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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상 줘야 혀. 모진 세월 겪으며 먹을 것 못 먹고, 시부모 모시며 집안 일구고, 자식들 키워낸 우리 세대야말로 큰 공을 한 사람들이니까 상을 줘도 당연하지. 안 그래요. 기자 양반?"

 

볕이 따스한 봄날, 인천 부평 문화의 거리에도 봄 햇살이 구석구석 드리우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국수를 말아주는 문숙희(62) 할머니는 그렇게 운을 뗐다.

 

문숙희 할머니는 이곳에서 40년 넘게 노점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엔 "나 같은 사람 취재해서 뭐 할라고 그래?"하며 머뭇하더니 이내 지난 세월에 대해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문 할머니는 논산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되던 해 부평으로 올라왔고, 결혼도 했다. 이때껏 한 번도 부평을 떠나 본 적 없는 문 할머니는 큰 애를 낳고 이듬해부터 문화의 거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 40년 넘은 것 같아. 우리 큰 애가 올해 마흔 셋이니까. 큰 애 낳고서 그 다음해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니 그 정도 됐지 아마. 그때는 코피가 나도 살아야겠다는 맘 하나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을 나섰어. 우리 애들이 연년생 셋인데, 큰 애는 등에 업고, 둘째는 방에다 눕혀놓고, 막내는 뱃속에 넣고 그렇게 일을 했지. 지금까지 안 해본 장사가 없다니깐."

 

문 할머니는 바다고동 장사부터 시작했다. 지금의 시장로터리 자리에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고, 그 일대에 채소와 생선을 파는 행상들이 많았다. 아울러 삼산동과 부천까지, 그 일대가 대부분 미나리꽝과 '하꼬방(판잣집)'으로 유명했다. 97년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하면서 차가 다니질 않는 문화의 거리도 문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할 때는 버스가 다닐 정도로 큰길이었다.

 

문화의 거리뿐 아니라, 시장로터리에서 부평역에 이르는 길, 부평역에서 문화의 거리 입구에 이르는 길에는 양옆으로 광주리 장사꾼들이 즐비했다. 그 행상이 문화의 거리에만 150여 명에 달했다고 하니 부평역 일대까지 포함하면 말 그대로 행상들이 줄지어 늘어선 셈 이다.

 

문 할머니는 20여 년 전부터 국수를 팔고 있다. 우무, 어묵, 순대, 떡볶이 등도 같이 판다. 문화의 거리와 부평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문 할머니'표 잔치국수도 최근 밀가루 가격 상승 탓에 값이 올랐다. 큰맘 먹고 무려 500원이나 인상했다. 올린 가격이 2500원이다.

 

장사를 시작했을 때 500원 하던 것이 20년 지나 2500원이 됐다. 하루에 50그릇 정도를 판다는 문 할머니가 쉬는 날 없이 장사를 했으니, 지금까지 문 할머니가 말은 국수를 먹은 사람이 35만 명은 족히 넘는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문 할머니 또한 모진 세월을 겪었다. 남편이 살아있으면 올해 칠순이라고 하는 문 할머니는 "바깥양반이 마흔여섯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어, 자식들은 이제 막 크기 시작하는데…" 문 할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식들은 크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문 할머니는 밀가루 몇 조각에 김치 잔뜩 풀어 만든 수제비를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자식들에게 먹였다. 행여 밀가루가 질릴까 봐 떡 모양으로 수제빌 만들곤 했다.

 

"그래도 그때는 참 인심이 좋았어. 거지도 부평 가면 먹고살 게 있다고 했을 정도니까.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있어서 아침에 물건 주고 수금은 저녁에 해 가. 한 푼 없이 장사 시작하던 사람들이 누구누구 옆에서 장사한다고 말하면 물건을 대줬거든. 그리고 그날 팔아서 저녁에 물건값을 주며 내일 쓸 걸 주문하곤 했는데, 지금도 여긴 그렇게 하고 있어."

 

가을에는 과일, 겨울에는 생선, 봄에는 채소, 철 따라 물건을 팔았던 문 할머니는 수인역을 떠올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협궤 열차가 다니던 수인역. 그곳에는 매일 아침 장이 섰는데, 부평에서 버스 타고 수인역에 내려 물건을 떼 왔단다. 채소며, 과일이며, 생선, 병아리 등 날마다 수인역 앞은 인천에서 물건 떼러 간 상인들로 북적댔다.

 

반세기 가까이 부평의 변화상을 지켜본 문 할머니는 말한다.

 

"세상 참 좋아졌어. 그런데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은 아니야.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을 곪아 있는 게지. 인심도 전에 비하면 야박하고 그러잖아. 뭐라 해도 세상은 사람 사이 정으로 사는 게야."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문화의 거리를 지나는 여러 사람들이 문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40년 넘게 묵묵히 문화의 거리를 지키며 장사하고 있는 문 할머니에게도 소원은 있다. 아프지 않고 잠드는 순간까지 장사하는 것이다. 40년 넘게 부평을 지키고 있는 문 할머니의 국수를 계속해서 맛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30년 부평지킴이, #40년 노점세월, #문화의 거리, #문숙희 할머니,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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