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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옆지기 옛동무가 일산에서 인천으로 나들이를 왔습니다. 전철로 오자면 돌고 도는 먼길인데, 부평역까지 싱 가로질러서 오는 ○○○○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조금 더 걸려서 옵니다. 옆지기 옛동무는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찾아왔습니다. 둘이 먼저 요 앞 밥집으로 가고, 저는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가 문을 닫고 따라갑니다. 두 사람은 콩되비지와 동태국을 먹었습니다. 저는 밥 한 그릇만 더 시켜서 남은 반찬으로 끼니를 채웁니다.

동인천역 기둥에는 '용산 급행 전철'을 알리는 쪽지가 손글씨로 붙어 있습니다. 전철역 직원이 붙였을는지, 다른 사람이 붙였을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이렇게 손글씨 알림쪽지도 퍽 좋습니다.
▲ 동인천역에서 동인천역 기둥에는 '용산 급행 전철'을 알리는 쪽지가 손글씨로 붙어 있습니다. 전철역 직원이 붙였을는지, 다른 사람이 붙였을는지 모를 일입니다만, 이렇게 손글씨 알림쪽지도 퍽 좋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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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옆지기 사촌오빠가 장가가는 날이라, 전철을 타고 주안역까지 다 함께 찾아갑니다. 세 사람 모두 예식장 떠먹는밥(뷔페)를 좋아하지 않는 한편, 새로 살림을 차리는 두 사람이 혼례잔치 밥값으로 돈을 적게 쓰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밥표는 안 받고 말로만 축하를 해 주고 흰봉투에 보탬돈 얼마를 넣어서 드립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집 둘레에 있는 미술전시터(스페이스 빔)에 들러 그림을 둘러봅니다. ‘벗긴 바나나’ 그림이 재미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옆지기 동생이 예식장에서 늦은밥을 먹고 찾아옵니다.

예식장에 들른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골목길에서, 어느 집 창가에 나란히 서 있는 꽃그릇을 구경합니다.
▲ 골목길 꽃그릇 예식장에 들른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골목길에서, 어느 집 창가에 나란히 서 있는 꽃그릇을 구경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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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이 도서관 안쪽에서 담요를 깔고 덮고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옆지기 동생이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아동 착취를 한다면서? 다이아반지를 끼고 싶어도 못 끼겠네.’ 하고 말문을 엽니다. 옆지기가 ‘○○야, 다이아만 그런 게 아니야. 초콜릿도 그렇고 커피도 그래.’ 합니다. 옆지기 동생이 ‘그래? 그러면 뭘 먹고 살아?’ 합니다. 옆지기 동생이 앉은 자리 뒤로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책 《Workers》가 보입니다. 저는 이 사진책을 꺼내어 주석광산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모두한테 보여줍니다. 어쩌면 살가도 님으로서는 목숨을 걸고 찍었을 광산터 사진. 노천광산인 이곳(사진에 나오는) 일꾼들은 자루 하나를 들고 깊은 곳까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한 자루씩 머리나 어깨에 이고 높다란 사다리를 다시 타고 올라가서 내려놓습니다. 광산에는 군인옷을 차려입고 긴총을 둘러멘 사람들이 곳곳에 서서 일꾼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옆지기가 동생한테 말을 잇습니다. ‘○○야, 이런 문제는 ‘가진 사람’들이 풀어야 해. 그런데 가진 사람들만 애쓴다고 풀리지는 않아.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너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그리고 그 일은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해.’

버려진 티코 뒷문을 떼어서 오토바이 앞유리창으로 쓰는 모습. 폐차장으로 간다고 해서 모두 쓰레기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쓰기 나름입니다.
▲ 재활용 오토바이 버려진 티코 뒷문을 떼어서 오토바이 앞유리창으로 쓰는 모습. 폐차장으로 간다고 해서 모두 쓰레기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 쓰기 나름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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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덧 저녁 여섯 시가 홀라당 지나갑니다. 그대로 더 있을 수 있으나, 그러자면 옆지기 옛동무가 너무 추워합니다. 자리를 옮기기로 합니다. 따뜻한 데로 가면 좋겠는데 생각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습니다. 어찌할까 머리를 굴리다가, 신포시장 안쪽에 있는 야채치킨집에 가기로 합니다. 이곳 아저씨 요리 솜씨가 아주 훌륭하기에, 그다지 따뜻하지 않더라도 좋은 밥을 배속에 넣으면 든든하지 않을까 싶어서.

옆지기 동생은 작은 담요 하나를 챙기며 어깨에 두릅니다. 귀가 시렵다며 머리수건도 두릅니다. 모두들 깔깔 웃지만, 추운 날은 추운 대로 껴입어야지요.

사람들 걷는 길을 턱 막고 서 있는 좁은 싸리재길을 지납니다. 거님길 두 편 모두 자가용이 꼼짝도 않고 세워져 있는 가운데, 두찻길로 자동차들이 싱싱싱. 애관극장 앞을 지날 때까지도 거님길에는 자가용으로 가득가득입니다. 우리들은 거님길이 아닌 찻길로 걷습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차들도 ‘다 아는지’ 우리를 보며 빵빵거리지 않습니다. 뻔히 보일 테지요. 또는, 자기들도 차를 세울 때는 거님길에 세워 놓아서 사람들이 찻길로 걸을 수밖에 없도록 할 테지요.

거님길에 함부로 대놓는 차들... 이렇게 대놓는 차들을 치워 놓고, 사람들이 느긋하게 걷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인지.
▲ 거님길을 잡아먹은 차 거님길에 함부로 대놓는 차들... 이렇게 대놓는 차들을 치워 놓고, 사람들이 느긋하게 걷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인지.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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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상가로 들어갑니다. 건널목이 없어서 들어선 지하상가인데, 겨울에는 따뜻합니다. 이것 하나는 괜찮네요. 옆지기 동생과 옛동무는 ‘야, 따뜻하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길게 이어지는 지하상가에서는 천천히 걸으며 가게 구경을 합니다. 옆지기 동생은 양말 세 켤레를 삽니다.

얼마쯤 걷다가 밖으로 나와야 할 때. 투덜투덜대지만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신포시장으로 들어섭니다. 닭강정을 사먹겠다는 사람들 줄이 시장 들머리를 꽉 막아섭니다. 줄 사이로 몸을 틀며 빠져나옵니다. 닭집 앞에 섭니다.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자리가 없습니다. 닭집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어? 기다려 봐. 자리 만들어 줄게.’ 합니다. 자리는 꼭 넷 있고, 다 차 있었으나, 한 자리에 있던 아저씨 세 분이 술값을 셈하고 나갑니다. 다른 분들은 옆자리로 옮겨 앉습니다. 오랜 인천 토박이들이 모이는 조그마한 이곳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걸상만 붙이면 서로서로 알음알이를 하는 동무 사이가 됩니다.

닭집 아저씨가 덤으로 주신 청어 구이.
▲ 청어 구이 닭집 아저씨가 덤으로 주신 청어 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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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야채치킨과 오징어데침을 시킵니다. 아저씨는 덤이라면서 청어구이 한 접시를 내어줍니다. 아니, 이런 덤을. ‘배보다 배꼽이 크지 않아요?’ 하고 인사를 하니,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기만 합니다.

옆지기 동생과 옛동무는 예전에도 한 번 이 집에 함께 온 적 있습니다. ‘형부, 저번에 여기 와서 먹은 뒤 일산에서는 닭이 맛없어서 못 먹어요.’ 합니다. 신포시장을 걸어서 지나가는 동안에는 ‘와, 여기는 천국이다, 천국!’ 하면서 소리를 쳤습니다. 왕만두며 찐빵이며 옥수수며 순대며 떡볶이며 닭강정이며 떡집이며 ……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먹을거리는 곳곳에 푸짐하니까요.

신포시장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할매.
▲ 옥수수 할매 신포시장에서 옥수수를 쪄서 파는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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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산 주엽역이며 대화역이며 번화한 거리에서 포장마차 장사를 못하게 해서, 그 동네에서는 떡볶이와 순대 구경을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일산에 오래된 저잣거리가 있지도 않고.

닭집에서 배불리 먹고 저녁 여덟 시를 넘기고 아홉 시가 가까워질 무렵,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돌아가야 할 길이 먼 사람이 둘 있으니.

오던 길을 거슬러 가다가 옥수수 파는 할머니한테서 두 봉지를 삽니다. 다시 지하상가로 들어가서 언덕길을 지날 즈음, 옆지기 동생이 옆지기한테 머리띠 하나를 사 줍니다. 지하상가는 전철역까지 이어집니다. 네 사람은 추위에 떨지 않고 걸었습니다. 일산으로 빨리 돌아가자면 부평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면 될 테지만, ‘부평역 지하상가를 지나가야 한다고요?’ 하면서, ‘그냥 전철로 돌아갈게요’ 합니다. 부평역 지하상가는 대단히 어수선하고 길이 가지가지 친 터라 나오는 구멍 찾기가 꽤 어렵긴 합니다.

서로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집니다. 옆지기와 저는 중앙시장 길을 지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둠이 깔린 조용한 중앙시장 길. ‘전통공예거리’라고 하는 지하상가로 들어갑니다. 여기도 건널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지하상가입니다. 한켠에 자리한 헌책방이 아직 문을 열고 있습니다.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니 헌책방 아저씨가 동무하고 술을 한잔 하십니다. 책방 앞에 죽 깔아 놓은 그림책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가 그림책 두 권 고릅니다.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이 책도 볼 만해요’ 하면서 동요책 하나를 내밉니다. 옆지기는, ‘이것도 사자’고 합니다. 책 세 권, 3000원. 옥수수 담은 봉지와 책 세 권을 가슴에 안고 터벅터벅 계단을 밟고 4층 집으로 들어갑니다. 옥상마당 문을 여니,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전철길이 보이고, 불빛 밝히며 지나가는 전철 소리가 털커덩털커덩. 손발을 씻고 자리에 눕습니다.

옥상마당에서 바라보는 밤 전철과 동네 밤 모습.
▲ 밤 전철 옥상마당에서 바라보는 밤 전철과 동네 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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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조금 긴 덧글이지면 몇 마디를 붙여 봅니다.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또 남구를 비롯한 오래된 동네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길이 2.41km)’를 골목집이 몰려 있는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산업도로를 뚫은 뒤에는 골목집을 모두 쓸어내고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올려세운다고 합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 또 남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인천시장님 업적에 ‘송도-청라 지구 재개발’이 중요하고, 2009년 도시엑스포 때 나라밖 손님들한테 ‘오래된 동네 모습은 안 보여주고 싶’고,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르기 앞서 ‘호텔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까닭 때문에, 이미 이 땅에 오래도록 터박고 살아온 서민 삶터를 깡그리 짓밟고 내쫓아도 될 일일까요. 토박이를 밟고 차고 쫓아낸 자리에 어느 누가 들어와서 토박이로 살 수 있을는지요.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해 온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웁니다.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고, 골목길에는 낮은자리 사람들, 그러니까 서민들 숨결이 녹아난 보금자리가 있음을 들려주고 싶고, 돈으로는 헤일 수 없고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눈물과 웃음이 서린 우리 손때 묻은 길과 집이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태그:#골목길, #인천, #배다리, #신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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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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