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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놈의 새끼가 돈 있으면 됐지, 와 권력 근처에 왔다갔다 다니노! 내보내!"

 

전두환 전 대통령이 80년대 중반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일하던 모 인사를 향해 던진 말이다. 실제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재벌 출신 이 인사를 얼마 안 돼 청와대에서 쫓아낸 걸로 알려져 있다. 유능한 인재로 알려져 스카우트 됐지만, 재벌이라서 권좌의 핵심에 앉지 못했던 게다.

 

전두환을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신군부가 맹위를 떨치던 80년대 초반은 '육법당' 시절이었다. '육법당'은 육사 출신들이 군사정권을 만들고 판검사들이 이에 야합해 만들어진 당시 신조어다. '끼리끼리' 해먹기로 유명했던 5공 '육법당' 시절에도 재벌과 권력은 따로 놀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육법당' 시절에도 없었던 해괴한 일들이 마구 벌어지고 있다. 돈이 있어야 권력도 갖고, 명예도 생긴다. 말 그대로 '승자독식 세상'이 됐다. 이명박정부 내각을 보라. 위장전입과 땅 투기,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자녀의 이중국적과 공짜 건강보험 이용, 한글로 미국 박사학위 따기 등 경력 부풀리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다.

 

해명 또한 가관이다.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는 아니었다(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후보자)", "유방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했다(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후보자)", "딸이 중3때 연합고사 수석 한 스트레스 때문에 국적을 포기했다(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후보자)", "부부가 25년간 교수 했는데 둘이 합쳐 재산 30억원이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거 아니다(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후보자)", "내가 산건 4천만원짜리 '싸구려' 골프회원권이다(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등 차마 내뱉기 힘든 '화려한 말의 잔치'가 이어지고 있다.

 

 

유능해서 돈 많은 게 죄냐고?

 

더 큰 문제는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이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걸러서 내보낸 인물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으니, 내심 '죽을 맛'일 게다. 내각 꾸리기 전부터 인사검증에서 문제가 될 사람들은 이미 '총선용'으로 뺐을 터다. 차악은 남았어도 차선은 없는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주류가 대략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된다. 수천억대 재산가인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도 내각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방법으로만 재산을 모았을 리 만무하니까!

 

또 문제 생기면 '유능해서 돈 많은 게 죄냐'고 버티고, 문제 삼으면 '좌빨(좌파빨갱이)'로 몰아붙이면 끝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은 지난 민주개혁정부 10년간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 공직자의 도덕적 기준과 잣대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어떻게 알게 됐냐고? 바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공부시켜준 덕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민주개혁정부 10년간 누구든 '도덕성' 시비를 걸었다. 공직자 선정의 제1의 기준이 '도덕성'이 된 탓도 여기에 있다. 인사 청문을 날카롭고 까다롭게 하기로 유명한 한나라당이 자가당착에 빠진 거다.

 

이들은 민주당을 향해 이제 '그만~'하자고 난리다. 내부적으로는 '밀리면 죽는다'는 논리가 작동했겠지만, 겉으로는 도덕적 흠결이 뭐가 문제냐, 일만 잘하면 된다고 악을 쓰고 있다. 여기에 말도 안 되는 '실용주의'를 갖다 붙인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이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짜 기득권'들의 총공세가 이어지는 셈이다.

 

대표적인 게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에 대한 조중동의 입장이다. 민주개혁정부 시절이라면, 예의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어떻게 정치적 독립성이 생명인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갈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을 터다.

 

그러나 조용하다. 아무래도 꽤 오랜 세월 지속된 '우정' 탓인 모양이다. 최씨는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인 데다가, <조선일보>와 한국갤럽도 여론조사에서만큼은 '동지적 관계'가 아니었던가.

 

또, 민주개혁정부 10년간 '시민단체 출신의 정치진출'에 대해 목 놓아 비판했던 조중동이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들의 정치진출에 대해서는 쓴 소리가 없다. <중앙일보>는 29일자 조간에서 "도봉갑에 '뉴라이트 신예' 신지호, 민주당 김근태와 이념대결 예고"라는 기사까지 썼다. 시민단체의 정치진출에 입에도 못 담을 험담을 늘어놓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싹 씻고 있다.

 

 

자가당착 빠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의 이중잣대

 

정상호 한양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를 "이중잣대"라고 비판했다. 강자의 논리라는 게다. 이명박정부 안에는 공직자의 기준과 인식 자체에 '윤리'는 없거나 희박한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나치게 "이명박정부가 경제적 실용주의를 강조하다보니까 반서민주의 경향이 나타난다"며 "철저한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5개 권력기관장을 영남출신이 독식하는 형태로 만들어놔 비호남주의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명박정부는 ▲반서민주의 ▲철저한 지역주의 ▲반정당주의 ▲반정치주의 등 '4대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며 "인사권을 행사할 때 공식적인 검증절차를 배제한 채 당과의 협력 없이 밀실에서 몇몇이 하다보니 이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라고 혀를 찼다.

 

이런 문제를 낳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없는 행동을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서울시장 재직 당시 '서울시를 봉헌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망교회 인맥이 뜨는 것도 이와 관계가 깊다는 말도 된다.

 

공적 영역에 대한 윤리적 의식 부재, 철저한 성장주의가 낳은 반서민주의, 또 한나라당의 좁은 식견인 '영남패권'이 빚은 반호남주의, 정치와 정당을 도구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반정치주의와 반정당주의가 결국 이 같은 인사 파동을 낳게 됐다는 것이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도 비슷한 맥락의 비판을 던졌다. 홍 교수는 "이미 한국사회는 승자독식의 사회가 됐다"며 "특정분야의 승자가 다른 분야의 승자도 되는, 돈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고, 권력을 가지면 명예도 얻는,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갈 수 있는 가치를 하나 가진 사람이 독식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권력은 돈을 견제하고, 돈을 가진 사람은 명예를 갖고 존중받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게 옳다"며 "이명박정권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대표적인 '타인지각장애'가 있는 분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서 그는 "남을 공격할 때는 '도덕'을 내세우고, 나는 누가 뭐라든 아무 말이나 뱉어버리는 사람들"이라며 "타인지각장애의 대표적 행동은 숭례문 방화를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고 했던 대통령의 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한나라당은 과거 노무현정권을 향해 아마추어정권이라고 비난했었는데 과연 이명박정부 내각이 '소름 끼칠 정도로 유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아마추어도 안 되는 사람들이 뭘 모르고 아무렇게나 비판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분개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시스템은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자기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문화'를 갖고 자꾸 '능력주의'라고 포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씁쓸해했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어떤 충고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김 교수는 "어차피 이명박정부의 탄생 자체가 도적적인 것은 부차적으로 돌리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 게 아니냐"고 국민냉소 분위기를 대변하기도 했다.

 

까도까도 끝이 없어 '양파내각' 별명이 붙은 이명박정부 초기 내각. 경제적 기득권을 쥔 대한민국 귀족엘리트 권력과 이에 준동하는 보수언론, 재벌의 '위험한 삼각동맹'이 언제까지 굳건히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이명박정부, #타인지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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