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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참신하고 발랄해야 한다. 활력이 있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진보신당이 창당대회를 했을 때 내심 기뻤다. 민주노동당을 뛰어넘는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참신"과 "발랄"을 이야기 하면서 수줍게 웃었다. 그의 조끼 왼쪽에 '단결 투쟁'이란 '살벌한 글귀'가 선명했다. 그 글귀는 그의 삶과 이력을 잘 증명한다. 그의 말과 조끼에 새겨진 문구가 연결이 잘 안 돼서였일까. 이 부위원장은 손으로 조끼를 쓰윽 한번 훔쳤다.

 

"사실 오늘 이 조끼 입을까 말까 고민했다. 결국 진보신당을 위해 입고 나왔다.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토론회 자리도 사치다. 진보신당의 가치에 비정규직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 부위원장은 거리의 투사이면서 현재 정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그는 지난 3월 16일 출범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지금 여의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이른 바 '평등파'가 주축이 돼 만든 신생 진보정당으로,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이끌고 있다.

 

여군 출신 인사에서 노동운동가까지...6인6색 진보신당 비례대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토론회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 12명 중 6명이 참석했다. 사회는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가 맡았다. 진 교수는 진보신당 지지자다.

 

이남신 부위원장처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후보들은 모두 정치 신인들이다. 그러나 여의도 시각으로 보자면 신인이지만, 생활인의 관점에서 보면 프로다.

 

박영희(46)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대한민국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 이력을 갖고 있지만 군대에서 반강제 전역조치를 당한 피우진 전 중령, 유의선 전 전국빈민연합 쟁책위원장, 이선근 전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그리고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를 역임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모두가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내공을 쌓아온 이들이다. 정치에 뛰어든 이유 역시 자신들의 활동을 더욱 넓히기 위해서다. 아무리 정치 신인이라도 진중권 교수의 질문은 이들의 처지를 봐주지 않았다.

 

진중권 "민주노동당도 여성장애인을 비례대표 1번으로 배정했다. 과잉 배려 아닌가?"

박영희 "일정 정도 인정한다. 장애여성으로 살면서 여성운동을 함께 해왔다. 그리고 장애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봐야 싸울 수 있었다. 내 관점과 다른 소수자들의 삶은 통하는 게 많다. 진보신당이 추구하는 평등·생태·평화·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내 능력을 보태겠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서는 박영희 후보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다. 박 후보는 민주노동당에서 장애인차별철폐운동본부 본부장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진보신당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박 후보는 "각 정당에서 장애인을 비례대표로 내세우는 걸 두고, 장애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만큼 장애인들이 차별 철폐를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기 때문에 하나의 성과로도 볼 수 있다"며 장애인들의 정치 입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박 후보는 "아직도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많다"며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도 여성 장애인이 비례대표 1번

 

이남신 후보는 "시장만능, 시장독식, 그리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참 진보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며 "진보신당이 노동자 서민의 지킴이가 될 수 있도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생각하며 이번 총선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남신 후보의 진보신당 행은 쉽지 않았다. 이 후보는 "조합원들과 토론을 벌였고,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도 따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바로 피우진 전 중령이다. 3번으로 배정된 피 후보는 1979년 소위로 군 생활을 시작한 대한민국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다.

 

피 후보는 2002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양쪽 가슴 절제 수술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2006년 군에서 반강제 전역조치를 당했다. 신체 일부가 없으면 군인사법 시행규칙상 장애등급 2급에 해당된다는 이유였다.

 

피 후보는 소송을 제기해 복직판결을 받았지만 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국방부가 항소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국방부 장관은 김장수. 김 전 장관도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올 예정이다.

 

이와 관련 피 후보는 "국방부가 항소한 건 국민의 혈세 낭비"며 "국회의원이면 민의를 살펴야 하는데,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김 전 장관이 국회의원으로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김 전 장관을 비판했다.

 

이어 피 후보는 민감한 문제인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해서 "헌법에 명시돼 있는 양심과 인권의 차원에서 살펴봐야 하고, 모두 허용해야 한다"며 "이는 선택이 아닌 원칙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피 후보는 "우리 군대 문화가 획일화돼 있어 군인들의 정신까지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있는 걸 바로잡겠다"며 "진보 진영은 국방에 취약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데, 나와 진보신당의 결합으로 국방 분야에서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장수 전 장관 국회의원 적합한지 의문"

 

 

사회의 빈곤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유의선 후보는 "그동안 민주노동당도 다양한 복지 정책 실현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투쟁하는 빈민·철거민들의 피부에는 가 닿지 못했다"며 "국회에 들어가면 '용역 깡패'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또 유 후보는 "수해와 같은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만 경계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빈곤에 대해서도 사회적인 경계령이 내려질 수 있어야 한다"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30년 넘게 진보정치 운동을 해온 이선근 후보는 민생정치를 강조했다.

 

"지난 10년 동안 국민승리21·민주노동당에서 민생정치 실현을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형식적 진보의 깃발만 내걸었고, 진정한 민생정치로 연결돼지 못다. 지난 대선 때 민주노동당의 슬로건은 민생의 절절한 것들을 외면하고, 통일 같은 기치만 높이 들었다. 그래서 탈당을 했다."

 

이 후보는 "생활이 어려운 서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한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민생정치의 요체"라며 "진보신당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면 민생정치를 제대로 펼쳐 보이겠다"고 지지를 당부했다.

 

현직 교수인 김상봉 후보는 "이른바 '폴리페서'는 공부는 안 하고 권력만 좇아 이 당 저 당 기웃거리는 사람들"이라며 "전문성 있는 학자가 정치에 참여해 나라를 윤택하게 하는 건 좋은 것이다"고 정치 참여의 진정성을 주장했다.  

 

그동안 학벌 폐지를 주장해 온 김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대학 평준화를 주장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나오면 왕족이고, 대학 못 나오면 천민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서울대는 1년에 3000명 정도밖에 못 들어간다. 대학을 평준화시키고, 각종 이력서에서 학력란을 없애야 한다."

 

이어 김 교수는 "민중당 출신 인사(이재오)는 대운하를 적극 주장하고, 통합민주당은 IMF를 스스로 추진하고 있다"며 "진보신당에서 피어난 작은 진보의 불씨를 끄지 말라달라"고 총선에서의 호소를 지지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들은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반면 지난 7일 역시 <오마이뉴스>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토론회에서는 진보신당에 대한 많은 비판의 말이 쏟아졌다.

 

 


태그:#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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