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년의 경주남산, 이 넉넉한 부처님 품 속을 어떻게 하루만에 다 구경하나? 삼릉계곡 입구에 들어서자, 걱정부터 앞섰다. 일행과 함께 경주남산 안내도를 들여다 보며 한참 의논한 끝에 삼릉계곡에서 약수계곡으로 해서 불국사를 구경하기로 결론냈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의 '웃는 부처들'
 

남산은 경주 남쪽에 솟아 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해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이곳에는 40여개의 계곡이 있고 수많은 불상이 산재 되어 있다. 어느 길로 가야 일석이조를 취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경주남산에서 가장 큰 마애불상을 접견하기로 했다.

 

초입부터 천년의 솔숲 향기에 취해서인지, 문득 이강백 선생의 '느낌, 극락같은'이란 희곡이 생각났다. "부처님의 마음을 형태 속에 담아야 한다", "부처님의 마음을 불상에 담아야 한다"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는 동연과 서연의 말도 덩달아 떠올랐다. 도대체 극락 같은 느낌은 어떤 것일까. 모르긴해도, 이 짙은 천년의 솔숲 향기 같은 것은 아닐까.

 

경주남산은 야외 박물관이며, <삼국유사>의 숱한 전설과 신화, 김시습의 <금오신화>의 산실이다. 이곳에는 무려 122여개의 절터와 57개소의 석불, 64개여의 석탑이 있다. 그래, 오늘은 이 '느낌 극락 같은' 솔 향기에 취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삼국유사>의 숱한 전설과 신화가 깃든 경주남산. '별처럼 뿌려진 절과 기러기처럼 날아가는 탑(寺寺張塔塔雁行)'을 싣고 떠가는 거대한 배로, 그 배는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마을에 닿을 배라고 한다. 이는 사람이 도저히 잴 수도 알 수도 없는 시간이다. 어쩜 내가 돌 속에 들어가서, 천년에 한 번씩 사람으로 태어나도, 남을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이 배에 승선을 한 것인가, 아니면 그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길가에 놓인 돌멩이들, 풀들, 나무들 모두 웃는다. 석불들도 웃는다. 기왓장도 웃는다. 모든 삼라만상은 넉넉한 경주남산 품에 물소리처럼 흘러들어와 웃는다….   
 
옛 신라 사람들은/ 웃는 기와로 집을 짓고/ 웃는 집에서 살았나 봅니다// 기와 하나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쪽이/ 금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초승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한 번 웃어 주면 /천 년을 가는 /그런 웃음을 남기고 싶어/ 웃는 기와 흉내를 내 봅니다 <웃는 기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이봉직
 
 
불두(佛頭)가 날아간, 목이 없는 부처가 "하하하" 웃는 소리가 들리는 삼릉 계곡은 3개의 능이 있어, '삼릉계'라 이른다. 이 계곡은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돌이라고도 불린다. 이 계곡에는 무려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경주 남산에서도 가장 유적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금오봉 정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석조여래 좌상은 1964년 동국대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고, 특히 이 부처는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옷을 동여맨 끈,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용정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의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쉽게도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는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 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남산 부처들은 다 웃고 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도 미소 짓고 있다. 미소는 마음의 평화에서 피어나는 꽃, 이 미소의 꽃을 가득 피우고 있는 돌속엔 부처님의 마음이 가득하다.
 
지눌대사는 "한 마음을 미(迷)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부처다. 미(迷) 함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요는 한 마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마음을 떠나 부처가 되려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 역시 마음을 떠난 몸에서 꽃 필 수 없는 것이다. 
 
이 불상은 머리 위에 삼면보관을 썼는데, 앞에 작은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입술에는 붉은 색이 아직 남아 있으며, 연꽃으로 된 대좌 위에 서 있다. 허리 아래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 다리에 각각 유(U)자 모양으로 드리우고 있다. 왼손엔 정병(보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쪽으로 들어올린 채 손가락을 구부려 밖으로 향하고 있다.
 
 
남산의 그 극락 같은 돌 속의 달빛 미소  
 
경주남산 산행은 달빛 아래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달빛이 좋아 손전등이 없어도 야간 산행의 진맛을 안겨준다. 10년 전 몇몇 지인들과 달빛 산행을 경험했다. 그 산행은 내게 은가루처럼 부서지는 달빛에 대한 추억을 남겨줬다.
 
신라 향가 '원왕생가'와 백제인이 부른 '정읍사'는 달을 노래함으로써, 원(圓)의 서정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속의 소망과 종교적 믿음의 충족에 부치는 기축의 초점은 달이다. 이 달로 표상되는 원은 포용하는 사랑이며 너그러움을 상징한다.  
 
은은한 달빛 미소를 머금고 있는 마애석가여래좌상은 남산의 북쪽에서 제일 높은 금오봉이 서쪽으로 뻗어내려가다가, 형성한 작은 봉우리의 바둑 바위 중턱에 위치해 있다. 자연암반을 파내어 광배로 삼았는데 깎아내다가 그만 둔 듯 거칠다.
 
높이 7m로 냉골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 금오봉에 앉아 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 조각되어 있다. 입을 굳게 다문, 민 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올 만큼 큼직하다. 눈여겨 보면 부처님들의 귀는 다 하나 같이 크다. 삼라만상을 손바닥 안에 올려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부처님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 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 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가부좌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특이하다.
 
 
사전에서 '불상(佛像)'을 찾아보면, '부처의 상'이라고 되어 있다. 이 불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불심은 ①자비로운 부처의 마음 ② 깊이 깨달아 속세의 번뇌에 흐려지지 않는 마음이다. 한갓 바위가 돌부처가 되는 것은, 형태 속에 부처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부처의 마음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인가. 나 같은 평인에게 이는 우문과 같은 것이다.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은 거대한 사각 기둥 모양의 바위 남면을 다듬어 조각하였고, 다른 면은 자연 그대로이며 윗면에는 머리를 따로 만들어 올린 흔적이 남아 있다.
 
몸의 높이가 8.6m인데, 이는 경주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으로 바위면에 새긴 마애불이다. 몸의 오른쪽 바깥을 거칠게 다듬기만 하고, 광배를 조각하였던 흔적은 없다. 겉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옷주름이 수직으로 흘러 내리고, 속옷은 반원으로 주름져 층층으로 내려가는데 주름 표현하는 기법이 이 불상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이한 기법이라고 한다.
 
발은 따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중 하나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마애불 밑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 오른 손은 내려서 엄지와 셋째 손가락에 붙이고, 왼손은 가슴에 들어올려 엄지와 셋째, 넷째 손가락은 붙이고 있다. 머리가 있던 곳에 3단으로 파인 홈이 있고, 그 오른쪽과 왼쪽에는 귀가 닿았던 부분이 파여 있다.
 
 
부처의 마음이 넘치는, 경주남산은 우리 겨레의 영산(靈山)
 
시공을 초월하는 묵묵부답의 불상 하나가 눈을 부라리며 내게 일갈한다.
 
"너는 부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어찌 '경주남산'을 만나러 왔는가?"
 
'바람 부처'는 그저 나그네들의 등에 죽비를 내려치며 산을 내려가라 이른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물은 마치 얼음불(佛)처럼 누워, 은산철벽의 목탁 두드리고, 소나무에 앉은 천년 학들이 파란 하늘을 날아오른다. 은은한 솔숲 향기는 천년의 미혹인가. 무엇하나 제대로 보고 가지 못하는데, 모처럼 내 마음의 그릇, 공(空)에 넘친다.
 

산은 작은 잎 하나까지 흥건히 젖어 있지만 난산이다. 삼릉 지나 상선암에 당도할 때까지 달은 보이지 않고 붉은 신음 소리뿐이다. 돌부처들, 향마촉지인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덩달아 꿈틀거리는 돌 속의 천년. 산은 품은 달을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달에게는 세시간에 가야 할 길과 돌아가야 할 하늘 집이 있는 것이리라. 안절부절 잠들지 못하고 내미는 풀잎들의 푸른 손을 잡고, 맑은 물소리를 거슬러 오르는 어린 물고기의 지느러미 힘까지 불러 모아 마지막 진통이다. 산정에 서니 온통 땀이다.  <달-경주남산>일부 -'정일근'

덧붙이는 글 | 2월 17일 다녀왔습니다.


태그:#경주남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