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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에 이어 요즘 또 하나의 말이 회자되고 있다. 바로 '등록금 1000만 원 세대'.

사회에 진출한 20대 대다수가 비정규직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88만 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이라면, 갓 대학에 입학한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휴학을 밥 먹듯이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바로 등록금 1000만 원 세대의 암울한 현실이다.

고액 등록금이 대학 교육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69곳을 대상으로 예결산 자료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를 보면, 대학들이 타당하게 등록금을 책정했는지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31일,  참여연대가 인수위 앞에서 고액 등록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 등록금 문제 정녕, 죽어야 해결되는가 지난 1월 31일, 참여연대가 인수위 앞에서 고액 등록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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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립금 예산 7000원, 재단 전입 자산 44억?

참여연대 자료 '대학 재정 운영과 등록금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들이 예산을 부풀려 등록금을 올려 받거나 예정에 없던 막대한 자금을 재단 자산으로 유입한 금액이 한해 2,300여 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대학 중 ㄷ대학교 결산서를 보면 2006년도에 연구기금 적립 예산 1,000원, 건축기금 예산 1,000원, 장학기금 1,000원 등 적립금 총 예산이 단 돈 7천 원에 불과했으나, 실제 적립금 목적으로 학교 회계에서 재단 자산에 편입된 비용은 4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생색내기라고 하기도 민망한 예산 책정을 하고, 학생들에게 걷은 등록금을 재단 자산 부풀리기에 더 쓰고 있다는 말이다.

7000원 소요 예산이 결산에서는 44억 수입으로 변모했다.(빨간색) 예산에는 없는 엄청난 자금 유입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런식의 예결산 문제는비단 한 두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 결산서의 엄청난 자금 유입은 결국 등록금 7000원 소요 예산이 결산에서는 44억 수입으로 변모했다.(빨간색) 예산에는 없는 엄청난 자금 유입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이런식의 예결산 문제는비단 한 두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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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대학 외에도 상당수 대학들이 이런 변칙적인 예결산서를 작성해서 등록금 산출 근거를 제대로 찾기 힘든 곳이 많았다. 특히 예산과 결산을 비교해 보면 예산액에 비해 결산액이 턱없이 높게 올라간 사례가 있는데, 이는 등록금을 예정했던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이 걷었음을 말해준다.

참여연대의 자료 중 각 대학별 06회계연도 '투자와 기타자산' 항목 지출 실태를 보면 덕성여대는 예산액은 1만 원이었으나 결산액은 무려 44억 원에 이르렀으며, 홍익대 500여 억 원, 가톨릭대·건국대·동덕여대·서울여대·숙명여대·연세대·인하대 등은 예산대비 1백여 억 원 이상 결산액이 증가했다.

결국 이런 '예산 외' 비용은 고스란히 적립금 형식으로 대학 금고에 잠자게 되는 것이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김동언 간사는 "대학 예결산서에서 등록금 산출근거를 찾기가 힘든데도 연례행사처럼 고액의 등록금 인상을 감행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대학들의 형식적인 예결산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수도권 소재 69개 대학 중 예결산서에 등록금 산출근거를 명확히 표기한 대학은 세종대학교와 추계예대, 단 두 곳뿐이었다.

적립금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수도권 소재 대학들의 기금 적립 총액은 6,284억 원이었다. 이중에서 가천의과학대학교와 서울기독대학교는 적립금 100%를 건축기금으로 적립하고 있으며, 홍익대(98%), 한세대(98%), 협성대(95%), 추계예대(93%), 세종대(92%) 등도 적립금의 대부분을 학교의 재산이 되는 건축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또한 총신대학교(100%), 건국대(97%), 경기대(95%), 평택대(94%), 성균관대(90%) 등 많은 학교들이 용도가 불명확한 기타 기금으로 수십에서 수백억 원을 적립하고 있다.

2006년 한 해 동안 각종 건축과 부동산 매입 등을 위해 각 학교들이 등록금으로 충당한 비용이 고려대 609억 원, 이화여대 537억 원, 경희대 402억 원, 한양대 354억 원에 달했다.

올해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인 강정주씨는 "5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학생복지와 관련해 별반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 적립금이 학생들을 위해서가 아니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 적립금이 교육의 질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연구기금이나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장학기금이 아닌 부동산 매입과 건축 등에 사용되는 것이다. '우선 올리고 보자'는 식으로 등록금을 인상한 뒤, 적립금 형태로 전환하여 재단의 재산으로 편입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등록금을 사용하겠다는 정확한 계획이 없으니 사용처 없는 적립금은 쌓이기만 할 뿐이다. 또 재단전입금을 등록금으로만 충당하는 '재단 전입금 0원' 학교가 51%에 달하고 있어 재단이 학생 등록금으로만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등록금, 산출 근거부터 명확히 밝혀야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학생·학부모·교사·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전국 등록금대첵네트워크가 2월 19일 국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학생·학부모·교사·시민사회단체가 결성한 전국 등록금대첵네트워크가 2월 19일 국회 앞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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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 안팎의 등록금이 인상되고 있다. 대학은 학생들이 낸 등록금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주고, 그에 근거해서 등록금 인상안을 밝혀야만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 제31조(예산 및 결산의 제출)와 동법 시행령 제14조(예산과 결산의 제출시기) 및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에 대한 특례규칙에 따라 학교 예결산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작성 방법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결산서에 산출 근거를 기재한 대학이 거의 없고, 예산서에도 산출근거를 부실하게 기재하는 등 학교가 재정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등록금을 어떻게 지출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형식적인 예결산서만으로는 어떤 근거로 예산을 수립하고 등록금을 인상하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등록금이 학생을 위해 쓰이지 않고 용도 불명의 적립금으로 잠자고만 있다. 명확한 계획도 없이 '올리고 보자'는 주먹구구식 등록금 인상이 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홍근 기자는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자원활동가입니다.



태그:#등록금,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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