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기 뭐하는 거래요?”

“측량하는 거예요. 요즘 모래양이 줄어드는 것 같아 대책을 요구했더니 저렇게 측량하고 그래요.”

 

“모래양이 줄어들다니요? 바닷모래 말인가요?”

“그러지요. 저그 바다를 막은 후로 여그 모래들이 썰물 때면 저짝(새만금 방파제 방향)으로 휩쓸려 가버리고 있당게요.”

 

“그래요. 잘 모르겄는디.”

“얼릉 보면 모르지만 장사해 먹고 사는 우리들 눈에는 보인당게요.”

 

 

오전 7시. 이른 아침인데도 변산 해수욕장 해변에 사람들이 서성대는 모습이 보인다. 밀물이 들어오지 않은 썰물 때라 해변은 평상시보다 길게 늘어져 있었다.

 

어제 해거름 무렵, 난 그 썰물을 따라 바다로, 바다로 걸어가 보았다. 우수도 지났지만 겨울바다 바람은 차가웠다. 어젯밤엔 그 바다를 바라보며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라는 시를 속으로 읊조려보기도 했었다.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싶던 새들도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중략)

 

특별한 그리움이나 고민 때문에 겨울바다를 마주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겨울 바다에 서면 고등학교 때 암송하듯 익혔던 ‘겨울바다’가 하나의 영상처럼 떠올랐다. 특히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 시간......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를 몇 번이고 반복하게 했다.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측량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측량기사는 젊은 사람인데 긴 장대를 들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들이었다. 기사가 장대를 들고 서있는 사람에게 왼쪽으로 조금만 가라고 몇 번이고 외치자 장대를 들고 있는 사람은 약간 짜증스런 반응을 보인다.

 

그들 옆에 서서 측량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횟집 주인에게 들은 내용은 있었지만 다시 그들에게 물어봤다.

 

“무슨 측량하는 겁니까?”

“해변의 높이 측량요.”

 

“모래가 줄어든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아직은 큰 차이가 없어요. 혹시나 해서 작년부터 계속 측량하고 있지요.”

 

“이른 아침부터 힘들겠네요.”

“물때 맞춰서 작업하는 게 힘들어요. 그래도 해야죠.”

 

한 때는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친 해수욕장인 변산은 지금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명소 변산. 그 변산이 지금 상가 건물 뒤 쓰러져가는 폐교처럼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 주변의 상가와 빈집들이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한다.

 

15년동안 변산에서 횟집을 했다던 김아무개(47)씨는 지금 이곳을 버려두고 전주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흥성거렸던 곳인데 이젠 겨울 해풍보다 더한 찬바람만 불어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다모래까지 줄어들면 이곳은 해수욕장으로써 기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해서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었다. 근래 들어 주변을 현대식으로 개발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 가봐야 안다고 한다.

 

 

오늘도 바다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밀물과 썰물을 주고받으며 들어왔다 멀리 떠나간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들도 바다를 떠났다. 하지만 바다는 소리 없이 파도를 철석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따금 허리가 막히고 팔과 다리가 부러져도 아프다 신음 한 번 내지 못하고 늘 제자릴 지키고 서있다. 이따금 짝 잃은 갈매기가 끼룩대며 울어주면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바다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변해가는 건 자신이 아니라 사람들이라고.


태그:#변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