 셈이다.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벚나무는 지금 가지 따라 만발한 꽃을 걸치고
부활절을 맞아 흰 옷을 입고서
수풀 속에 승마 길 옆에 늘어 서 있네.
활짝 핀 꽃 보기에
50개의 봄도 너무 적으니
수풀 있는 곳으로 나는 가야지
눈처럼 피어 있는 벚꽃을 보러.
- 하우스 먼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런'
 
 
사람보다 아름다운 꽃들의 이별
 
벚꽃은 솔직히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꽃이다. 이 아름다운 느낌을 언어로 옮겨 표현하기에는 내가 가진 몇개 되지 않은 언어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문일평의 <호암전집>에는 "벚꽃의 미는 한가지나 또는 한 나무로 볼때는 도화나 행화에 미치지 못할는지 모르나, 많은 꽃나무 전체로 볼 때는 일대 미관을 보게 된다"고 적혀 있다.
 
정말 벚꽃은 한송이 한 송이 봐서도 볼 것이 없는 꽃이다. 다 함께 어울려 사는 우리네의 삶처럼…, 하나 둘씩 이웃들이 떠나는 철거지역 아파트에 남은 주민의 마음처럼…, 쓸쓸한 아파트 단지의 벚꽃나무의 빛깔은 처연한 별리의 아픈 선홍빛깔을 내 뿜고 있다. 북적북적 시끌벅적 하던 아파트가 점점 빈 아파트가 되어가면서, 뜯겨나간 재건축 불만의 현수막의 날개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이나 꽃이나 한데 어울려 살아야 그 힘을 뭉쳐 아름답다게 살 수 있는 모양이다.
 
세상살이에 초연한 벚꽃 군락들은, 펑펑 날이면 날마다 신나게 꽃폭죽을 터뜨리며 꽃보라를 날린다. 떠나는 이웃들에게 미처 손 흔들어주지 못하는 야박한 인정 대신, '잘가라'고 연신 높이 손을 흔든다. 남루한 가재도구를 실고 멀어지는 이삿짐 센터, 용달차의 백 미러 속으로, 이 아름다운 벚꽃길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대 보내고
홀로 손을 흔들 제
사립문 잠그면
해가 저무네.
봄마다 풀빛이야
예대로 푸르겠지만
한 번 간 임이
다시 돌아올까
- 왕유 '송별'

태그:#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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