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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양어지 설화는, 한 처녀가 연못에 나와 물고기의 먹이를 주곤 했다. 그러기를 몇 해인데, 물고기는 그 처녀가 한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물고기는 그 처녀의 애타는 마음이 적힌 글을 삼킨 채, 어부에게 일부러 잡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들어갔다.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그 안에서 편지가 나왔다. 편지를 본 남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헤아려 성혼을 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하루에도 몇 수십 통씩 사랑의 문자메세지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에게 이 설화는 정말 격세지감이 있다. 하지만 사랑은 신비감이 차지하는 몫이 크고, 고전적인 사랑의 표현은 시대를 초월해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몇 해 전 서울의 비원을 동유럽(유고)에서 온 노(老) 음악인과 예인(예술가)들이 함께 구경했다. 그때 관광가이드 통역인이 비원의 주합루, 부용정, 애련정, 부용지, 어수문 등에 대한 설명을 재미나게 했다. 지인들이 자리를 옮긴 만찬 중에 비원 중에 어디가 제일 마음에 드느냐고 통역인을 통해 묻자, 이 음악인은 빙긋 웃으면서, 물고기는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어수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수문'은 "신하는 물고기처럼 임금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옛 선인들은 물고기 떼들을 그중 한 마리가 인솔해 다니는 것과 같이, 행진하는 군대의 모습에서 이를 비유하기도 하고, 종종 임금과 신하, 장수와 병사,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이르기도 하지만, 백년 해로를 약속한 부부의 관계에도 빗대어 표현한다. 이렇듯 사람들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물고기들처럼, 사랑을 떠나서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유럽 사람들에게 물고기는 풍요와 지혜의 상징이라고 한다. 바다 깊은 곳을 힘차게 파고 들어가는가 하면, 호수에서 잠자고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비를 뿌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가끔 어부로 비유된다. 이때 크리스트 교인은 물고기로 상징된다. 세례 때 쓰이는 물은, 물고기에게 꼭 있어야 할 자연의 요소이고 재생을 위한 도구이다. 성서 시편의 물고기는 여성의 암유로 쓰인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이 물고기가 되고 장차 어머니가 될 여인에게 먹혀 재생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물고기의 형상을 나무로 만든 '목어'는, 수행자로서 물고기처럼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고 정진하라는 죽비의 뜻을 내포한다. 한시나 시조에 등장하는 물고기들은 대개 신화적 상징성보다는 자연과의 조화와 시인의 여흥을 돋운다면, 현대시에는 물고기가 방황이나 좌절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절의 종각에 속이 텅빈 채 거꾸로 매달린 목어 한 마리처럼, 밤낮 없이 핍진한 현대의 삶을 살아가는 그 길은 더러 본의 아니게 남의 길을 가로 막기도 한다. 맹문재 시인은 이 각박한 사랑이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길, 사랑의 길을, 물고기의 여유자적한 수행을 통해, 각성하라는 듯 일러준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물고기에게 배우다'-'맹문재'

태그:#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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