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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라면값도 오르고 자장면값도 오르고 빵값도 올랐습니다. 1000원으론 빵 하나 우유 하나 사 마시기 힘듭니다. 아이들에겐 용돈 인상 요인이 충분한 셈입니다. 하지만 물가 인상만큼 봉급 인상은 되질 않으니 부모 입장에선 용돈 동결이나 삭감을 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좋은 묘안이 있을까요. 여기 부모와 자식 간의 용돈 줄다리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최근 어린이들의 용돈이 규모화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소비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전라남도가 지난해 8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꿈나무 경제교실'의 한 장면입니다.
 최근 어린이들의 용돈이 규모화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소비의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진은 전라남도가 지난해 8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꿈나무 경제교실'의 한 장면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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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리 와 보세요.”

큰 아이 슬비는 오늘도 짬이 좀 나자 여지없이 족집게를 들고 달려듭니다. 흰머리를 뽑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뽑은 만큼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늘 순수한 마음입니다. 그러면서도 흰머리를 하나씩 뽑을 때마다 묘한 쾌감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벌써 다섯 개 뽑았어요. 잘 했죠?”
“응. 우리 슬비 잘 했다. 고마워.”

그러면 끝입니다. 그때 아이들 엄마가 한 마디 합니다. “용돈이라도 좀 주지 그러냐”는 것입니다. “흰머리 뽑아주고 용돈 받는 것도 재미인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때마다 슬비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사실 친구들은 아빠의 흰머리를 뽑아주고 용돈을 받는답니다. 그러나 자기는 털끝만큼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뽑아드리고 싶어서, 순수하게 뽑았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벌써 열댓 번은 넘은 것 같습니다. 사실 용돈을 생각하면 흰머리를 뽑아주고 떼를 쓸 만도 하건만…. 그럴 때마다 슬비가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지출과 결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물물교환 장터'에 참가한 슬비와 예슬이가 직접 물건을 팔면서 소비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지출과 결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물물교환 장터'에 참가한 슬비와 예슬이가 직접 물건을 팔면서 소비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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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의 용돈은 1주일에 4000원, 한 달에 1만6000원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해까지는 1주일에 3500원씩이었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500원 오른 것입니다. 작은아이 예슬이한테는 1주일에 2500원씩 주고 있습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또 많은 액수죠.

용돈이라고 해서 그저 주지도 않습니다. 아이들 엄마는 그것을 주면서 몇 가지 전제를 답니다. 이부자리를 스스로 정돈하고, 책꽂이와 가방 정리, 신발장 정리, 마른 빨래 정돈과 방 청소 도와주기 등등.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땐 용돈 삭감도 단행합니다. 한두 번은 눈을 감아주지만 몇 번 누적이 되면 500원씩 깎는 것입니다. 용돈은 적고 쓸 곳이 많은 슬비는 그때마다 허탈해 합니다. 무슨 청천벽력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 최근에야 안 일이지만 삭감을 많이 당해서 용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슬비의 얼굴은 울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용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터인데 거기에서 깎여버렸으니…. 이해가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슬비방으로 들어가서 아이를 달랩니다. “앞으로는 용돈이 깎이지 않도록 조심해라. 할 일도 제때 잘 하라”고 타이르면서 1000원짜리 두세 장을 가만히 내밀곤 합니다. 순간 슬비의 안색이 바뀌고 ‘역시 우리 아빠’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은 양 잠자리에 들죠.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아이들 엄마가 부릅니다. 아이들 용돈 삭감사실을 얘기해 주면서 “모른 척 할테니 아침에 용돈을 좀 주라”는 것입니다. 피식 웃는 내게 이유를 묻지만 “알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용돈을 깎은 엄마의 마음도 언짢았던 모양입니다.

진즉 삭감한 용돈을 보충해 줬는데…. 한편으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악역은 늘 엄마의 몫이고, 아빠는 언제나 아이들 편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부터는 아이들이 대담해졌습니다. 엄마가 용돈을 삭감한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반응이 많이 무뎌졌습니다. 예슬이는 ‘500원 삭감’ 이야기가 나오면 선뜻 1000원 짜리를 가지고 나와서 500원을 거슬러달라고 하기까지 합니다. 웃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자문해 봅니다. 어디까지가 ‘교육’이고 ‘사랑’인지….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따로 갑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물물교환 장터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즐거워합니다. 안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면서 소득의 기쁨을,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며 소비체험을 합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물물교환 장터는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즐거워합니다. 안쓰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면서 소득의 기쁨을,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며 소비체험을 합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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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용돈 단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중학생이 10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다니고, 초등학생이 1만원짜리 지폐를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선물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초등학생들한테 휴대폰과 MP3는 물론이고 전자사전, 노트북까지 사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슬비와 예슬이의 4000원과 2500원은 하찮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합리적인 소비습관만은 길러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돼지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가서 저축하는 그 재미를 아는 아이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해진 용돈을 준 다음엔 그 기간에 나눠서 현명하게 쓸 줄 알도록, 그래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산과 결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부모한테 자신이 필요한 용돈을 제시하고, 협상을 통해 금액을 정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용돈이 더 필요하면 집안일 등을 도우면서 직접 그것을 벌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4000원으로도, 2500원으로도 만족하고 또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그:#용돈, #소비체험, #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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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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