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등학교 3년간 쌓았던 교과서 및 참고서는 처분했지만 그 흔적은 남았습니다.
 고등학교 3년간 쌓았던 교과서 및 참고서는 처분했지만 그 흔적은 남았습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하루 전인 오늘(19일) 학부 선배들이 먼저 환영한다고 대학에 오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당부하고 당부했습니다. 착한 아들이기에 믿음을 가지면서 강조했습니다.

"대학에는 고등학교보다 더 좋은 선배가 있고, 낭만이 있는 곳이 대학이야. 하지만 너는 분위기에 휩쓸리는 스타일이니까! 선배들이 환영한다면서 술을 너무 먹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선배들이 술을 강요할 것이니 조심하고, 조심하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밤 11시 넘어서면서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아내는 핸드폰 연락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자 아내는 너무 채근하지 말라면서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아니니 알아서 할 거예요. 너무 제재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 취급하면 더 반발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세요!"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내 스무 살 시절 또한 깡소주를 나발 분 형편없는 당사자였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스스로 다독이면서 이렇게 주억거렸습니다.

'별 일이 없겠지, 그냥 선배들과 좋은 만남을 통해 의기투합 하느라고 늦겠지!'

불안과 염려 끝의 믿음과 자위…. 3년간의 지옥생활 끝에 대학에 합격했으니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겠지. 가능하면 간섭하지 말아야지. 자유의 품으로 돌려보내야지. 내 자식이기 이 전에 아비보다 더 커버린 성인이니까.

고등학교 3년 동안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은 자식, 새벽부터 자정까지 공부에 시달리면서도 밝게 이겨낸 자식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고 무엇보다 누구나 건너가야 할 통과의례이니 별일이 없을 거라고 안위 했습니다.

새벽 1시에 술에 취해 들어와 쓰러진 08학번 내 자식

술의 오물 흔적이 남은 자식의 청바지. 진리도 정의도 알기 전에 술에 오물부터 묻혀 왔습니다.
 술의 오물 흔적이 남은 자식의 청바지. 진리도 정의도 알기 전에 술에 오물부터 묻혀 왔습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자정이 넘었습니다. 당부도 했고, 믿음도 가졌지만 불안이 자꾸 커졌습니다. 수차례 전화를 하고 했지만 받질 않았습니다.

'이 놈이 설마, 설마….'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뜻 스치는 것은 연례(年例)처럼 보도된 지난해 신입생에 관한 비보였습니다.

- 지난 10일 새벽 강원 고성군의 한 콘도에서 대학생 한 명이 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된 강릉 모대학교 신입생 환영회가 발단이었다. -

다행스럽게도, 감사하게도 2008학번 자식이 새벽 1시 넘어서 현관문 벨을 눌렀습니다. 달려 나가 반겼는데 아이는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안겼습니다. 고목처럼 쓰러진 아이의 젖은 옷을 벗기면서 일단 뉘였습니다. 무어라 나무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귀가한 것만 해도 감사했습니다. 내 아이가 이렇게 돌아왔구나! 감사하면서 벗긴 뒤 아이의 옷을 보았습니다. 예상한 대로 아이의 옷에는 술로 인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토한 오물로 청바지가 얼룩졌습니다. 팬티 차림으로 정신없이 곯아 떨어진 아이를 보면서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의 실패를 답습시키지 않기 위해 키운 자식이 이렇게 밖에 안 되는 것인가? 상아탑의 진리도, 학내와 사회에 대한 정의도 실종된 없는 무의(無義)한 그리하여, 등록금 1천 만 원대 고액 실업예비군 양성소에 진입시키려고 지난 3년간 새벽잠을 설쳤나 하는 생각이 들자 한숨이 터져 나왔습니다.

진리를 알기도 전에 술에 죽게 만들 수는 없잖습니까?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을 폭력으로 휘두르는 사회에서 내 자식은 희생되고 있습니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술을 폭력으로 휘두르는 사회에서 내 자식은 희생되고 있습니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팬티 바람으로 잠든 내 아이를 안았습니다. 실망과 기쁨의 이유가 이렇든지 저렇든지 저놈을 키운 이십 년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공부는 썩 잘하지는 못해도 튼실하게 자란 내 피붙이인 이놈!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 아님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익히 아는 일인데, 그러한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에 술에 취하게 하는 선배와 그런 선배를 양성하는 대학을 다니게 해야 할 지부터 곰곰이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자식 부양을 위한 나의 노동과 나의 삶만이 고단하지 않기에 너무나도 그렇습니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

교육이 성장 동력이었다고? 그렇게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어쨌든 어렵사리 키운 자식을 술로 잡아먹으려는 몹쓸 놈의 대학 신입생 환영회 관습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잖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별 방도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놔둘 수는 없고….

술이 우정이고 동지인 사회에서, 술이 폭력으로 번지고 술이 권력으로 난무하는 사회, 술이 아니면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고 횡포를 부리는 주정뱅이의 사회의 일원이었던 아비가 어떻게 자식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술에 찌든 악습의 사회구조를 성토하기에는 내 스스로 휘청거렸습니다. 하지만, 옆걸음 친 게조차 똑바로 걸으라고 하는 것이거늘,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자식을 그 악습의 전철을 밟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내 아이가 혹은 누군가의 아이가 학업을 다하기도 전에 술 죽음의 나락으로 뒹구는 참혹함을 눈뜨고 볼 수는 없잖습니까?

여러분 술로 죽이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 문화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태그:#신입생환영회, #술과 사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