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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의문사로 아들 잃은 어머니의 절규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위원회는 6일 오전 서울 남창동 위원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년간의 활동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군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눈물을 쏟으며 절규하고 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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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님, 저 서상일 이병 엄마입니다. 우리 아들이 군대간지 93일 만에, 자대배치 받은 지 5일 만에 자살했다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무식해서 인터넷을 할 줄도 모릅니다. 기각이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대통령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가 6일 오전 서울 남창동 위원회 회의실에서 지난 2년간의 활동을 종합 보고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서상일 이병의 어머니 김근자(56)씨가 갑자기 손을 들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주변의 만류로 회견장 밖으로 밀려난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벽을 치며 울부짖었다. 잇따라 김문환 일병의 어머니 이동애(58)씨도 "우리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고 눈물을 머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생때같은 아들을 잃어버린 두 어머니의 탄식이 이어지자, 그 자리에 모여든 모든 어머니들이 저마다 조용히 읊조리며 손수건에 눈물을 찍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구동성으로 절규가 이어졌다. "우리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어요. 의문의 죽음을 밝혀주세요."

삽시간에 기자회견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위원회 실무진들도 격해진 어머니들을 진정시키느라 혼쭐이 났다. 기자들의 질문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군경 의문사 유가족들의 토로와 탄식이 줄을 이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군데군데 아버지들도 눈가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군대 간 아들의 죽음을 현실로 믿을 수 없는 유가족들은 사건 당일부터 '오늘'까지 '자살'이라는 단어로 멍울진 가슴을 부여잡고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위원회가 기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가슴을 쳤다. 어머니들은 실신 지경에 이르러서야 부르르 몸을 떨며 의자에 앉아 진정을 취했다.  

이해동 위원장은 "유가족과 우리가 싸울 이유가 없다"며 직접 위로와 설득에 나섰다. 유가족과 우리가 한편이 돼서 제도개선을 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좀체 위원회의 입장을 듣지 않으려던 어머니들도 위원장의 말에는 귀를 기울였다.

"젊은이가 군대에 가서 죽음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분명 국가가 책임질 일입니다. 망자가 자살에 이르기까지 군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습니까. 군 제도개선이 시급하고, 18대 국회가 이 위원회를 연장하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죽음은 개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똑같은 문제입니다. 어떤 사건이든 국가가 책임있게 처리해야 합니다. 남은 사건은 많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산적한데, 우리에게 남은 기간은 이제 딱 10개월뿐입니다. 일부 유가족이나 단체에서 졸속처리 위험을 걱정할 수 있습니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겠지만, 못다 한 일은 국가가 책임지고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폭행치사 타살'에 대한 축소·은폐사건은 모두 5건이다. 군대 내 의문사 사건의 가장 큰 원인은 구타와 성추행, 따돌림, 암기강요, 욕설 등으로 조사됐다.

총 600건의 진정사건 가운데 지금까지 조사가 끝난 151건의 사건에 대한 분석결과이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을 결정한 43건 가운데 과거 군에서 자살로 결론내린 사건 18건이 모두 구타와 가혹행위, 과중한 업무 부과 등 부대내 환경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 군대는 '살인공화국'이며 '은폐공화국'"

서상일 일병의 어머니 김근자씨가 아들의 의문의 죽음을 호소하며 우리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고 절규했다.
 서상일 일병의 어머니 김근자씨가 아들의 의문의 죽음을 호소하며 우리 아들은 자살하지 않았다고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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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 군의문사위 상임위원은 "군대 내 자살사건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이 존재했다"며 "구타와 욕설, 성추행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사망의 중요하고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조사결과 확인된 군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성추행 ▲야전삽자루나 곡괭이 자루, 주먹으로 때리기 ▲발로 가슴 걷어차거나 온몸 짓밟기 ▲주먹으로 가슴 때리기 ▲팬텀(내무반 침상에 철모를 놓고 방독면을 쓴 채로 그 위에 날아가는 자세로 가슴을 고정시키고 손과 팔을 듬. 가슴이 눌려 욱욱하고 방독면 안에서 구토함) ▲한강철교 ▲반합뚜껑에 머리 박기 ▲K2 가늠쇠에 머리 박기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대대장이 병사들을 내무반에 집합시킨 뒤에, 다방 여종업원들을 동원해 공개된 장소에서 바지를 벗게 한 다음 자위행위를 하게 하고 '성기시합'을 벌여 가장 성기가 커진 병사 순으로 '포상휴가'를 주는 처참한 성적 모독행위도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일을 당한 뒤 결국 자살에 이른 조수호 일병의 경우에는 군의문사 위원회의 조사결과로 '자살'에서 '순직' 처리돼 사실상 기존 국방부의 조사결과를 뒤집기도 했다. 

이밖에 노상서 이병과 김재영 이병의 경우에도 각각 군의문사 위원회의 진상규명 활동으로 인해 사망구분에 대한 재심의 결정이 내려져 40년만에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번에 위원회가 밝힌 진상규명 사건들이 대부분 50~60년대, 80년대 사건들로 사실상 최근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위원회가 밝혀낸 5건의 사건은 50년대 2건, 60년대 2건, 80년대 사건이 1건"이라며 "최소 25년 전 사건에 대해서 타살로 밝혀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군의문사 사건들은 적어도 20년 이상은 돼야 진상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군의문사사건은 당시 사건과 관계된 이의 고백이나 양심선언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남아있는 기한이 짧다는 이유로 군의문사 사건들의 처리가 졸속으로 되지 않기를 당부한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본 한 어머니는 "우리 아들은 벌써 4년째 국군통합병원에 누워있다"며 "오늘도 또 어떤 아이가 죽음에 이르러 병원으로 실려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멀쩡한 아이들이 왜 군대에 가서 자살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며 "우리나라 군대는 살인공화국이며 은폐공화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이후 사건에 대해서만 조사개시 결정을 내려 사건을 조사 중에 있으며, 아직까지도 449건의 군대 내 의문사 사건이 진실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6일 오전 서울 남창동 위원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간의 활동을 종합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6일 오전 서울 남창동 위원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간의 활동을 종합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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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군의문사 진상규명, #군대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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