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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주축이 된 삼성특검반대 범국민연대 회원 30여명이 11일 오후 한남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규탄하고 있다.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주축이 된 삼성특검반대 범국민연대 회원 30여명이 11일 오후 한남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규탄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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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특수관계에 있는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이 노골적으로 삼성을 두둔하는 칼럼과 기자회견, 집회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중앙일보> 문창극 주필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향해 "분열과 갈등, 증오를 심기 위한 것인가"라고 묻고 "사제들은 하늘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11일은 삼성 편에 선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이 집단적으로 '비판담론 허물고 삼성 감싸기'에 나서기로 작정한 디데이였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벌어진 풍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삼성특검반대 범국민연대 소속 30여명의 회원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입에 검은색 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넣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한명은 분에 못 이겨 피켓을 들썩이며 "김용철을 구금 수사하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이날 날계란 3판을 준비했다. 특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예정이던 김용철 변호사를 향해 투척할 계획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에게 달걀세례를 퍼부을 작정으로 몰려든 것이다. 특검팀 방호원들이 미리 이들이 들고 있던 계란을 모두 압수했지만, 신변에 위협을 느낀 김용철 변호사는 11일 특검에 출석하지 않고 변호인단을 통해 진술서를 대신 전달했다.

기자회견을 빙자한 기습시위에 나선 삼성특검반대 범국민연대 대표는 박찬성 목사. 그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로 이름 높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는 2003년 경 삼성으로부터 1억원을 지원 받아 시청앞 집회를 열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바 있다. 물론 박 목사는 "당시 재정위원장인 봉두완 현 한미클럽회장이 돈을 받았지 나는 받은 적 없다"며 이와 같은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이날 집회를 주관한 박 목사는 특검 출입기자들을 향해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이 초법적인 신이라도 되나?"라며 "준법질서를 초월하고 있으며 국가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고 기업이 금년계획을 세워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삼성을 압수수색하고 난도질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박 목사는 "도대체 삼성이 세금을 안 냈나, 월급을 떼먹었나, 아니면 국가망신을 시켰나?"라고 한탄을 했다. 또한 "사람이 아픈데만 수술해야지 심장이고 허파고 온 데 다 헤쳐가지고 사람이 살겠냐"며 "에버랜드 문제만 해도 10년이 넘은 문제인데 다시 들추고 있다"고 삼성측을 두둔하고 나섰다.

보수단체·보수언론 왜 사제단을 공격하나?

'새 정부 인사 가운데서도 삼성으로부터 떡값 로비를 받은 인사가 있다'고 주장한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따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명단을 공개했다. 전종훈 대표신부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상계동 수락산 성당에서 삼성특검의 현 국면에 대한 사제단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새 정부 인사 가운데서도 삼성으로부터 떡값 로비를 받은 인사가 있다'고 주장한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따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추가 명단을 공개했다. 전종훈 대표신부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상계동 수락산 성당에서 삼성특검의 현 국면에 대한 사제단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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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만이 아니다. 지난 6일에는 보수단체인 라이트코리아가 서울 동숭동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제단의 해체를 요구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사제단 건물로의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같은 날 뉴라이트전국연합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제단은 대한민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정치공작소인가"라며 사제단의 '용기'를 '정치공작'으로 곡해시켰다.

11일은 지난 6일의 '업그레이드 재판'인 셈. 보수세력의 행동이 좀더 격해졌다는 말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선진화정치개혁국민연합 등 15개 시민단체는 이날 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의 수사가 김용철 변호사와 사제단의 폭로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며 "사제단과 김 변호사는 삼성과 관계된 자료 일체를 특검팀에 즉시 넘겨주고, 특검팀은 능동적인 자세로 적법하게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는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부당한 간섭이나 영향을 미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수사의 장기화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기를 당부한다"고 '사족'을 달기도 했다.

한편, 이들은 모두 지난해 11월 삼성 특검법 발의를 앞두고 명백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단체들이다. 말만 다르게 했을 뿐이지 사실상 삼성의 든든한 '우군'이나 다름없다.

"적자 대회 올시다, 이건희 회장님이 한번 큰 도움 주신다면..."

삼성특검반대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1일 오후 한남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특검반대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1일 오후 한남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김용철 변호사를 기다리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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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삼성의 '우군'으로 나선 까닭은 간단하다.

지난해 11월 8일 대정부 질문 때 박영선 통합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가 지난 2003년 보수단체의 집회에 1억원을 지원한 내부 문건과 편지 한통을 공개했다.

지난 2003년 6월 봉두완 당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재정위원장이 이학수 부회장 앞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핵, 반김 한미동맹강화 6·25국민대회'는 나름대로 잘 끝냈습니다. (…) 보시다시피 적자 대회올시다. 재향군인 회장 등 군원로들 말씀이 이런 때 위원장이 나서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권고도 있고, 또 이런 때 우리 이 회장님이 한번 큰 도움을 주신다면 보수진영 여러 어르신들이 기뻐할 것 같아 감히 일금 1억원의 협찬을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보수진영의 참 뜻을 잘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박 의원은 "삼성이 시민단체에도 각종 찬조금 명목으로 재정 지원을 하며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며 "일개 기업이 자금지원 명목으로 보수 세력과 결탁하고, 환경단체를 좌지우지하고, 광고비로 언론을 통제하고 우군화하는 작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용철 변호사도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은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 대해서도 항상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며 "유사 시 매수, 회유하기 위해 평소에 중요 인사에 대해 접촉할 수 있는 인맥관리 명단을 작성해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앙> "사제단, 갈등 그리고 증오를 심고 있다"

<중앙일보>와 경제지들도 노골적으로 김 변호사와 사제단을 공격하고 있다. 경제지들이 앞다퉈 "경제가 어렵다", "삼성 경영이 멈췄다"며 위기론을 들고나서 특검팀의 수사를 흔들고 있다면 <중앙일보>는 김 변호사와 사제단을 향해 사실상의 '활동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격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5일 이명박정부 내각에도 삼성장학생이 있었다는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서도 사설 '사제단의 무책임한 폭로'를 통해 "더 이상 이런 식의 폭로에 나라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며 "증거없는 폭로는 더 이상 거론조차 말아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중앙일보>의 문창극 주필은 11일자 칼럼을 통해 더욱 원색적으로 사제단을 비난했다.

문 주필은 '평화구현 사제단을 기다린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사제단이 지금 벌이는 행동은 이 세상에 평화를 심기 위함인가, 아니면 분열과 갈등, 그리고 증오를 심기 위한 것인가"라며 사제단을 비난했다. 또 "사제들은 왜 폭로 대상이 된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사랑과 연민이 없는가"라고 삼성과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된 인사들을 앞장 서 비호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사제단에게 엄중히 평화구현사제단으로 변화하라고 충고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사제들이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정의를 외치지 않아도, 우리가 쌓아 온 민주 제도로서 나라를 운영할 수준은 되었다. 사제단은 이 나라의 제도와 법을 믿고 모든 증거를 특검에 보내 수사에 협조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다. 이제 사제들은 땅의 정의에 대한 관심보다는 하늘의 평화를 알려주는 사도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 '정의구현' 사제단이 '평화구현' 사제단으로 변화할 날을 기다려 본다." - <중앙일보> 문창극 칼럼 '평화구현 사제단을 기다린다' 중

삼성과 특수관계에 있는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이 며칠 간격을 두고 연거푸 '삼성 감싸기'에 나선 것은 특검팀이 수사기한을 연장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기소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면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자발적 동원령'이 발동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실제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아 집회를 연 바 있는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경우에도 '삼성과의 특수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후사'를 노렸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처장은 이 같은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의 집단적 움직임에 대해 "삼성 돈 받은 단체들이 삼성이 원하는 플레이를 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사제단의 한 핵심 관계자도 "구정물에 찬물을 새로 담근다고 해서 그 물이 새 물이 될 수 있겠냐"며 혀를 찼다. 에버랜드 미술품 창고 등 삼성그룹이 지속적으로 부인해왔던 자사 비리와 비자금, 차명계좌 운영 및 불법경영승계, 불법로비 등과 관련한 구체적 실체들이 드러나면서 삼성측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 부수언론과 보수세력의 '준동'으로 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삼성특검은 제1라운드 수사를 마치고, 제2라운드 수사에 접어들었다.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이 작정하고 사제단을 능멸하고 김용철 변호사를 음해해도 특검팀은 '비자금 수사'의 칼을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네티즌이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내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가 공익정보제공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 국민은 그들 편이다. 아무리 한국사회가 '돈'중심 사회라 해도 대한민국 최대 권력형 부패사건인 이번 일을 좌시할 리는 없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언론과 단체들이 불법행위에 대한 양심고백을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한,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삼성의 하수인'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게 될 것이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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