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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한 '죄송합니다' 소리도 안 하데요?"

 

신부님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삼성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가 겉으로는 '면담'을 하자고 요청해놓고, 속으로는 '소환조사'를 준비하다 사제단에게 들켜 된통 야단을 맞았다. 사제단은 80년대 공안검사들이 참고인 신분으로 부른 다음, 체포영장 발부해 구속시켰던 과거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고 꾸짖었다.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신부는 2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조준웅 특검과의 면담 무산배경과 경위를 비롯해 50여일 간 진행된 특검수사활동에 대해서도 혹독히 평가했다.

 

무엇보다 다음달 9일 1차 수사기한이 끝나는 시점에서 '마무리 수순'으로 사제단을 소환해 수사의 구색 맞추기 용으로 활용하려고 했다고 분개했다. 실질적인 수사는 변죽만 울리고 끝내면서, 구색만 맞추면 무엇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전 신부는 "면담이 예고 없이 소환조사로 바뀐 것은 전형적인 공안수법"이라며 "특검이 과거 공안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 신부는 "특검의 수사가 끝나면 우리도 뭔가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며 "삼성비자금비리의혹이 어느날 갑자기 이명박특검처럼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도록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충 얼버무리는 방식으로 수사를 종결한다면 그 자체로 특검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남은 기간 성실히 수사에 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다음은 전 신부와 나눈 일문일답. 

 

- 조준웅 특검이 사제단에 면담을 요청해놓고 기자브리핑 때는 소환조사라고 밝혀 소동이 빚어졌다. 27일 저녁 조 특검이 사과하겠다고 밝혔었는데, 사과는 받았나.

"못 받았다. 사과가 아니었다. 어제(27일) 저녁 늦게 전화가 왔었다. 사과라기보다는 해명이었다. 흔한 말로 '죄송합니다' 소리도 안 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꾸 '오해'라고 변명하길래 이렇게 말했다. 아랫사람이 잘못한 거면 윗사람에게도 잘못이 있는 거라고. 그랬더니 조 특검은 '얘기가 잘 안 돼서 그런 모양'이라며 '다음에 다시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건 사과가 아니었다. 엉터리 해명에 불과했다."

 

- 조 특검과의 면담은 어떤 경위를 거쳐 마련됐나.

"조 특검이 나를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지역대표 신부들과 총무신부가 함께 가자고 했다. 마침 해야 할 얘기도 있고 해서 지방에서부터 모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면담이 아니라 소환조사라는 보도를 접했다. 우리로서는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조 특검은 우리를 초청할 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제 전화로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 면담이 소환조사로 변경되는 일이 있나.

"말도 안 된다. 이건 전형적인 공안수법이다. 80년대 독재시절 공안검사들은 사람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답시고 오라고 한 뒤에 조서 꾸며 구속시키곤 했다. 과거 공안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거다. 우리는 면담을 거부했고, 진행과정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면담이 소환조사로 둔갑... 사제단은 어이가 없다"

 

- 특검은 사제단을 상대로 무엇을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나.

"김영희(김용철 변호인단 소속) 변호사의 전언에 따르면, 특검은 우리를 상대로 '기자회견 경위'를 묻겠다고 했다는 거다. 지난해 10월 29일 처음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경위를 캐겠다는 건대, 정말 어이가 없다. 우리는 삼성그룹 내부고발자의 고백을 듣고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확증이 서서 우리 입으로 세상에 삼성비리를 고발한 것뿐이다. 그게 조사대상이 되나. 또 신부들이 기자회견 한 것과 삼성비리가 무슨 관계인가."

 

- 특검이 사제단을 왜 조사하려고 했다고 보나.

"삼성특검을 마무리 지으려는 수순으로 보인다. 특검수사의 마지막 단계로 사제단을 조사하려고 했다는 생각이다. 사제단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각색해서 수사 결말에 이용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제단을 특검수사의 구색 맞추기 용으로 쓰려고 했던 거다."

 

- 특검이 이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정황증거가 포착됐나.

"차명계좌 보유의혹 대상자를 불러 '이 계좌가 당신 계좌냐'고 묻는다고 들었다. 그러면, 내 것이라고 한단다. 그러면 추궁하고, 파고들어야 정상 아닌가. 그러나 추궁해서 자백받는 경우가 드물다고 들었다. 오히려 사건의 결과를 덮으려고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 지금까지 특검수사는 어떻게 평가하나.

"변죽만 울렸다고 본다.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의 성과가 무엇인가. 비밀금고 장소로 지목됐던 삼성본관 27층은 이미 사무실 위치도 바뀌어 있었다. 이학수 부회장은 조서도 안 꾸미고 환담만 나눠 문제가 됐다. 특검이 움직이는 발걸음을 삼성이 미리 알고 정보도 빼돌리고 증거인멸까지 서슴지 않았다. 뒷북수사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이 부회장 소환은 수사 초기에 소환했어야 옳다."

 

- 언론은 이재용 전무의 소환으로 특검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그렇게 판단 안한다. 특검이 50일간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 전무의 혐의사실을 밝혀내려고 애썼다면 못했겠나. 피의자로 구속 못 시키겠나. 특검이 그런 태도로 이 전무를 소환했다고 보기 힘들다. 불법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서는 이재용 전무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진행됐고, 따라서 이 전무는 '혐의 없음'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제갈복성 특검보가 불법로비 수사를 맡고 있다고 알려졌다. 왜 소환자가 없다고 보나.

"특검의 수사항목에 불법로비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뇌물검사로 지목된 임채진 검찰총장, 이종백 국가청렴위원장, 이귀남 대검 중수부장을 소환하지 않고 있다. 이런 태도로 미뤄볼 때 수사의지를 의심케 한다. 삼성비자금의혹수사 사건은 비자금 규모가 10조원이 넘는 대한민국 최대 비리사건이다. 계좌만 수만 개로 알려졌다. 자금추적만 성실히 해도 2~3년은 족히 걸린다는 게 수사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검은 지금이라도 이 사안의 중대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제대로 수사에 나서야 한다. 자신이 없다면 도로 검찰로 넘기는 편이 낫다."

 

"역사의 죄인이냐, 명예로운 특검의 길이냐"

 

- 뇌물검사 명단은 특검에 넘겼나.

"특검이 뇌물검사 명단을 달라고 요청한 적도 없다. 요청을 해야 주는 것 아닌가. 또 특검은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김 변호사가 수차례 특검에 출석했지만 단 한 번도 조서를 쓰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제갈 특검보는 수사경험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다. 그런 분이 왜 그 자리에 앉아계신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 특검팀이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벌금' '이재용-이건희-홍라희' 등 이씨 일가에 대해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면 사제단은 어떻게 할 계획인가.

"다음달 9일 1차 수사기간이 끝나면 우리도 뭔가 얘기해야 한다고 본다. 삼성비자금비리의혹이 이명박특검처럼 별안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도록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발견된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벌금형, 나머지는 무혐의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낸다면 그 자체로 특검이 국민을 기만하는 거다. 그러면 특검팀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다. 국민세금으로 50~60일간 횡포 아닌 횡포를 부린 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본다."

 

- 가톨릭 사제로서 삼성비자금비리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악이 만연돼 비롯된 사건으로 본다. 땅 투기와 세금탈루, 표절의혹을 받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이 모두 억울하다고 할 정도로 도덕불감증에 빠져 있는 세상이지 않나. 삼성문제는 '세상정화' 차원에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악은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나는 삼성의 비리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 전반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기대한다."

 

- 조준웅 특검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이 나라가 당신에게 준 역사적 책무를 훌륭하게 완수해야 우리도 살고 특검도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정말 남은 기간 특검팀이 책무를 분명히 해주기를 바란다. 9일 남았지만, 사명감을 갖고 성실히 책무를 다 해주기를 바란다."


태그:#삼성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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