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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 대한 환상에 젖었던 나도 한때는 극성 엄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아이큐적성 검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이의 아이큐 지수는 143이었고 적성도 아주 뛰어난 편이었지요. 교육개발원에서 나온 상담자는 제게 "저 아이에 대해서는 다른 할 말이 없다"며 "돈 많으십니까?"라고 묻더군요.

아이를 위해 제게 필요한 것은 남들과 다른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경제력, 그리고 아이를 이완시켜 주는 일 정도라며 잘 키우라고 하더군요. 자식을 둔 부모는 누구나 자기 아이에 대해 환상을 갖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누구나 탐을 내는 시범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고 이리저리 연락을 취해 봤지요.

아이의 비둘기 기자 시절 기자 한국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아들아이
▲ 아이의 비둘기 기자 시절 아이의 비둘기 기자 시절 기자 한국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소개된 아들아이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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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학교는 공립이어서 그 지역 거주자만 입학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이미 소문이 나있던 터라 위장전입자가 상당히 많아 인근에 또 하나의 초등학교를 짓고도 2∼3부제 수업을 해야 할 정도로 그 초등학교의 인지도는 높았습니다.

당시 제 상담 전화를 받으신 분은 교육학을 전공한 장학사 출신의 교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제게 "왜 굳이 아이를 사립이나 이 학교로 보내려 하느냐"며 "차라리 아이를 잘 관찰한 뒤 아이가 잘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시켜보라"는 조언을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소개해 준 것이 조석희 박사가 시작했다는 한국영재교육학술원이었습니다. 양재동과 노원에 각각 한군데씩 있는데 일단 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고요.

그곳은 영재 적성 검사를 통과한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을 한 그룹에 4명만 받아 일주일에 한 번씩 12회(3개월) 과정으로 수리영역과 논리영역만 그룹 토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곳이었지요. 아들아이가 받은 공부와 관련된 유일한 사교육은 영재교육원을 1학년부터 5학년까지 다닌 것뿐입니다.

2001년 1월1일 전면 기사이다.
▲ 소년한국 일보 2001년 1월1일 전면 기사이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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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 허영심을 부추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영재 교육을 본격화 한다면서 서울교육대학교에 영재 교육을 위탁됐습니다. 그 영재 교육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정보부문 20명, 과학부문 60명, 수학 부문 80명을 뽑아 토요일마다 강훈련과 매주 시험을 보고 그 시험 결과를 평균치로 낸 다음 5명을 뽑아 동일계열 영재 학교 진학시키고 그 학생들은 추후 서울대학교에 무시험 진학을 시킨다는 것이죠. 훈련이 고되다고 부모의 동의서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북 학교에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의 학교에서도 제가 알아본 후 교장 선생님께 추천서 온 것이 없느냐고 하니 그때야 알아보셨을  정도니까요. 시험은 세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1차 서류 면접의 자격은 1달 이내에 검사받은 아이큐 적성검사 결과 아이큐 130 이상, 학교장 추천서 해당부서 장(과학부장, 수학부장)의 영재 소견서 등이었지요. 2차는 5지 선다형문제였는데 아들아이는 2배수를 뽑는 2차까지 합격을 했더랬습니다.

3차 시험은 주관식이었는데 정보와 돈으로 무장된 강남 아이들과 상대가 되지 않더군요. 아이는 과학영재 부문에 시험을 치렀는데 시험을 치르러 온 아이들의 대부분은 이미 연세대학교에 위탁된 영재교육을 1년간이나 받은 상태였고 족집게 과외를 통해 고등학교 2학년 과학까지 통달한 상태더군요.

그 사실을 알고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담당자는 “과학이라는 것이 워낙 범위가 광범위해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수긍할 수 없는 답변을 하더군요. 아이는 3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어쨌거나 한 해 더 시험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가 원치 않아 시험을 포기했지요. 그 정도 강훈련을 받는다면 꼭 영재교육이 아니어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영재교육원 학습 과정은 학교 수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1학년 때 이미 5학년 과정에서 나오는 빛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고, 모든 수업이 토론과 논술 형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5년간이  자연스럽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 것은 확실합니다. 그 훈련이 바탕이 되어 외부 글쓰기 대회,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소년한국일보> 비둘기 기자 생활을 하며 즐거운 글쓰기를 익혔으니까요.

돈 없는 부모라면 인터넷 정보를 최대한 이용하라!

저는 아이와 놀이에 치중하느라 현장 학습을 무척 많이 다녔습니다. 코엑스 만화페스티벌이나 과학관은 기본이었고 청와대 견학, 농구장 가기, 사극 세트장, 오리 농군 넣기, 도자기 축제, 나혜석 자취를 따라가는 기행 등등. 심지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학교에 이야기하고 다녀올 정도였으니까요.

초대 총대 서정욱 박사와
▲ 인터넷 청소년 연맹 발대식 초대 총대 서정욱 박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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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현장학습이라고 하면 비용이 많이 드는 연수나 캠프만 떠올리기 쉬운데 교육부 사이트나 인터넷 사이트를 잘 활용하면 양질의 체험 프로그램들이 무료이거나 아주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아이는 그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사격훈련을 받기도 했으며 다양한 문화체험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영어 단어 하나 수학 한 문제 푸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서정욱 강지원 변호사 등이 보인다.
▲ 아이는 청소년 연맹 대표로 추첨을 하기 위해 저곳에 갔다 서정욱 강지원 변호사 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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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 확신은 틀리지 않아 아이는 외부 과학 독후감 대회, 이메일 쓰기 대회 등에서 상을 타기도 하고  <매일경제신문><소년한국일보> 등에 토론기사가 실리기도 하고 아리랑 티브이나 KBS 뉴스 등에 인터뷰 장면이 소개되기도 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초등학교 5년간 영재 훈련원에서 한 토론 학습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메일 쓰기대회, 매일경제 신문 토론 등을 한 흔적들.
▲ 아이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거운 학교 생활을 했다. 이메일 쓰기대회, 매일경제 신문 토론 등을 한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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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에 목맨 사교육을 시키지 못했지만...

사실 저는 사교육 현장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고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 돌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국어와 수학 대신 영어 학원에 다닌다는 아이도 있고 지인이 집을 팔아 아이를 호주로 유학 보내고 싶다고 의논을 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에 오래 몸담아 본 제 경험에 비추면 공부는 스스로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내내 아들아이에게 학습지 하나 시켜 본 일이 없고, 과외나 사설학원을 보내 본 적이 없습니다. 중학교 때 잠시 제가 다니던 구리시의 입시학원에 아들아이도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닌 적이 있는데 제가 학원을 그만두면서 아이가 따로 교육비를 내야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그 대신 전 아들아이에게 가능하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고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윤구병 선생님, 홍세화님, 이유명호 선생님과의 만남은 아이에게 많은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 가능한 한 많은 행사에 아이를 데려갔습니다. 교회에서는 외국인 선교회에서 일하며 외국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말을 못해도 외국인을 피하거나 어색해하지 않습니다. 사격부가 있는 청량리 중학교에서 사격 꿈나무 발굴을 위한 강습을 할 때 탄알 값만 내고 사격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남들 못잖은 다양한 체험을 했지만 결국 제가 아들아이를 위해 꾸준히 사교육비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검도 비용뿐 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한 검도라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4단을 따고 요즘은 5단이 하는 장백 검법을 배우고 있지요.

일주일에 두 번씩이라도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하니 그것조차 막을 수는 없어 새벽에 또는 밤늦게 검도장에 가는 것을 그대로 둡니다. 그렇게 사교육과 상관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늘 재미있게 노는 훈련을 해 온 아들아이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됩니다. 아들아이의 인생 모토는 여전히 “노는 게 남는 것이다”이고요.

아들아이와 시민기자 이정희 선생
▲ 오마이 생일잔치에서 아들아이와 시민기자 이정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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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인생 모토에 여전히 충실한 아이는 고 3이 된 지금도 ‘놀토’에는 검도장서 축구를 하느라 밤 12시에 들어오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일주일은 가볍게 놀아줘야 한다며 상으로 받아 둔 문화상품권으로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한 편씩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제 아들아이를 본 분들마다 “어쩌면 아드님이 저렇게 잘 컸느냐?”는 인사를 빼놓지 않거든요. 심지어 놀이방과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의 담임선생님께서도 제 아들아이가 나무랄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시거든요.

아리랑 트브이 랭크 코리아에 아들아이와 할머니가 출연했다.
외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은  어른을 공경하는 예정바른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 아리랑 티브이에 출연한 아들아이와 할머니 아리랑 트브이 랭크 코리아에 아들아이와 할머니가 출연했다. 외국인들은 아직도 한국은 어른을 공경하는 예정바른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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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더 넓게 보며  깨달아 가는 아이의 모습
▲ 박종철 열사 추모 인터뷰 세상을 더 넓게 보며 깨달아 가는 아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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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과 대학이 곧 모든 것이 돼버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대학을 들어가느냐로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합니다. 물론 아들아이 역시 수학이나 영어에서 갑갑함을 느낀다며 고민을 하기도 하고 듣기가 하나도 안 들린다고 불평 비슷한 푸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월수입 100만원이 고작인 집안 형편을 잘 아는 아이는 문제집 하나 사려고 해도 몇 번을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그래도 아이는 자기는 참 풍성한 경험을 했다며 고마워합니다. 남들처럼 입시에 맞추어 기계처럼 아이를 뺑뺑이 돌리며 사교육을 시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고 자부합니다.

윤구병 선생님 강의가 끝난 후
▲ 윤구병 선생님과 윤구병 선생님 강의가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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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사교육을 안 시킨 저 같은 아줌마는 간이 큰 아줌마고 무식한 아줌마일까요? 입시에만 목적을 둔 사교육이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회, 교육이 진정한 공공재가 되어 평생 학습이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은 이상에 불과한 건지요.

덧붙이는 글 | '사교육을 말하다'를 보고 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봅니다.



태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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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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