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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조를 하는 사람들인데 반대를 외쳐야 한다니...”

 

회견 도중, 구호 한번 외치자는 말에 홍일선 시인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반대’라는 말이 어색했는지 다른 말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반대 구호’를 외쳤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종교인, 교수, 법조인에 이어 문화예술인마저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13일 오전 11시, 서울 아현동 ‘한국작가회의’ 사무실에 모인 문화예술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 백지화를 위한 한국 문화예술인 공동연대’(이하 ’문예인 연대‘)를 공식 출범했다.

 

현재 ‘문예인 연대’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등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9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는 한국작가회의 등 5개 단체와 박용수 시인, 김영현 시인 등 15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했다.

 

산천은 모든 문화예술의 근거지... "인기 회복 차원에서도 거둬들여야"

 

“작가는 언어로 말하지만 언어로만 말하지 않고 한 생애를 다 던져 말한다. 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는 단순히 언어를 다루고 글을 쓰는 작가들의 모임이 아니다. 그 속에는 고문과 투옥과 모멸을 견뎌온 세월이 있고, 저항과 고난의 역사가 있으며, 온몸을 평생 밀고 온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가 있다.”

 

‘한국작가회의’ 출범 선언문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문화예술인들은 펜과 종이 안에만 갇혀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역사의 모순 앞에 당당히 연대하며 맞서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대운하 사업 추진’에 맞서기 위해 세상으로 뛰쳐나와 한 곳으로 뭉쳤다. 

 

시작 발언에 나선 정용국 시인은 “한반도 산하의 산과 강은 모든 문화예술의 원초적 근원이자 정신적 근거지”라며 “시멘트를 걷어낸 청계천으로 국민들의 분에 넘치는 성원을 받으신 사람이 왜 시멘트로 옹벽을 쳐 시대착오적인 대운하라는 것을 건설하여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죽이려 하는지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영현 시인은 출범 취지문을 낭독하면서 "우리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종교인 순례단 일행에게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며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어 김 시인은 ”글 쓰는 사람은 글로,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노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통해 국민들과 더불어 대운하가 백지화 될 때까지 모든 역량을 총동원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날 회견에는 임효림 시인과 남정현 소설가 등 원로 문화예술인들도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대운하 사업이 "상식 이하의 말"이라면서 “강물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길 바란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임효림 시인은 “요즘 보면 바닥을 해맬 정도로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인기회복 차원에서도 하루속히 대운하 사업을 백지화 하는게 맞지 않냐”면서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국토를 보존하고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진심어린 호소인데 이를 ‘전문지식이 없다’는 말로 짓밟아 버리고, 권력으로 억누르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남정현 소설가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 그것을 이용해 항구를 꾸며서 운송수단을 만들고, 폐허화된 어민들의 살 여건을 만들어 주면 경제적으로도 훨씬 좋고 관광차원에서도 그렇다”면서 “내륙에 운하를 판다는 것은 뭔가 치유할 수 없는 악성 종양을 만들어서 후대에 넘겨주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며 운하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16일 구미 시작으로 여론몰이 나설 예정

 

‘문예인 연대’는 오는 16일 경북 구미에서 열리는 문화행사를 시작으로 5개의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4월 중순에는 시인 100여 명의 시를 모아 <대운하 저지를 위한 공동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며, 하순에는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서울 시낭송회>를 개최한다.

 

특히 16일 구미에서 열리는 첫 문화행사인 ‘2008 문화 예술인 축전’은 100일 도보 순례에 나선 종교인들도 합류할 예정이다. 향후 사업계획을 발표한 홍일선 시인은 “문경부터 구미까지는 소위 말하는 ‘대운하 성공론’이 득세하는 지역”이라면서 “도보 순례단 분들이 지쳐있기도 하고, 고달픈 부분에 있어서 위로 하는 차원에서 여는 축전”이라며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홍 시인은 “불타버린 숭례문 속에 대운하 속 강물이 보이는 것 같다”면서 “대운하를 보면 명약관화하게 낭떠러지가 보인다. 산하에 진 빚이 많은 시인 입장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홍일선 시인 "이 정권, 여론 좋지 않으니 양면작전 쓰는 듯"

 

 -문화예술인들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선 취지는 무엇인가.

“문화예술인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은 강과 산은 문화예술의 정신적 근거지이자 모든 작품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연과 생명을 보지 않고, 단순히 효율성 강조하며 (운하를) 밀어붙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로, 연극하는 사람은 연극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등등 우리가 가진 역량들을 총동원 해서 연대를 해보자는 차원에서 출범했다. 대운하가 백지화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16일 첫 행사를 구미에서 하게 되는 의미라도 있는가.

“문경부터 구미까지는 소위 말하는 ‘대운하 성공론’이 득세하고 있는 지역이다. 한반도의 비전 등을 자세히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을 지나는 그분들이 지쳐있기도 하고, 오랫동안 발걸음을 재촉했던 그분들의 고달픈 몸과 마음을 위로도 하는 차원에서 문화예술인들이 3월16일 축전 행사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크게 5가지 정도 행사를 열 계획이다. 몰상식적인 운하계획을 철회시키고, 강물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

 

-아까 보니 ‘반대 구호’를 외치는 것을 좀 어색해 보였다.

“우리는 창조를 하는 사람들인데 반대를 외치는 것이 좀 생소하다. 사물을 보고 생명을 부여하며, 시대의 아픔을 보고 이를 표출하는 사람들인데 단순히 ‘반대’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대운하를 보면 명약관화하게 낭떠러지가 보이는데 이를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이 참 이해하기가 어렵다. 똑같은 한국인들이고 똑같이 강과 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되는 건지... 정말 안타깝다.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자연의 섭리인데 이를 거스르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앞으로의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나.

“요즘 보면 이 정권 측에서 양면작전을 쓰는 것 같다. 지금 보면 분명히 대운하 건설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 온라인 상에서 합리적인 의견이 많이 올라오고 있고, 서울대 교수 380여명이 반대성명을 낸 상황이다. 양심 있는 법조인들도 국민들의 행복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나선 상태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총선국면에서는 대운하를 주요이슈로는 꺼내지 않는 듯하다. 이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만약 이러다가 총선에서 과반 획득한다면 ‘대운하 특별법’ 이런 것들 추진하는 것 아닌가. 만약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다면 국민 뜻 맘대로 거스르고 강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부터 열심히 움직임에 나설 계획이다."

 


태그:#대운하, #문화예술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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