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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내가 매일 먹는 고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고기였어요. 정말 많이 먹었거든요."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박소연(36·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려면 꼭 재래시장 앞을 지나야 했어요. 매일매일 엄마 손 붙잡고 같이 다녔는데 어느 날에는 정육점에 들렸어요. 천정에 걸려 있는 것(죽은 동물들)을 보고 엄마한테 물었더니 대답해주시더라고요. '뭐긴, 저게 네가 매일 먹는 고기야'라고요."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직후 시장 바닥에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는 박소연씨. 그 날 이후로 고기의 냄새조차 맡을 수 없었다고.

 

이후 그녀는 30년 가까이 채식을 지향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동물사랑실천협회(이하 동사실) 대표를 맡고 있다. 이날도 동물 학대 신고 현장에 다녀오느라 모임에 한 시간이나 늦었다.

 

나 역시 6개월차 초보 채식인이다. 박소연씨의 경우처럼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순히 동물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사육과 도살의 현장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결심하게 된 채식. 20여 년간 유지해오던 식습관을 한 순간에 바꾸기는 어려워 육지동물들이 죽어서 나온 식품은 먹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나 자신 이외의 채식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요즈음, 마침 '그린 피플'이라는 소모임에서 채식을 하는 분들의 정기모임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 참석하게 됐다. 장소는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 나까지 총 6명이 모인 조촐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육식을 해 오던 사람들이 채식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몸을 생각한 '건강족'이 있는가 하면, 체질적으로 고기가 받지 않는 '선천적 체질형'인 사람들, 종교상의 이유로 먹지 않는 사람들과 환경 보호를 내세우며 먹지 않는 '환경보호족' 등이 있다.

 

나를 포함하여 이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동물을 생각하는 '동물사랑족'. 이원복(한국채식연합 사이트 운영자)씨와 김상현(36·동사실 회원)씨, 강희춘 (동사실 이사)씨는 모두 특별한 계기 없이 어느 날 문득 '동물은 인간이 먹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모두 어렸을 적 동물과 교감을 나누었던 따뜻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중 곧 대학교 새내기가 된다는 김지연(19·동사실 회원)양은 같은 '동물보호족'이면서도 5년 전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조금 특이하다.

 

"전 반려견도 한번도 키워 본 적이 없거든요. 동물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고요. 동물과의 접촉이 전혀 없었어요. 동물과 교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요.(웃음)"

 

그러던 어느 날 읽게 된 것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장편소설. '인간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대답을 '돼지와 원숭이'에서 찾고 있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과학추리소설이다.

 

책을 통하여 '돼지공장'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어린 마음에 막연하게 '돼지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 '그럼 안 먹으면 되잖아'라는 과외선생님의 가벼운 농담에 채식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모든 유제품과 해산물까지 먹지 않는 순수채식주의자, '비건(vegan)'이며, 현재 동물원 동물들의 보호를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원복씨는 "지연양의 경우가 아주 바람직한 경우"라며 "동물에 대한 특별한 사랑에서 출발해 문제를 인식하게 되는 것도 좋지만, 이를 먼저 사회문제로 인식한 후 동물을 사랑하게 된 사례거든요"라고 말했다.

 

채식 요리, 많이 다른가요?

 

'그린 피플'이 모인 곳은 평범한 중국요리집이었다. 하지만, 종교상의 이유로 채식 인구가 1/3인 대만 출신의 주인이 운영하기 때문에, 모든 메뉴를 채식으로 따로 주문할 수 있었다.

 

내게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김상현씨가 시킨 '버섯 탕수'. 채식을 결심한 이후로 '고기의 유혹'을 참기 힘든 유일한 순간이 바로 중국집의 탕수육 냄새를 맡을 때다. 이 때문에 버섯을 튀겨 탕수육 소스를 부은 이 새로운 요리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의 질감과 맛은 느낄 수 없었지만, 탕수육의 달콤한 소스를 좋아한 나로서는 매우 만족할 수 있었던 음식.

 

 

더불어 채식을 시작한 이후 먹을 수 없던 음식이 바로 만두다. 하지만 오늘만은 이원복씨가 시켜 주신 '채식 군만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둔한 미각을 지니고 있다. 일반 만두와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어 주방장 이영발(49·화교 2세)씨에게 물어보았는데, 만두 속의 비결은 바로 '감자'란다. 감자를 쪄서 찰지게 하면 끈적한 느낌으로 뭉칠 수가 있다고. 이후 야채와 섞어 만두를 빚는 것이다.

 

 

자장면과 짬뽕 역시 겉보기에는 일반 메뉴와 다를 것이 없었다. 차이점은 단지 식물성 기름인 식용유를 사용하고, 소스와 국물에 들어가는 육류와 해산물을 콩고기로 대체하였다는 것. 맛도 일반 자장면이나 짬뽕과 흡사했다.

 

"채식으로 따로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이영발씨는 "돼지, 소, 닭고기 파동 이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채식 메뉴를 찾는 단골 직장인들이 많아졌다"고 답했다.

 

채식을 결심한 이후, 나 이외의 채식주의자들과 함께, 채식인을 배려한 요리를 먹은 것이 처음이기 때문일까? 점점 더 불러오는 배가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젓가락을 움직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채식, 동물과 환경 살리는 길

 

이날 모임의 주된 화두는 '동물과 채식'이었다. 각자 경험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대화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것은 바로 동물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

 

"<아기 돼지 삼형제> 같은 동화책에서는 동물들도 다 우리 인간이랑 똑같잖아요. 집도 있고 가족도, 그리고 친구도 있고요. 그런데 정육점에 갔던 날, 제가 깨달은 거죠. '아, 그 동안 내 친구들을 먹고 살았구나'라고요"라고 회상하는 박소연씨.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동물 보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김지연양은 "인간이 힘이 세고 머리가 좋다고 다른 동물들의 생명까지 박탈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시 "인간이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이 싫어 채식을 시작했다"는 3개월차 초보 채식주의자 김상현씨. 하지만 그는 "채식을 하면 키가 안 자라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어왔다. 이에 대해 20년째 순수 채식을 하고 있는 이원복씨가 대답했다.

 

"영양면에서 인간이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요. 고기를 먹으면 키가 자라는 것은 그들이 자라면서 맞은 성장 호르몬을 섭취하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 수많은 직업 종사자들 중 고기를 드시지 않는 '스님'들이 가장 장수한다고 하잖아요.(웃음)"

 

자녀들에게도 고기 요리를 일체 해주지 않는다는 강희춘씨. 그 역시 주위의 채식인들을 보아 오며 차츰 차츰 어릴 적 친구였던 동물들이 떠올라 고기를 끊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저희가 육식하시는 분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것을 사람들의 양심을 자극하는 윤리 문제로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봐요. 채식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뿐이거든요"라는 이원복씨의 말에 박소연씨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꼭 채식주의자라기보다는…그냥,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로 해주세요(웃음)."

 

더불어 그들은 '동물 보호'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육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알리고자 한다. 현재의 환경운동단체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가 바로 육식을 위한 식용 동물 사육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농장 폐수의 오염 농축도가 생활 폐수보다 16배가 높아요. 농장에서 가축 기르기 위해 항생제 투여하잖아요. 그것 때문에 가축 배설물에 함께 나오는 화학 물질도 환경 오염의 주범이고요." (김지연 양)

 

이러한 '일을 벌이기' 위해 아직 구체적으로 짠 계획은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소모임을 알려 나가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원래 이것보다는 많이 오는데… 오늘따라 사람들이 참석을 안 했네요"라며 멋쩍게 웃는 '그린 피플' 회원들. "괜찮아요. 다음에 꼭 또 뵈어요"라는 인사말을 남기며 4시간여의 모임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 한국채식연합 www.vege.or.kr
동물사랑실천협회 www.kaap.or.kr

김명은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채식, #채식주의, #동물보호, #채식연합, #그린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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