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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다문화 가정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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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베트남 출신 신부들의 자살 소식이 잦아졌습니다.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 남편에게 맞아 숨졌던 후안마이씨 사건이 아직도 생생한데, 지난 2월 6일에는 경산에서 결혼하고 입국한 지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트란 탄 란(22)씨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사건의 정확한 진상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부부의 갈등과 그에 따른 비극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일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렵지만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예견과는 달리 헤어지거나 헤어지기 직전까지 갔다가도 다시 마음을 합하게 됩니다. 그러한 결심을 하게 하는 데는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큰 몫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항상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로 인한 갈등은 여느 부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베트남 출신 결혼 이민자인 쩌우는 결혼 후 아이를 낳자마자 베트남으로 보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과의 불화로 쉼터에서 일 년 가까이 생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쩌우의 남편은 아내가 우리말이 서툴고, 친구도 없어 힘들어한다며 고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해 아내와의 원활한 대화를 위해 매일 베트남어를 공부할 만큼 성실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이와 문화 차이, 양육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두 사람을 힘들게 했고, 결국 출산 후 별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여를 지내던 쩌우는 쉼터의 권유로 남편과 재결합했고, 작년 1월에 재혁이를 데려왔습니다. 한국에 다시 온 지 일 년이 지난 아이는 올해 만 다섯 살이지만 아직까지 또래에 비해 우리말이 서툽니다. 게다가 한국에 와서 어린이집에 다닌 후로는 곧잘 알아듣던 베트남어도 까먹고 있어 엄마는 여간 속상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쩌우는 요즘 재혁이 양육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잘하려면 아빠나 엄마가 항상 말벗이 돼 주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말하고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무일뿐이고, 쩌우 역시 지난해 가을부터 다니기 시작한 봉제공장에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면서 아이와 놀아 줄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선 올해부턴 재혁이를 종일반에 넣지 말고, 아이에게 학습지 선생님을 불러 한글도 가르치고, 수학도 가르쳐야 한다는 조언을 아까지 않습니다. 하지만, 쩌우는 어린 아이일지라도 사교육도 해야 하고,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그런 말들이 자신의 형편을 모르는 사람들의 닦달로 느껴집니다.

사실 쩌우도 재혁이를 위해 올해부턴 학습지 선생님도 부르고, 아이와 놀아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기 위해 반나절만 일하겠다는 사람을 써주는 공장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좀 늦긴 하지만 막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한 재혁이가 한국어만이라도 또래 아이들만큼 했으면 하는 생각에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혁이 문제로 아이 아빠와 상의를 해 보지만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고, 요즘 지난 5년간 한국생활 경험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는지 알아본다는 쩌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아이도 한글을 빨리 익히게 하고 싶어요. 말도 잘하고요. 제가 한국말도 잘하고, 아이하고 조금만이라도 더 함께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통의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재혁이가 베트남으로 보내졌던 것처럼 베트남으로 보내지고,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재혁이는 엄마 아빠를 곁에 두고 있으니 참 행복한 아이입니다. 앞으로 재혁의 양육 문제로 더 힘든 날을 보내야 할지 모르지만, 재혁 엄마와 아빠는 아이와 함께 있는 길을 택했으니 말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집회 모습
 이주 노동자들의 집회 모습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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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 #결혼이주여성, #학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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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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