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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밤, 헌책방 <아벨서점> 앞. 책방 앞에는 책방 아주머니 자전거가 서 있습니다.
▲ 책방 앞 깊어가는 밤, 헌책방 <아벨서점> 앞. 책방 앞에는 책방 아주머니 자전거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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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결에 책 구경

오후 한 시, 부랴부랴 노트북과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옵니다. 오늘이 ‘동네마실다니기’를 하는 날인가 싶어서. 동네마실다니기는, 이곳 인천 배다리에서 ‘산업도로 반대 운동’을 하는 분들이 ‘반대도 반대이지만, 우리가 사는 동네가 어떤 발자취를 남기며 이어왔는가’를 좀더 꼼꼼히 살피면서 우리부터 잘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태어난 인천에서 살던 이야기들이 있고,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 대로 당신들이 태어나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먼저 태어난 대로, 나중에 태어난 사람은 나중에 태어난 대로 자기 생각이 있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우리 동네에 참말로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자는 뜻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날짜를 잘못 알았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20일)이군요. 하하. 하던 일을 바쁘게 끝마치고 뛰어나왔는데. 웬걸. 왜 이리 정신머리가 없이 사는지, 원. 멋쩍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어차피 나온 김에 책이나 한두 권 구경하고 돌아가자 싶어서 <아벨서점>에 들릅니다. 그리고, 꼭 두 권 고릅니다. 먼저, <노던라이츠>(호시노 미치오/김욱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7)라는 책.

.. 마을의 운명이 자신의 편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하워드는 일주일 동안 편지를 쓰고 또 고쳐 썼다. “알래스카 원주민의 삶은 전적으로 이 땅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원자력위원회에겐 이 땅을 폭파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 땅을 폭파할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편지를 쓰게 되어 매우 유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엄청난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 (75∼76쪽)

미국은 1960년대에 알래스카에서 핵폭탄실험을 하려고 했답니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을 만든 세 사람 가운데 하나인 ‘에드워드 텔러’는 더욱 성능이 뛰어난 원자폭탄을 만들었고, 이 원폭 성능이 얼마쯤 되나를 알아보려고 ‘피해를 입어도 조금만 보상해 주면 될 만한 땅’을 알아보면서, 지도를 펼쳐 알래스카를 찍었다지요. 알래스카를 한 번도 디뎌 보지 않은 학자들과 관료들이, 알래스카에는 ‘사람이 거의 안 살고’ 있으니 거기다가 하면 되리라 뜻을 모았다지요.

대단히 소름돋는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이렇습니다. 책상물림 학자와 관료들 생각은 이렇잖아요. 저는 아직도 1994년 일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우리 나라 원자력 무슨 위원회에서 ‘핵폐기물처리장’으로 인천 앞바다에 있는 굴업도를 찍었습니다. 이에 앞서 안면도를 찍었다가, 안면도 사람들이 모질게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섬사람이 모두 일곱 사람밖에 되지 않아 설득과 보상이 손쉽고 반대를 거의 못할’ 테니, 다른 모든 문제는 접어두고 이곳으로 하겠다고 해서….

2008년인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그치지 않습니다. 인천시와 종합건설본부는, 서민들이 온삶을 바쳐 일하며 겨우 조그맣게 마련한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도심지 한복판에 너비 50m짜리 산업도로를 끝끝내 뚫어 버리려고 밀어붙이고 있어요. 모르는 일이지만, 이 동네에 재벌총수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았다면, 국회의원 나으리 한 사람이라도 살았다면, 시장이나 구청장, 하다못해(?) 동사무소장이라도 이 동네에 살았다면, 인천지방법원 판사님이나 검사님, 또는 변호사님이 이 동네에 살았다면, 인하대부속병원 의사님이라도 이 동네에 살았다면, 인천제철(INI스틸) 사장님이 이 동네에 살았다면, 함부로 이런 막공사를 밀어붙이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하다못해(?) ‘중앙언론사’ 기자 한 사람이라도 이 동네에 살았더라면, 방송국 피디 한 사람이라도 이 동네에 살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막나가는 공사는 있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벨서점> 책꽂이는, 아주머니가 손수 나무질을 하면서 마련했습니다. 그냥 보면 그냥 책꽂이이지만, 책꽂이에 배인 땀과 피를 헤아릴 수 있으면, 책꽂이와 책 하나마다 배어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책꽂이 <아벨서점> 책꽂이는, 아주머니가 손수 나무질을 하면서 마련했습니다. 그냥 보면 그냥 책꽂이이지만, 책꽂이에 배인 땀과 피를 헤아릴 수 있으면, 책꽂이와 책 하나마다 배어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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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승격법에 의하면 알래스카의 3분의 1이 주정부 권한으로 되어 있었어. 25년 동안 주정부가 원하는 땅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지. 그들 눈엔 알래스카 원주민이 보이지 않았던 거야. 그곳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민해 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주정부 소유라고 정해 버렸어. 원주민들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어. 그 땅은 오랜 옛날부터 그들이 살아왔던 곳이니까. 곳곳에서 원주민의 토착권과 주정부의 권한이 충돌하기 시작했지 ..  (188쪽)

미국원자력위원회는 핵폭탄 실험터로 알래스카를 움켜쥐기 앞서 ‘환경평가’를 합니다. 환경평가까지 안 하고는 움켜쥘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런데 환경평가를 ‘조작’하고자, 환경평가 용역을 받은 알래스카대학교 총장을 새로운 사람으로 앉힙니다. 알래스카대학교 새 총장은, 네바다대학교 총장인 윌리엄 우드. 그리고 이이 윌리엄 우드는 네바다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 ‘아메리카인디언보호구역이 있는 네바다 땅’에서 핵폭탄 실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람.

생각해 보면, 1986년에 아시안게임을 치른다면서, 또 1988년에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서울 곳곳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 자그마한 살림터는 거의 모두 쓸려나갔습니다. 이 변두리에서 저 변두리로, 저 변두리에서 또 외진 변두리로. 서울뿐 아닙니다. 시골은 더욱 끔찍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를 낸다면서 시골 논밭과 산과 강을 두 조각을 내었습니다. 한 마을 사람이 얼결에 ‘다시는 만나기 힘든 먼 남’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고속도로로 끝이 아닙니다. 철길이 새로 놓입니다. 거기다가 고속철도길이 또 한 번 놓입니다. 새로운 고속도로는 자꾸자꾸 나고, 고속화도로라는 이름으로 널따란 새 길은 끊임없이 늘어납니다.

갓 들어와서 손질을 기다리는 책. 헌책방 <아벨서점>은, 들어와서 내다 파는 모든 책을 행주로 닦고 손질한 다음에야 꽂아 놓습니다.
▲ 기다리는 책 갓 들어와서 손질을 기다리는 책. 헌책방 <아벨서점>은, 들어와서 내다 파는 모든 책을 행주로 닦고 손질한 다음에야 꽂아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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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이라고 모두 다 자동차를 몰지는 않는데. 도시사람이라 해도 모두 다 자동차를 타고다니지는 않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차 없는 사람’이 마음놓고 길을 오갈 수 있는 권리는 조금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자전거로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사람 권리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 권리는 털끝만큼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하긴, 비장애인 권리도 이것밖에 안 되니 장애인 권리란 코딱지만큼도 살피지 않을 테지요. 거님길과 거님길 사이에 놓인 3cm짜리 턱도 바퀴걸상이 지나가기에 버겁습니다. 자전거한테도 버겁고 아기수레한테도 버겁습니다. 거님길 턱이란 없어야 해요.

<그래서 어쨌단 말인고>(이오안나 살라진/안정효 옮김, 들녘, 2004)라는 만화책이 보입니다. 낯익은 만화라고 느끼며 책을 펼치니 아하, 예전에 나왔던 책이 다시 나왔네요. 그러나 옮김이 안정효님은 이 만화책이 우리 나라에 아직 소개가 안 되었다고 느끼는 듯 옮긴이 말을 적습니다.

[2004] “저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훌륭한 성인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 뭘 배웠는지 좀 보여줘.” “……” “나가! 돌부처는 여기도 많으니까.”
[1986] “저는 인도를 여행했고, 그곳의 훌륭한 선사들 밑에서 공부했읍니다.” “오? 그래, 무엇을 배웠는지 보여 줄래?” “……” “나가! 여기에도 돌부처는 얼마든지 있어!”

이 책 <그래서 어쨌단 말인고>는 1986년에 일찌감치 우리 말로 나왔습니다. <禪 만화 : 禪문담 소묘 99선집>(해뜸)이라는 이름을 달고, ‘선 연구원’에서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

[2004] “스님, 무엇이 자유의 길인가요?” “네가 찬 쇠사슬을 보여 다오.” “전 쇠사슬을 차지 않았는데요.” “그럼 자유는 왜 찾아?”
[1986] “스님, 어떻게 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요?” “너를 묶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봐라!” “저를 묶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런데 너는 왜 자유롭기를 바라느냐?”

책을 장만한 뒤 집으로 가지고 와서 1986년에 나왔던 책을 꺼내놓고 함께 펼쳐서 읽어 봅니다. 두 가지 번역 가운데 어느 한쪽이 더 낫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다만, 2004년 안정효 님 번역은 ‘직역’에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1986년 선 연구원 번역은, 뜻을 새기면서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이야기 느낌을 살리고 ‘마음닦기’ 느낌을 키워 주려고 했구나 싶습니다.

[2004] “스님, 죽음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그럼 살아가는 방법은 어떻게 배우나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거라.”
[1986] “스님,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사는 것을 배워라.” “사는 것을 어떻게 배웁니까?”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거라.”

산업도로라는 걸 놓겠다며, 가난한 사람들 작은 집을 싹 밀어내고는, 이 모습이 '보기에 나쁘다'면서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 울타리 산업도로라는 걸 놓겠다며, 가난한 사람들 작은 집을 싹 밀어내고는, 이 모습이 '보기에 나쁘다'면서 울타리를 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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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은 누가 임자인 나라인가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습니다. 차근차근 읽다가 한숨 히유 내쉬고 덮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알래스카에서도 일어나며, 알래스카에서 일어나는 일이 미국 본토(?)에서도 일어납니다.

호시노 미치오 님이 알래스카에서 보았던 아픔과 생채기는, 제가 한민땅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돌아다닐 때 보았던 아픔과 생채기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뿌리를 내리며 요즈음 보고 있는 아픔과 생채기하고도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똑같습니다. 에스키모한테 알래스카는 고향땅이자 삶터요 당신들 어버이가 머나먼 옛날부터 살아온 터전입니다. 게다가 에스키모 당신들이 잡아서 먹어야 하는 카리부와 곰과 연어와 오리가 어쩌면 사람보다 더 오랜 세월 살아온 보금자리입니다.

인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비슷합니다만, 5층이나 10층짜리도 아닌 30층 40층 50층짜리 아파트를 쭉쭉 올려세우는 이곳은 누가 살아온 곳이며, 그이들이 어떻게 살아온 곳일까요. 이곳에 올려세우는 아파트는 누가 살아가는 집이며, 이 아파트는 앞으로 몇 해나 이 자리에 버틸 수 있는지요.

오늘날 아이들은 책과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만 자연 삶터를 배웁니다. 기껏해야 개나 고양이나 햄스터를 집에서 애완동물로 기를 뿐, 자기가 즐겨먹는 닭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길러지다가 어떻게 죽어서 자기들 밥상에 올려지는지 모릅니다. 달걀이 어떻게 나오는지,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어떻게 만드는지, 배추와 무와 갖은 푸성귀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기르는지, 배와 능금과 감과 밤과 딸기와 버섯과 귤 따위가 어떻게 열려서 어떻게 한겨울에도 싼값으로 사먹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알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배 한 알 값이 스무 해 앞선 때와 지금하고 똑같은 줄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바나나 한 송이 값은 외려 스무 해 앞서보다 값이 눅은 줄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마른오징어 한 마리 값도 스무 해 앞서보다 요즘이 더욱 쌉니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바나나는 어느 나라 농장에서 어떤 착취와 플랜테이션에 따라서 키워지고 들어오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교과서에도 틀림없이 ‘플랜테이션’이라는 낱말이 실립니다만, 이 낱말을 살갗으로 느끼는 사람이, 착취와 노예제도가 2008년 지금에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울타리 바로 코앞으로 송림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너비 50미터나 되는 산업도로 구간에는, 모두 다섯 군데 초등학교와 두 군데 고등학교가, 길 바로 옆에 맞닿게 됩니다. 아마, 이 길닦기를 밀어붙이려고 하는 종합건설본부와 인천시 당국자들 집안 아이들 가운데, 이 동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없을 테지요.
▲ 울타리 2 울타리 바로 코앞으로 송림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너비 50미터나 되는 산업도로 구간에는, 모두 다섯 군데 초등학교와 두 군데 고등학교가, 길 바로 옆에 맞닿게 됩니다. 아마, 이 길닦기를 밀어붙이려고 하는 종합건설본부와 인천시 당국자들 집안 아이들 가운데, 이 동네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없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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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길이나 생각이 너무 딱딱하고 따분하고 성마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저냥 대충 지나치면서 누릴 것 누리며 살면 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리고 싶지 않습니다. 물질문명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다. 빠른 스포츠카로 고속도로를 마음껏 내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한 해에 한 번도 안 입는 옷을 옷장 가득 채워 놓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입으려고 제 옷을 마지막으로 산 때는 2001년? 또는 2000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굳이 새 옷을 사지 않아도 둘레에 버려지는 옷이 많고 얻어 입을 옷이 많아요. 옷을 알뜰히 아껴 입으면 손빨래만 해도 넉넉하니 세탁기 돌릴 일이 없습니다. 세탁기 돌릴 일이 없는 집에서는 굳이 냉장고를 안 돌려도 됩니다.

냉장고를 안 돌리는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어도 됩니다. 밥을 해도 하루 두 끼니치만 해서 전기코드 꽂아 놓을 일을 없애면 됩니다. 청소기가 아닌 걸레를 손으로 빨아서 쓰면 됩니다. 두 사람 살아가는 우리 살림집 전기삯은 한 달에 오천원이 못 됩니다. 책을 읽느라 밤에 켜 놓는 전등불을 줄이면 전기삯은 더 줄어들 테지요.

주어진 몫대로 살고, 넘치게 누리지 않으며, 조금 모자라다고 해도 모자란 만큼 이웃하고 나누면서 지내는 삶이 그지없이 넉넉한 삶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우리 형편에 남아도는 것이란 하나도 없지만, 옆지기는 틈틈이 우리한테 있는 몇 가지를 이웃들한테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이웃들은 또 당신들도 남아돌지 않으면서 쟁반이나 통에 무언가 먹을거리를 담아 나누어 줍니다.

그저 이대로 좋습니다. 이웃들 얼굴을 웃으면서 마주할 수 있는 이대로가 반갑습니다. 이웃집을 찾아가자고 너비 50m나 되는 산업도로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날 지하도나 육교로 건너가고 싶지 않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잇는 전철길은, 전철길을 사이로 마을을 동과 서로 갈랐고, 동과 서로 오가려면 역과 역 사이에 딱 하나밖에 없는 육교를 어렵게 찾아서 건너야 합니다. 이렇게 마을과 마을이 갈라지고 이웃과 이웃이 남이 되어버린다면, 사람들 문화가 어찌 꽃피울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어질까요.

찻길 하나 내면서 우리들 삶은 얼마나 넉넉해질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자동차 있는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 없는 사람들 삶도 가만히 돌아보아 주면 고맙겠습니다. 석유가 머잖아 바닥이 나고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때에, 새로운 찻길을 자꾸자꾸 더 닦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자꾸 쏟아부어야 하는가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길 1m를 닦는데에 1억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돈 1억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며, 이 돈 1억을 어디에 어떻게 쓸 때 참으로 효과가 있고 즐거웁고 아름다운지를 곰곰이 짚어 볼 수 있으면 고맙겠습니다.

울타리로 막아세운 이 빈땅은 주차장으로 쓰일 땅이 아닙니다. 동네사람들이 숨쉬고 지낼 터전이어야 합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밖에 없는 도시에 싱싱한 바람을 선사해 줄 풀과 나무가 자라야 할 곳입니다.
▲ 울타리 3 울타리로 막아세운 이 빈땅은 주차장으로 쓰일 땅이 아닙니다. 동네사람들이 숨쉬고 지낼 터전이어야 합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밖에 없는 도시에 싱싱한 바람을 선사해 줄 풀과 나무가 자라야 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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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032) 766-9523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 + 책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헌책방, #아벨서점, #인천, #배다리, #산업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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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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