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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에 싹 난다'는 한국 속담은, 이 봄을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도심의 아파트 단지 화단에 쑥이 수북하게 자라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사시는 몇몇 아주머니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쑥을 캤습니다. 지천으로 널린 쑥들을 보니, 너무 깨끗했습니다. 견물생심, 나도 캐야지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쑥캘 준비 단단히 해가지고 나오니, 1-2시간 먼저 캔 아주머니들의 쑥바구니에 쑥이 가득합니다. 저녁 국거리는 걱정 없다고 합니다.
 
나도 깨끗한 나무그늘 밑의 양지의 쑥밭에서 쑥을 캤습니다. 그런데 너무 쑥 캐는 재미에 빠져서 쑥을 캐다 보니 점심도 굶었습니다. 함께 쑥을 캐는 한 아주머니는 쑥떡을 해야 한다고, 내일도 쑥을 캐러 나올 거라 했습니다. 
 

 

여기 저기 나무 그늘 밑에 몇몇 아주머니들이 쑥을 캐고 있었습니다. 한푼 두 푼 절약하기 위해서 쑥을 캐러 나오는 것 같아 보이지 않고, 봄을 즐기면서 옛추억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습니다. 아주머니들의 쑥 캐면서 하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릴 적 대바구니에 연필 칼 넣고 온 산을 헤매며 쑥이며 달래 등을 캐던 유년의 봄이 생각났습니다.

 

끼니 때마다 무슨 국을 끓일까, 늘 걱정해야 했던 어머니는 봄이 오면 쑥국을 많이 끓여주셨는데, 그 쑥을 캐 오면 특별히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봄만 돌아오면 나는 늘 부자였습니다. 오빠도 남동생도 내 용돈이 탐이 나서 나를 따라 쑥을 캐러 나오곤 했지만, 동네 여자 아이들이 남자애들이 쑥 캔다고, 얼레 꼴레 하며 놀려서, 오빠와 남동생은 쑥을 캐고 싶어도 캐지 못했습니다. 

 

그런 오빠와 남동생에게는 내 용돈만큼이나 부러웠을 그 쑥의 봄, 봄. 저 멀리 가버린 희미한 아지랑이에 묻혀버린 쑥 캐던 즐거운 봄이, 동백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쑥밭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어릴 적 봄을 캤습니다.

 

원래 난 음식 솜씨는 없는데, 어머니에게 눈요기로 배운 대로 멸치 국물을 우려서 된장 한숟가락 넣고 그냥 쑥을 총총 썰어서 넣어 끓였습니다. 살짝 맛을 보니 정말 봄맛이 향긋했습니다. 아니 이게 쑥국 맛인가. 이건 진짜 봄맛이다. 봄맛.

 

다북쑥 캐네, 다북쑥을 캐네./ 캐다보면 돌쑥도 나오네./돌쑥, 물쑥, 다북쑥/ 온갖 돌쑥 모조리 캐네./ 시들어 마른 잡쑥도 캐고/ 마소가 먹다 남은 새싹도 캐네. 이쑥 저 쑥 골라서 무엇하랴/ 캐어도 캐어도 허기진 이쑥을 뜯고 / 뽑고 가리고 다듬으니/ 바구니 광주리에 반쯤 차네/ 돌아가 이것으로 쑥죽을 쑤면은/ 죽인 양 밥인양 끼니가 된다.

'정약용'

내가 끓인 쑥국 정말 모양은 별로지만,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봄, 봄, 봄, 우리의 생활 속에 봄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그 봄을 맛으로 느끼려면, 향긋한 쑥국을 끓이면서 숟가락으로 쑥국 냄새를 맡는 게, 가장 쉬운 봄 냄새에 취하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아파트 단지 뿐만 아니라, 도로의 가로수 주변에도 쑥이 널려 있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운동 삼아 쑥을 캐서, 올 봄은 쑥떡을 만들어 볼 참입니다. 쑥이 간암 환자에 특히 좋고, 쑥은 피로 회복에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요즘 나는 쑥은 그냥 씹어서 먹어도 몸에 좋은 약쑥이라고 한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이어 한 아주머니는 우유에 쑥을 갈아서 아침 공복에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서로 이웃에 살아도 얼굴도 모르는 도심의 이웃들이 봄쑥을 캐면서 오랜만에 동심으로 하나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알뜰살뜰, 생활 속에 이 봄,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태그:#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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