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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엮은 듯하지만 문 위에다가 대나무 잎까지 걸쳐 두었는데 퍽 예스러워요. 문득 “누구 왔수?” 하고 머리 하얀 할머니가 내다볼 것 같기도 하고…….
▲ 삽짝문 아무렇게나 엮은 듯하지만 문 위에다가 대나무 잎까지 걸쳐 두었는데 퍽 예스러워요. 문득 “누구 왔수?” 하고 머리 하얀 할머니가 내다볼 것 같기도 하고…….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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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빛나는 대가야를 몸소 느꼈습니다. 그 옛날 ‘순장제도’를 새롭게 알았고, 그 때문에 왕릉에 산 채로 묻힌 사람들을 애잔한 마음으로 떠올렸어요.

자, 이제 이틀 동안 자전거로 둘러 본 성주, 고령 나들이를 마치고 구미로 돌아갑니다. 고령에서 33번 국도를 벗어나 어제(2월 8일) 보았던 두메산골 작은리까지 다시 들어갑니다. 마을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한쪽은 어제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거꾸로 올라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성주 보월리에서 상신리를 거쳐 성주읍으로 올라가는 길이에요.

어제와 달리 바람이 몹시 부는데, 맞바람을 안고 깊은 산골짜기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아득했어요.

이 탑은 보월리 탑안(절골) 마을에 있는 돌탑이에요. 조선시대 것인데,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여기저기 흩어진 걸 다시 찾아내어 새로 쌓은 탑이랍니다.
▲ 보월동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19호) 이 탑은 보월리 탑안(절골) 마을에 있는 돌탑이에요. 조선시대 것인데,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지고 여기저기 흩어진 걸 다시 찾아내어 새로 쌓은 탑이랍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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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디로 갈까? 어제 그 길을 거꾸로 가볼까?”
“글쎄 작은리는 거꾸로 가면 골짜기 깊이가 더 깊으니까 풍경이 더 남다르겠던데….”
“그렇지. 그런데 한 번 가본 길로 다시 또 가는 건 좀 그렇잖아?”
“그래 맞아. 어차피 자전거 타고 가는 건 풍경 보는 재민데, 우리 안 가본 곳으로 가자!”
“하하하! 그래그래. 그러자! 근데 여기로 가면 성주로 가는 길이 맞긴 맞겠지? 아니면 어쩌지?”
“아마 맞을 거야. 어제 작은리로 들어올 때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잖아, 아마 그 길과 맞닿아 있을 걸?”

길을 잘 알 수는 없었으나 어림짐작으로 맞지 싶어 오른쪽 길로 들어갔어요. 마을 앞 알림판에는 ‘보월2리’라고 적혀 있었어요. 여기는 작은리보다 조금 큰 듯한데 그래도 무척 작은 마을이에요. 게다가 70년대쯤에 보던 시골집 풍경이었어요.

담장은 흙돌담으로 쌓았고 집집이 낮은 지붕을 이고 있어요. 자전거를 천천히 굴리면서 마을 구경을 하는데, 우와!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사립문이 온통 마음을 빼앗네요.

흙돌담으로 쌓은 담장을 보면서 시골풍경 정겨운 살가움이 느껴집니다.
▲ 보월리 흙돌담으로 쌓은 담장을 보면서 시골풍경 정겨운 살가움이 느껴집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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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 끝에 빠끔히 문을 열어놓고 마당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무엇보다 삽짝문(이쪽 경상도에서는 사립문을 이렇게 불러요)이 참 남달랐어요. 어릴 적 시골에서 많이 보며 자랐는데,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지요. 아무렇게나 엮은 듯하지만 문 위에다가 대나무 잎까지 걸쳐 두었는데 퍽 예스러워요. 문득 “누구 왔수?” 하고 머리 하얀 할머니가 내다볼 것 같기도 하고…….

마을 구경을 하며 가는데, 흙담 밑에 가지런하게 쌓아둔 땔감이 눈에 띄었어요. 지난날에는 겨울이 오면 집집이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 매우 큰일이었지요. 그땐 어린 나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곤 했어요. 나무를 한 짐 해서 등짐 지고 내려오다가 산비탈에서 굴렀던 적도 몇 번 있었지요. 시골에선 꼭 해야 할 일인데도 그땐 참 하기 싫었지요.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을 보면서, 이 마을은 아직도 나무를 때는 집이 있구나 싶어 잠깐 동안 옛 추억에 잠깁니다.

흙과 돌로 쌓은 담장, 허름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경운기 발통을 기대어 놓은 게 퍽 남다르지요?
▲ 흙돌담 흙과 돌로 쌓은 담장, 허름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납니다. 경운기 발통을 기대어 놓은 게 퍽 남다르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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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는 겨울이 오면 집집이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 매우 큰일이었지요. 그땐 어린 나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곤 했어요. 나무를 한 짐 해서 등짐 지고 내려오다가 산비탈에서 굴렀던 적도 몇 번 있었지요.
▲ 땔감 지난날에는 겨울이 오면 집집이 땔감을 준비하는 일이 매우 큰일이었지요. 그땐 어린 나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곤 했어요. 나무를 한 짐 해서 등짐 지고 내려오다가 산비탈에서 굴렀던 적도 몇 번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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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풍경 정겨운 상신리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따라 올라오니, 구불구불 산길이 매우 멋스러워요.
▲ 산길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을 따라 올라오니, 구불구불 산길이 매우 멋스러워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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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자 차츰 산골짜기. 이젠 집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자꾸만 산으로, 또 산으로 들어갑니다. 산길로 한참을 들어가다가 두 갈래 길이 나와 또 짐작으로 왼쪽 오르막을 따라 갑니다.

“어! 웬 둠벙?”

올라서자마자 조그만 웅덩이가 하나 나오고 오리 몇 마리가 물가에서 날개를 다듬고 있어요. 이 깊은 곳에 집이 두어 채 있는데, 저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냅다 도망을 칩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낯선 사람이 들어서니 저도 겁에 질렸던 게지요.

꾸준히 흙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꼭대기예요. 저만치 아래에는 마을이 손바닥만 하게 보였어요. 알고 보니, 우리가 산을 하나 넘은 거였어요. 잠깐 쉬었다가 이제 다시 신나게 내리막을 달립니다. 오르막만 거의 한 시간을 올라왔는데 산 아래까지는 채 5분도 안 걸렸어요.

산길에서 내려서자 왼쪽으로는 아까 꼭대기에서 봤던 ‘상현웃티마을’이 있고, 그 앞엔 제법 넓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상신리 마을이 있어요. 마을이라고 해봐야 여기도 여남은 집쯤 되는데, 집마다 돌담을 빙 둘러 쌓았어요. 옹기종기 등을 부비며 모두 한 식구처럼 지낼 것 같아 퍽 정겨워 보였어요. 낯선 사람한테도 살갑게 맞아줄 듯한 풍경이에요.

이 마을도 꼼꼼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구미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하기에 멀찍이 서서 정겨운 풍경만 사진에 담았답니다.

산골마을 깊은 곳에 길따라 가다가 올라오니, 느닷없이 둠벙이 나와서 놀랐어요. 오리들이 한가롭게(아니면 추워서 햇볕을 쬐고 있는지도) 물가에 나와 있어요. 고양이도 낯선 우리를 보고 놀라 도망을 치고...
▲ 둠벙 산골마을 깊은 곳에 길따라 가다가 올라오니, 느닷없이 둠벙이 나와서 놀랐어요. 오리들이 한가롭게(아니면 추워서 햇볕을 쬐고 있는지도) 물가에 나와 있어요. 고양이도 낯선 우리를 보고 놀라 도망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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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따라 산꼭대기에 오르니 저 아래로 손바닥 만하게 작은 마을이 보여요. 상현웃티마을이랍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산을 하나 넘었더라고요.
▲ 산꼭대기 산길을 따라 산꼭대기에 오르니 저 아래로 손바닥 만하게 작은 마을이 보여요. 상현웃티마을이랍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산을 하나 넘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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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우리가 ‘적’으로 보이나봐!

아주 잠깐 동안 신나게 내려왔는데, 또 다시 오르막입니다. 이젠 그야말로 오르막 올라가는데 이골이 났어요. 아주 천천히 발판을 밟으며 ‘세월아, 네월아’ 하며 올라갑니다.

제법 큰 저수지를 지나가는데 길 아래로 깊은 산속과는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집 한 채가 보여요. 온통 하얗게 칠한 집인데, 어느 부자가 멋들어지게 지은 별장 같기도 하고 곁에 있는 과수원을 보아 농장 임자가 사는 것 같았는데, 기막힌 일이 벌어졌어요. 느닷없이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희끄무레하고 덩치가 큰 녀석들이 겅중겅중 비탈을 따라 올라오는데…….

돌담으로 빙 둘러 쌓은 담장이 퍽 정겨워보여요. 낯선 우리도 살갑게 맞아줄 듯한 상신리 마을이랍니다.
▲ 상신리 돌담으로 빙 둘러 쌓은 담장이 퍽 정겨워보여요. 낯선 우리도 살갑게 맞아줄 듯한 상신리 마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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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개다! 두 놈이야!”

높은 비탈인데도 어찌나 빨리 올라오는지 단숨에 찻길까지 뛰어올라왔어요. 우린 둘 다 바싹 얼어붙었지요. 오나 가나 이놈의 개 때문에 정말 미치겠어요. 도대체 이 녀석들한테는 우리처럼 자전거 타는 사람은 ‘적’으로 보이나 봐요. 미친 듯이 달려오는 걸 보니 또 화가 나더군요. 이번에는 개한테 지면 안 되겠다 싶어 우리가 먼저 소리쳤어요.

“이놈의 시키들! 안 들어가!”

죽어라고 달려드는 개들한테 남편이 자전거를 번쩍 치켜들고 던지는 시늉을 했어요. 그러자 한 마리는 잔뜩 겁을 먹고 꽁지를 빼고 내려갔는데, 또 다른 녀석은 겁을 내면서도 슬금슬금 따라오며 눈치를 보네요. 우리도 같이 주춤거리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죽어라고 달렸어요. 한참동안 뒤쫓아 오다가 돌아가더군요. 얼마나 겁이 났던지 끈끈한 오르막을 단숨에 올라와 버렸어요.

덩치 큰 개한테 놀란 가슴 쓸어내며 숨 돌리고 보니, 또 다른 마을이 나옵니다. ‘범죄 없는 마을’로 뽑히기도 했다는 죽전리에요. ‘촌두부, 메밀묵, 동동주’ 허름한 나무 간판을 내걸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듯하였고 마을은 무척 조용했어요. 아까부터 바람이 더욱 세지더니 드디어 눈발이 막 날렸어요. 구미까지 닿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마음은 바쁘지만 두메산골 옛 풍경에 사로잡혀 즐겁기만 합니다.

‘범죄 없는 마을’로 뽑히기도 했다는 죽전리에요. ‘촌두부, 메밀묵, 동동주’ 허름한 나무 간판을 내걸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듯하였고 마을은 무척 조용했어요.
▲ 죽전리 ‘범죄 없는 마을’로 뽑히기도 했다는 죽전리에요. ‘촌두부, 메밀묵, 동동주’ 허름한 나무 간판을 내걸었지만 장사는 하지 않는 듯하였고 마을은 무척 조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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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0m쯤 될까나? 끝없는 오르막을 따라 왔다가 처음 만난 내리막길, 신나게 달렸지만 딱 5초만에 끝났어요.
▲ 신나는 내리막길...그러나 한 100m쯤 될까나? 끝없는 오르막을 따라 왔다가 처음 만난 내리막길, 신나게 달렸지만 딱 5초만에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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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어제(2월 8일) 작은리로 들어갈 때 만났던 하목마을에 닿았어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지붕이 퍽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답니다.

이틀 동안 자전거를 타고 깊고 깊은 두메산골, 성주군 수륜면 작은리와 용암면 보월리, 상신리, 죽전리, 하목마을까지 두루 돌아왔어요. 워낙 깊은 곳이라 가는 곳마다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많이 만나지 못했지만 그윽한 풍경에 흠뻑 빠졌다가 왔습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야 도시나 시골이나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아직도 60~70년대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는 풍경은 차츰 사라지고 있어요. 세상은 자꾸만 편하고 이로운 것을 좇아 바뀌어가지만 이렇게 정겹고 푸근한 풍경이 사라지는 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우리 곁에 오랫동안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도 거기 사는 사람한테는 미안한 일이겠지요.

이번 성주 나들이를 하고 난 뒤, 아마도 한동안은 이 고향 같은 아늑하고 예스런 풍경을 찾아다니지 싶어요.

눈 덮인 산골 마을에 낮은 지붕이 무척 포근하고 정겨워요.
▲ 하목마을 눈 덮인 산골 마을에 낮은 지붕이 무척 포근하고 정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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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두메산골, #오지, #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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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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