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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21일) 저녁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최근에 본 어떤 한국 영화가 떠올랐다. 대마초 핀 게 걸릴까 봐 외국으로 도피하는 한 사내 이야기.

이 영화는 도피행의 이유가 대마초일 뿐 이 남자가 대마초를 왜 어떻게 피우게 되었고 대마초로 인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여 주지는 않는다. 반면 지금 내가 만나러 가는 이 여자는 대마초 때문에 인생이 단단히 꼬였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 홍보대사가 된 배우 김부선. 낯선 진보 속으로 뛰어 들어간 '꼬인 인생' 김부선을 만나 날선 목소리를 들었다.

노회찬이 전인권을 면회간 까닭은?


진보신당 창당대회에서 김부선
 진보신당 창당대회에서 김부선
ⓒ 김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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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홍보대사가 된 뒤 최근에 하신 인터뷰를 보니까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진보를 위해서라면 얼굴마담은 얼마든지 하겠다고 말씀하셨더군요.
"난 배우에요. 대본 여러 개 받아들고 좋은 작품 골라 출연하는 거랑 비슷해요.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있는 진보신당이면 출연할 만한 훌륭한 작품이에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날 고른 당이면 진보라고. 김부선을 택할 정도면 정말 진보적인 당이죠."

-진보신당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도 있다면?
"가수 전인권씨가 구속되어 아는 정치인들에게 면회라도 한 번 가달라고 백방으로 도움을 청하는데, 자기들 아쉬울 땐 유명한 가수 전인권이랑 친한 척 하다가 막상 그렇게 되니까 아는 척도 안 해요.

노회찬 의원만 유일하게 연락에 응해 주시고 면회를 가주셨어요. 전인권씨랑 친한 사이인가 보다 했는데 그저 순수히 '들국화' 팬이었기 때문에 가 주신 거였어요. 정말 고마웠죠. (서울고등법원은 3월 14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씨에 대해 징역 1년과 추징금 54만6천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회찬 의원이 고맙다지만 한나라당 같은 데 있으면 지지하겠어요?

외모를 봐서는 내가 한나라당이지만(웃음), 김장수 대 피우진이라면 문화부장관 유인촌은 이 김부선이 상대해요. 지금 저쪽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좀 보세요. 지금 하는 것처럼 계속 하면 이 정권 진짜 곤란해질 거에요. 도대체 세상을 어디로 몰고 가겠다는 건지 대운하니 영어몰입교육이니,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 뮤직비디오 보면 애들이 하나씩 소시지가 되잖아요? 우리도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자는 건가요?"

- 거리 시위에 자주 나가시나 보던데요.

"시위 나가는 게 일이에요. 8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온갖 시위에 다 가 봤어요. 그냥 꼭두각시처럼 뛰어나가는 거 아니에요. 생각이 있어요. 난 이 나라의 주인이에요. 창당대회 때도 말했지만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에요. 영화가 아니에요."

- 1980년대 말에 <굴레를 벗고서>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하셨다는데 어떤 영화인가요?

"여성의 전화가 제작하고 이현승 감독(<그대 안의 블루><시월애>)이 만든 영화에요. 매맞는 아내를 다룬 가정폭력영화인데 실은 광주항쟁을 빗댄 거예요. 다 같이 고생 많이 하며 찍었어요."

"문화부장관 유인촌은 내가 상대합니다"

거리 시위에 나선 김부선
 거리 시위에 나선 김부선
ⓒ 김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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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영애씨가 연기한 주인공 금자씨를 김부선씨가 연기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해요.
"시나리오가 워낙 좋았죠. 처음 받아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박찬욱 감독은 참 대단하신 분이에요. 인간적으로도 정말 훌륭하고." (박찬욱 감독은 2004년에 김부선이 대마초와 관련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때 113명의 문화예술인이 동참한 '대마 합법화 및 문화적 권리 확대를 위한 문화예술인 선언'에 동참한 바 있다.)

- 어떤 영화가 좋으세요?
"<쇼생크탈출> 같은 거 좋아요. 드라마틱하고 기구한 삶을 다룬 거 보면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요. 어릴 때 본 '여간첩' 김수임에 관한 영화가 배우가 되는 데에 영향을 끼쳤어요. 북으로 간 사회주의자와 사랑하는 사이라 결국 총살당하는 비련의 여인. 반공영화지만 드라마틱하고 인물들이 멋있었어요."

- 만약 배우로서의 인생과 정치인으로서의 인생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난 배우예요. 배우로 살고 싶어요. 난 정치 하면 안 돼요. 당한 게 많고 한이 많아서 절대 가만 안 있을 거예요(웃음). 내 맘 속에 사제폭탄 같은 게 있어요. 내 스스로 '삼류 배우'라고 하니까 진담으로 아는 모양인데 내가 삼류면 정치인들은 사류에요. 더 이상 양아치 국회의원들은 안 된다고요. 국민들이 지쳐가요. 자살율·강간률·살인률·교통사고율은 올라가고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장상 국무총리 청문회 때, 처음엔 최초의 여자 국무총리가 나오나 보다 기대했는데 아니 자기 잘못을 왜 솔직히 시인하지 않아요? 정직하게 잘못했다고 해야죠. 끝까지 제대로 사과 안 하고 정말 실망했어요. BBK나 삼성특검의 경우도 그렇고, 자신이 정직하지 않으면 절대 남을 설득할 수 없어요. 죽을 각오를 하고 자기고백하고 고해성사 해야 듣는 사람 맘이 움직이죠."

"한국 진짜 후져요, 쪽팔려요"

진보신당 창당대회에서 변영주, 진중권, 김부선
 진보신당 창당대회에서 변영주, 진중권, 김부선
ⓒ 김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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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에 대마초 흡연 및 거래 행위를 처벌하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셨지요.
"네, 그 때 구속되면서 헌법소원을 냈어요. 전원일치로 합헌 판결났지만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이전에 대마관리법이 있었는데 국가보안법과 마찬가지로 유신악법이었다고 생각해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이 마약과 대마초를 한꺼번에 규제하면서 마치 대마초도 마약의 일종인 것처럼 취급하는데 말도 안 돼요. 대마초는 히로뽕 같은 중독성 강한 마약류와 달리 중독성이 술이나 담배보다 적어요. 마약을 끊을 때 대마를 피는 거예요.

담배는 피워도 괜찮지만 대마초는 안 된다, 이거 웃기는 거에요. 저는 술 잘 안 마셔요. 술이 훨씬 더 사람에게 위험해요. 폭탄주는 마시면서 왜 대마초는 못 하게 해요? 대마초는 피우는 술 같은 거예요. 외롭고 스트레스 받을 때 술 한 잔 찾고 담배 한 대 찾는 것처럼 대마초 피는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마초 하면 위험하다고 그래요.

한국 진짜 쪽팔려요. 후져요. 전세계적으로 대마초에 대해 온정주의로 가고 있는데 여전히 대마초를 마약처럼 엄격하게 탄압하고  소위 '마약청정국가' 한답시고 정신적 살해를 일삼았어요. 영장 없이 사람 개처럼 끌어가고 함부로 검사하고 마약사범 딱지 붙여 사회생활 제대로 못하게 하고 유명한 연예인 중에 대마초 하는 사람 있으면 대라고 하면서 못살게 굴고. 그런 의미에서 난 내가 희생자라고 생각해요. 대마초는 마약과 달리 취급해서 비범죄화하거나 최소한 형이라도 감경시켜야 해요."

(2005년 11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대마의 흡연 등을 처벌하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조항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김부선이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합헌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술과 담배는 오래 전부터 기호품으로 자리잡아 음주 또는 흡연행위에 대한 단속과 형사처벌이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이 범죄자로 처벌될 수 있어 형사정책상 바람직하지 않은 반면, 대마는 1960년대 중반에 비로소 환각목적의 흡연물질로 알려진 이래 1970년대 중반경 그 이용이 확산됐을 뿐이므로 대마사용에 대한 규제가 우리의 법감정과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로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 대마초 사용이 허용된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대마초 사용을 비범죄화하자는 청구인 김부선의 주장은 "역사적,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주장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대마초 비범죄화 외에도 특별히 관심 기울이는 문제나 쟁점이 있나요?
"내가 교도소에서 8개월 살아 봐서 아는데요. 정말 교도소는 갈 데가 아니에요. 몸 아파 치료 한 번 받으려고 해도 무슨 절차 무슨 절차 너무 복잡하고 거기 있으면 도무지 교화가 될 수가 없어요. 교도소 내 재소자들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요. 사회격리만 해도 엄청난 처벌인데 그 안에서 최소한 정상적으로 살게 해 줘야죠. 교도관들 처우도 개선해야 해요. 그들이 처우를 잘 받아야 재소자들에게도 잘 하죠.

전과자로 사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몰라요. 전과자라는 오명이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법을 어겼어도 죄값을 치르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잔인해요.

이러니 내가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어요. 뭔가 개선하려면 어쩔 수가 없어요. 늘 뉴스와 시사프로그램 같은 걸 보게 되고 시사문제에 촉각을 세워요. 내가 찢어진 백과사전이에요, 찢어진 백과사전.

내가 공개적으로 이런 말 하면, '쟤는 말 참 쉽게 한다, 말 참 서슴없이 하는구나' 그럴지 몰라도 저는 서슴없이 하는 게 아니에요. 사고 치는 게 아니에요. 천번 싸우고 싶은데 한 번 싸우는 거란 말이에요. '나 하나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 나 하나만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간통죄 위헌 헌법소원 낸 옥소리도 진보적인 분들이 끌어안고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통죄, 이거 말이 되나요? 옥소리에게 전하고 싶어요. 힘내라고 존경한다고, 당신은 지금 터널 속에 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기를 프로포즈한다, 필요하면 이 김부선이 가족 해 주고 친구 해준다고."

"옥소리 힘내세요, 필요하면 제가 친구해줄께요"

김부선
 김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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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목소리로 서늘하게 세상을 비판하고 열렬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김부선 앞에서 나는 묵묵히 듣고 부지런히 받아쓰는 것 외엔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사진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김부선으로부터 사진을 받기 위해 인터뷰 다음 날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대운하반대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고 시위 마치고 귀가해서 사진을 보내겠다는 답신이 왔다. 과연 말대로 시위 가는 게 일상사였다. 고단하고 남다르게 살아온 그녀에게 이 짧은 인터뷰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격려가 되길 바랄 뿐이다.

김부선
 김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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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태그:#김부선, #진보신당, #홍보대사, #18대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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