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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현상이 벌어졌다. 부천시 청소년 수련관에서 10년째 독서논술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이번 봄 학기 수강신청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늘 수강생이 넘쳐 추첨 강좌로 분류되었던 프로그램에 수강생 미달사태가 발생했다. 출산저하로  갈수록 학생이 줄어든다는 사회적인 현상은 인정하더라도 이렇게 인원이 줄기는 처음이다.

 

학부모님의 반응을 들어보았다. "이제 논술이 대학입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서요. 안 그래도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는데 대학입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목까지 돈을 들이지 못한다"는 이유가 지배적이었다. 독서는 모든 학문의 근간이 아닌가, 내가 하는 수업은 독서를 통해 생각을 키우고 토의, 토론을 거쳐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최근 발표된 2009학년도 입시 전형 정시모집안에는 대다수의 학교가 논술을 폐지한다고 확정했다. 그 안 앞에서는 학부모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민감하다. 대학입시전형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학부모인 나 역시 교육에는 귀가 얇다. 웬만한 유행은 잘 따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지만 자녀교육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아들의 입학식이 있던 날 아이들이 새 친구를 만나듯 학부모들도 새로운 지기가 되었다. 각자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었던 첫 만남이었지만 유독 관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큰 아들이 올해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한마디에 "과외 선생님 소개 좀 해 주세요. 어느 학원에 다녔어요"라며 너도 나도 연락처를 요구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학부모와 사교육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듯하다.

 

아들은 중학생 때까지는 영어, 수학전문학원에 다니다 3월부터 종합학원에 다니고 있다.고등학교 때부터는 내신이 대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종합학원을 선택했다. 혼자 공부를 하기에 버거운 과목만 수강하려 했지만 기출문제 유형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학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들의 학원 수업 일정을 살펴보자. 학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9시에 학교 정문에서 학원차를 타고 학원에 간다. 9시 30분부터 학원  수업에 들어가 새벽 1시에 마친다. 집에 오면 1시 30분. 빨라도 새벽 2시에 잠자리에 든다. 오전 7시에 기상을 하면 취침시간은 겨우 5시간 정도.  아무리 장사라도 5시간 자고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가서 졸지 않을 수 없는 생활이다. 4일 동안 이 생활을 해본 아들은 거의 녹초가 되고 있다.

 

이 학원은 아들이 선택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빡빡한 수업일정이지만 한번 해 보겠다는 각오로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학원생활을 해 보니 장난이 아니란다. 졸리고 매 시간마다 교실을 우르르 옮겨 다니느라 부딪히고….

 

"새벽 1시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아이들이 제대로 학교 수업을 할까요."

"학교 가서 자기도 한대요. 학부모들의 요구를 참작해서 짠 시간표입니다."

 

학원 측에 너무 가혹한 일정을 건의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학원측도 이해가 간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아들에게 "넌 이 생활한 지 1주일도 안 됐지만 그 학원에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은 그런 생활을 해오고 있지 않은가,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방송분야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학교 방송반에 들어가 일을 해보고 싶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싶단다. 그러나 잠이 모자라 정신이 몽롱하고 충혈된 눈으로 무슨 활동인들 흥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공부도 좋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학원생활이라 아들과 상의해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이다. 아들은 이런 수업방식을 곧 접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혹사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통계청과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한 '2007년 사교육비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전체규모는 20조 400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유치원 사교육비와 어학연수비용은 포함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사교육비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전체 학생 77%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학생 10명 중 9명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성적과 사교육의 비례 관계를 보며 어느 부모가 사교육에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2000년 이후 국민의 가계 빚이 4배 이상 늘어나고, 경제 이혼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 노후대책이 소홀하다는 분석도 내 놓았다. 이런 현상은 사교육비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나는 아들 하나이지만 교육비용이 만만찮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분기별로 납부해야 하는 등록금과 석식비도 추가 되었다. 거기다 통신비와 학원비를 챙기다 보면 빠듯하다.

 

현재를 감당하느라 미래는 준비할 겨를이 없다. 대입을 위해 3년을 달리다 보면 연간 1천만원에 육박하는 대학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다. 4년간 죽어라 등록금을 쏟아 부어도 백수로 전락하는 젊은이가 많은 요즘, 참으로 숨통이 막히는 현실이다. 하나 키우기도 힘이 드는데 자식이 여럿인 집은 얼마나 힘이 들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정말 의미 있는 강연을 들었다. 부천시청에서 매월 2차례 실시하는 복사골아카데미에 전 교육부 장관이자 서울대교육학과 문용린 교수가 초대되었다. 문 교수는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통조림 '스팸' 생산으로 부자마을이 된 미국의 소도시 오스틴을 예로 들었다.

 

돼지를 많이 길렀던 오스틴은 호밀이라는 사람에 의해 돼지고기를 이용한 통조림을 개발하게 이른다. 열량식품이 요구되는 군대에 스팸을 납품하게 되고 그 명성이 높아지자 세계로 유통을 확대시키게 되었단다. 현재 오스틴은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룩셈부르크의 10만불보다 높다고 한다. 한 도시의 발전은 호밀이라는 인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올바른 인재 육성에 힘쓰고 있는가? 개인의 적성을 계발할 겨를도 없이 교과에 매달리는 한, 창의적인 인재는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사교육을 안 하는 것이 유행인 시대에 살고 싶다. 학원 전단지가 홍수처럼 밀려와도 자녀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는 부모가 많아지기 바란다. 사교육에 대한 열망이 사라질 수 있는 공교육이 되기를 소망한다. 허리띠 졸라매며 사교육비에 지출하는 돈이 아깝지 않은 학부모가 몇 있겠는가.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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