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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보경사는 입구부터 줄지어 들어선 음식점들이 손칼국수와 동동주, 파전으로 유혹한다. 보경사는 포항에서는 가장 큰 사찰로, 오어사와 함께 포항하면 바로 보경사가 떠오른다. 내연산의 산세는 빼어나고 12개의 폭포는 절경을 뽐내어 늘 많은 등산객들로 붐빈다. 신라 진평왕 25년(603)에 지명법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로 가장 먼저 입구를 들어서기 전 설산 장욱스님의 공덕비가 있다.

 

 

아담한 목조 사자상이 있는 적광전

 

천왕문에서 보면 오층석탑이 바로 보이고 앞의 건물이 적광전이다. 천왕문은 자세히 보면 입구 양 옆에 목조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3호)은 5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기단의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층급받침이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 상륜부는 일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이 들며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초층 탑신에는 문비안에 사실적인 기법으로 자물쇠 문양을 새겨 놓았다. <보경사금당탑기>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적광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54호)은 내부에 비로자나 삼존불을 모시고 있으며 조선 숙종 3년(1677)에 고쳐 지은 것으로 그 뒤로도 몇 차례 수리를 한 건물이다. 적광전 기둥 옆에도 역시 목조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천왕문의 사자 조각과 비교해 보면 다소 조각이 더 눈에 들어온다.

 

 

보경사의 명물 비사리구시

 

보경사의 주 건물인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31호)은 금동 삼존불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 뒤로 부처님의 공양을 마련하는 절간 주방 기구로 밥을 퍼 넣은 그릇으로 사용된 비사리구시가 있는데, 쌀 7가마(약 4000여명분)의 밥을 담았던 거대한 통이다.

 

 

그 외에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한 영산전, 팔상도가 봉안된 팔상전,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16명의 영정을 봉안한 원진각이 있는데, 여기에는 지명법사를 비롯해 원진국사 등의 화상이 있다. 산신탱을 봉안한 산령각이 있다.

 

귀갑에 왕자가 새겨진 거북받침돌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는 대웅전 맞은 편 옆에 있는데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의 탑비이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는데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비의 王자를 생각게 하였다.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가 지었고,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보기 드문 탱자나무

 

보경사 경내 천왕문 우측 동편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1호)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는데 탱자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것이다.

 

 

원진국사의 부도는 보물이다

 

보경사부도(보물 430호)는 현재 진입을 하지 못하게 등산로를 폐쇄한 듯 한데, 뒤로 돌아 들어가면 된다.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는 묘탑이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기단부의 아래ㆍ중간ㆍ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 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탑신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두 쪽 면에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여 그다지 조각적인 멋은 없다.

 

산내암자로는 서운암이 유명

 

이외 보경사의 산내암자로는 문수암, 보현암, 서운암, 청련암이 있는데 특히 서운암은 입구에 부도밭이 마련되어 있고, 조선 숙종 때 종 만들기의 대가인 사인비구가 주조한 동종이 보물 1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양산 통도사나 강화 동종과는 또 다르며 시기도 가장 앞선 것이다.

 

크기는 비록 작고 아담하나 조각 제작기법 등이 주목되는 중요한 종이다. 하지만 서운암을 찾으면 볼 수 없으며, 부도밭도 진입로가 없어 멀리서 담장 너머로 보아야 한다. 서운암 입구에는 한흑구의 문학비가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보경사는 천천히 둘러보니 미처 몰랐던 부분들도 다시금 보이고 여유가 있어서 가벼운 발걸음도 경쾌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원진국사부도(보경사 부도)는 현재 출입이 되지 않으나 사찰 담장을끼고 돌아가면 볼 수 있다. 원래는 금당암(북암)바로 옆으로 난 등산로로 바로 가면 되나 현재 사찰에서 출입을 금하고 있다. 안내 표지판이나 찾아가는 기타 방법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태그:#보경사, #서운암 동종, #원진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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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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