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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을 보자. 같은 날 같은 시간대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그리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웹사이트에 실린 사진이다. 세 언론은 이달 초의 슈퍼볼(Super Bowl) 경기 결과를 알리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미국의 어떤 점을 알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올해 슈퍼볼에서 뉴욕이 보스턴 소속 팀을 이겼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자이언츠'의 우승 소식에 숨이 넘어갈 듯 기뻐하는 사람들을 첫 머리에 실은 반면, <보스턴글로브>는 절망한 모습으로 드러누워 있는 뉴잉글랜드팀 선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17 대 14로 패배한 결과를 전하는 <보스턴글로브> 기사의 제목이 간결하면서도 극적이다.

 

"끝."

 

한쪽은 환희의 비명을 지르고 다른 한 쪽은 세상이 끝난 듯 누워있는데도, 미 대륙 서쪽 저편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아주 차분하다. 해당 기사를 찾으려면 하단의 스포츠면을 뒤져야 한다. 앞의 두 언론이 경기 결과로 죽고는 반면, 로스앤젤레스의 언론은 동부팀의 경기에 그다지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강 건너 불'을 보는 듯하다. 

 

사회통합 기제로서 미식축구... "미국 스포츠=미국 사회"

 

위 사진이 말해주는 것은 미식축구가 강한 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고, 문화적으로 이질적이며, 인종적으로 다양하다. 미국 전역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운동팀이 있고, 미국인들은 이들을 응원하는 가운데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미국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개인의 개별성과 독립성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곳이 미국 사회다. 이런 나라에서 각 개인들을 엮어 사회 속으로 통합하는 일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이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스포츠·영화·텔레비전 등의 대중문화다. 미국에서 이 분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단순한 문화상품이 아니라 핵심적 사회 제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야구와 농구, 그리고 미식축구는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지만, 그 가운데서도 미식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미식축구는 이미 1970년대부터 야구를 제치고 가장 대중적인 미국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단순히 운동에 대한 선호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의 과정은 미국 사회 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정체성의 등장을 의미한다.

 

미식축구는 단순히 인기있는 스포츠에 그치지 않는다. 이 종목은 현대 미국 사회에서 '남성성'을 대표하는 정체성의 한 축이 되었다.

 

미식축구, 야구를 제치고 '남성성'의 상징이 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은 단연 야구였다. 특히 야구는 미국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남성적 유대 관계를 상징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을 던지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친밀한 부자 관계의 동의어가 되었다. 여전히 적잖은 미국 남성들이 야구에 대한 깊은 향수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식축구는 급격히 성장한 반면, 야구의 인기는 서서히 줄었다. 2005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프로 미식축구를 즐기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34%고, 대학 미식축구 팬은 13%다. 미국인의 절반 가까이가 미식축구를 가장 좋아하는 경기로 꼽은 것이다. 이에 반해 야구를 꼽은 사람은 14%에 머물렀다. 이런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텔레비전의 영향이다. 195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 가정의 텔레비전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야구는 정해진 시간이 없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진행 속도가 느리며, 텔레비전 화면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어려운 경기다. 게다가 야구 시즌인 여름은 가족들이 집 안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시청자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반해 미식축구는 짧은 시간에 '화끈한' 모습을 빠른 전개로 보여줄 수 있어 텔레비전 중계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미식축구 시즌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가을과 겨울이어서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문화와 결합했다. 브라운관 위에서 건장한 육체가 과격하게 부딪히는 모습은 야구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남성성'을 구현하는 것으로 보였다.

 

야구는 날씨가 나쁘면 경기를 미루기도 하고 중단하기도 하지만, 미식축구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빗속에서도, 눈 속에서도, 진흙탕에서도 뒹굴었다. 이렇게 미식축구는 자연스레 남성성의 상징이 되었다.

 

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 아니라, 건장한 체격의 풋볼 선수다. 학교 팀의 쿼터백은 언제나 염문을 뿌리고 다니며 인기를 독차지한다. 두꺼운 안경을 쓴 '범생이(nerd)'들은 이런 스타 선수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물론, 나중에 더 많은 연봉을 받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젊은 학생들에게 미래가 현재만큼 중요할 리 없다. 게다가 잘 나가는 미식축구 선수의 연봉은 의사나 변호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 때문에 아들을 둔 미국 부모들은 한 달에 몇 만원 하는 학습지에는 손을 떨면서도, 수십만 원짜리 운동복과 장비는 아낌없이 사 준다. 

 

'개척'의 폭력, 자본주의의 규율... 남성성이 위태로울 때 '남성적 스포츠' 발전

 

미국은 오랫동안 '개척' 시대와 농경 사회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육체노동에 남성성의 의미를 부여해왔다. 그러나 산업화와 더불어 이들이 도시의 생산 시설에 투입되면서 남성의 정체성은 위기에 직면했다. 기업의 위계적 조직구조는 남성성의 핵심인 개별성과 독립성도 위협하기 시작했다.

 

야구와 미식축구 같은 운동 경기는 잃어가는 남성성을 확인시키는 수단이었다. 남성성이 가장 위태로울 때 '남성적 스포츠'가 발전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것은 남성성이라는 것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허구적인 사회적 구성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다움이 타고나는 것이라면, 잃을 것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19세기 후반 미식축구를 '청년들이 삶을 단련하는 기회'라고 치켜세우며 적극 권장했다. 미식축구가 '사회훈련'이라는 그의 평가는 정확했다. 이는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면서도 조직과 함께 움직이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식축구는 독자적으로 행동해온 노동력들을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효과적으로 편입시켰다.

 

로저 로슨블랫(Roger Rosenblat)은 <미국 사회와 가치>라는 책에서 "미국의 스포츠에는 미국 사회가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스포츠가 곧 미국 사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 사회가 철저히 시장 중심의 상업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미국은 대규모로 조직화된 스포츠를 가지고 있지만, 체육부와 같은 정부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스포츠를 관장하는 것은 돈줄을 따라 움직이는 시장 논리다. 이렇게 상업화한 미국 스포츠는 절묘하게 지역적 소속감과 결합한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운동팀 티셔츠와 모자를 열심히 사주며, 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장에 가거나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광고주들의 물건을 먹고 마신다.  

 

보고 먹고 사고... 닭 날개 4억5천만 개, 30초 광고비 25억 원

 

앞의 슈퍼볼 보도에서 알 수 있듯, 미식축구는 언제나 미국 언론의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멋지게 공을 받거나 방어진을 뚫고 질주하는 선수의 모습은 이미 19세기부터 미국 언론에 등장했다. 과거에 미식축구는 소수의 대학생들이 교정에서 몸을 던져 참여하던 스포츠였으나, 미디어의 힘을 업고 대규모의 '보는 스포츠'로 탈바꿈했다. 이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슈퍼볼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텔레비전 방송 15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슈퍼볼 중계였다. 매년 초가 되면 미국 전역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2월 첫째 주에 열리는 슈퍼볼 경기를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대형 텔레비전을 사고, 다리를 뻗고 편하게 눕는 '레이지보이(La-Z-Boy)'라는 대형의자를 들여놓는다.

 

먹어 치우는 음식량도 어마어마하다. 이날에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음식이 미국인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인기있는 음식은 피자지만, 최근 들어 닭 날개 '윙'의 소비도 급격히 늘었다. 올 슈퍼볼이 있던 한 주 동안 미국인이 해치운 닭날개는 무려 4억5000만개다. 감자 칩과 맥주· 청량음료 소비 역시 막대하다.    

 

슈퍼볼 시청자들의 수도 매년 늘어, 올해 1억에 가까운 사람이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눈길이 많이 쏠리는 만큼,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주들의 노력도 치열하다. 시청자가 늘면서 광고 단가도 계속 오르고 있다. 올해의 경우 30초 광고 비용이 평균 25억 원을 넘어섰다.

 

광고비가 비싼 만큼, 기업들은 이 행사를 위한 텔레비전 광고를 별도로 제작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기발한 광고가 많아, 그런 광고를 보기 위해서라도 텔레비전을 켜놓을 가치가 있다. 대기업의 광고가 주종을 이루지만, 한 해 투자할 광고비를 30초에 쏟아 붓는 모험을 하는 소규모 업체들도 없지 않다.

 

나이아가라에서 39분간 떨어지는 물을 한 번에 '쏴~'... 역시 '슈퍼'볼

 

기업들이 슈퍼볼 광고에 투자하는 돈과 열정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광고는 흔히 경기의 절반이 끝난 하프타임(halftime)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보통 프로 미식축구 경기의 중간 휴식 시간은 15분이지만, 슈퍼볼은 그 두 배인 30분이다. 광고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화장실에 앉아있기 일쑤다. 투입되는 음식량이 많은 만큼 '산출량'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1억에 가까운 시청자가 동시에 변기에 물을 내리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때 하수구로 쏟아지는 물의 양은 가공할 만하다. 에이에프피(AFP) 보도에 따르면, 이 때 흘러나오는 물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39분간 떨어지는 양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낡은 하수시설을 갖춘 지역에서는 쉬는 시간을 피해서 화장실에 갈 것을 권하기도 한다.

 

'변기 괴담' 말고도 슈퍼볼의 별명은 많다.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이 그중 하나다. 경기로 흥분한 사람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하수도 재앙이나 '선혈주말론'이 실제적 근거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괴담이 사실이라도, 슈퍼볼의 '경제 효과'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변기 펌프와 반창고의 매출은 증가할 것이므로. 누가 피를 흘리든 간에, 미식축구에서 폭력은 필연적 요소다.

 

미식축구 통해 폭력의 신화 재연하는 미국인

 

미식축구 역사가인 마이클 블리아드(Michael Bliard)는 미식축구의 인기 비결을 '필연적 과격(necessary roughness)'에서 찾는다. 다른 스포츠에서 과격함이나 폭력은 경기를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쉽지만, 미식축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은 과격한 경기일수록 '멋진 게임'이었다고 칭찬하며 환호한다.

 

미식축구의 종교적 함의를 추적해 온 조지프 프라이스(Joseph Price)는 미식축구의 폭력성을 '개척' 시대의 침략 행위와 연관 지어 분석한다.

 

"이 경기의 목적은 영토의 점령이다. 팀은 외지인의 땅을 침공한 후 그 곳을 끝까지 가로지르는 것으로 점령을 완수한다. …(중략)…미국인은 이 경기를 통해 창조의 신화를 극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미국 자신의 신화, 즉 영토의 폭력적 침공과 점유의 과정을 재연한다." (조지프 프라이스, <시즌에서 시즌으로> 139쪽)

 

"미식축구가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야." 오래전 친구에게서 들었던 우스갯소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왜?"

 

"저런 '떡대'들이 경기장 대신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다닌다고 생각해 봐."

 

맞다. 경기의 기원이야 어쨌든, 이왕 폭력이 쓰일 바에야 거리나 전쟁터보다는 운동장이 낫다.


태그:#슈퍼볼, #미식축구, #서부개척,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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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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