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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표기로는 나무는 '나모'라고 합니다. 어근 '남-'에 접미사 '-오'가 붙어 된, '나모'가 '나무'로 변했다고 합니다. 어근 '남-'은 '낟>날>나암>남'으로 변천해 왔다고 하네요. 나무를 셀 때 '한 그루', '두 그루' 하는데 그루 주(株)의 어근은 '글-'이고, 이 '글-'은 나무의 뜻을 지녔던 말이라고 하네요.

들에 내려 들나무, 우리나라 나무 이름 외우기
▲ 산에 올라, 산나무 들에 내려 들나무, 우리나라 나무 이름 외우기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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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을 향해 올라가다보면 숱한 사람처럼 만나는 나무의 이름, 그 나무의 이름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들은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나무의 이름표를 달지 않은 나무들을 만나면, 이게 무슨 나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식물학자나 식물 전문가 외에 우리나라 나무 이름 다 외우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요. 그런데 산을 향해 올라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전래동요. 부르다 보니 나도 나무 한 그루가 됩니다.

나도 금강소나무 !
▲ 금강산에 많은 금강소나무 숲에 오면 나도 금강소나무 !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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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산나무∼ 들에 내려 들나무∼ 봉화 둑에 홰나무∼ 불에 부쳐 향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용춤추어 용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한치래도 백자나무(일명 잣나무), 조선에 난 호도나무∼ 남쪽에 난 동백나무, 푸르러도 단풍나무, 단풍져도 사철나무, 소년시절 영감나무, 평생 소녀 대추나무∼ 사시사철 사철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사월 팔일 느티나무 먹기 어린 떡갈나무∼.' - 전래동요 '산에 올라 산나무'에서

불 밝혀라 등나무, 조선에 난 호도나무,남쪽에 난 동백나무
▲ 겨울숲에서 나무 이름 외우기 불 밝혀라 등나무, 조선에 난 호도나무,남쪽에 난 동백나무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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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나무 이름을, 노래 부르듯이 외우며 올라가는 산길, 십위지목(열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를 이름)도 만나고, 봄이 왔다는 것을 먼저 알리는 꽃봉오리 맺는 꽃나무들을 바라보면, 나무들은 정말 신령스럽습니다.

박지원 선생은 '꽃이 하루에 한 잎씩 피어 열두 잎 다 피고 보면 보름인 것과 달이 이지러는 것을 알게 되며, 꽃이 하루 한 잎 씩 말아 들어가 꽃 꼬투리가 떨어지면 그믐이 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래서 이것을 명수(蓂樹)라고 부르고 또 영수(靈樹) 라고도 부른다고 말씀하시네요. 정말 나무는 신의 말씀을 알리는 전령사입니다.

'휘늘어져 버드나무 백양 청양 황양나무∼ 증기증기 느릅나무 갈기갈기 가락나무 칼로 비어 피나무 목에 걸려 가시나무 속비어 대나무∼ 악스런 아구나무 네편 내편 양편나무 씨름하여 저나무(닥나무) 홍두깨 박달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액마구리(액막이) 복사나무 동풍에 모기나무 덜덜 떠는 사시나무 말라빠진 살대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할수 없이 가야나무∼ 빠르기 화살나무 전기선대 수기나무… 하느님께 비자나무∼ 절에 가서 기구나무 송낙(여승이 쓰는 모자)쓰고 상수리나무∼.' - 전래동요 '산에 올라 산나무'에서

가자 가자 감나무...오자 오자 옻나무
▲ 속 비어 대나무... 가자 가자 감나무...오자 오자 옻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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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지방의 전래동요는 더 재미나게 나무와 풀 이름을 외우며 노래합니다. '가자 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김치가지 꽃나무 맨드래미 봉숭아 물나비 삘나미 대추나무 열나무' 같은 '가자 가자 갓나무' 동요를 경남 고성지방에서는 '가자 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물에 빠진 동구나무 김치 가닥 꽃가지야…' 하고 노래합니다.

전남 고창 지방에서는 '가자 가자 갓나무 오자 오자 옻나무 물에 빠진 상나무 건져 내어서 이 앞다리 놓아볼까' 하고 나무의 쓰임새까지 노래하네요. 정말 재미 있습니다. 나무의 이름을 이런 식으로 불어준 선조들의 지혜와 해학 참 존경스럽네요.

제 이름을 부르며 살고 있다
▲ 산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살고 있다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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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궁에 계수나무 왜지게 벚나무 굿놀이 사당나무∼ 새로지은 옻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비단 같은 전나무∼ 버선끝에 상모나무 오목다리 오목나무 덥적 앉아 줄나무 입맞췄다 쪽나무 입술 같은 영조나무 시집갈 때 가마 해나무~ 방구 뀌어 뽕나무 부끄러워 무환나무 우물가에 물푸레나무 품음직한 자나무∼ 자손 창성 석유나무 피리젓대 파나무 달구 달어 꿀나무 거짓 없이 참나무 그렇다 치자나무∼.' -전래동요 '산에 올라 산나무'에서

지팡이도 산에 올라 지팡이 나무
▲ 산에 올라 산나무 지팡이도 산에 올라 지팡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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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지방의 나무를 노래한 '소나무' 전래동요는 너무 또 재미 납니다. '왕솔밭에 잔솔 잔솔밭에 술지게미 술지게미 밑에 날라리 날나리 밑에 뽀족이∼', 전남 강진 지방의 '대나무'는 대나무에 비유한 효성을 노래 합니다.

뭔나무하고 물으면, '먼나무'가 됩니다 ?
▲ 가로수, 먼나무 뭔나무하고 물으면, '먼나무'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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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건너 대 오래밭에 왕대죽신(죽순)을 심었더니 / 그 죽신이 크게 되어 죽신 위에 학이 앉아 / 학 위에는 용이 앉아 용 위에는 꽃이 피어 그 꽃 한 쌍을 꺾어다가 머리에 꽂아 질러 / 오리정 밖으로 부모 마중을 갔고나' 등 나무에 빗대어 효심과 인생을 비유한 노래들이 정말 가슴을 찡하게 울립니다.

'나무를 심는 자는 희망을 심는다'고 합니다. 나무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하는 나무들의 이름이라서 수첩에 하나씩 적어 봅니다. 나무들이 말이 없이 서 있으나 나무들은 무수한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그런데 나무들의 이름만큼 나무들의 쓰임새도 너무 다양하네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낙엽송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삼나무 팽나무 후박나무 등은 건축용으로 많이 쓰이고, 밤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낙엽송 등은 철도 침목으로 쓰이기도 하고, 가구용으로는 은행나무 측백나무 향나무 호두나무 느티나무 목련 오동나무 나왕 단풍나무 뽕나무 잣나무 등이 쓰이고, 선박용으로는 편백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티크나무 등이 쓰이고, 어망의 재료도는 떡갈나무가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장자'는 '인간세편'에서 '나무들 중 타고 난 목숨을 채우지 못하고 자라나는 중에서도 도끼날에 꺾이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에게는 쓸모 있는 재목의 환(患)이다'라고 자라는 나무의 희생을 안타까워 합니다.

어머,너무 외로워, 서로 의지하는 '부부나무'가 되었습니다.
▲ 산에서 내려온 '도시나무' 어머,너무 외로워, 서로 의지하는 '부부나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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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저 혼자 행복한 생물입니다. 그러나 들에 내려온 들나무, 도시로 내려온 도시나무들 정말 고향 산이 그립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서로에게 불러주듯이, 나무의 이름을 나무들이 서로 불러주듯이, 초등학교 입학생처럼 앙상한 가로수들의 나무 이름표를 목에 걸어주는 일, 그것은 나무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모습일 듯합니다.

나무 사랑, 나라 사랑, 그리고 산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나무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 자연을 사랑하자는 마음의 다짐이 될 듯합니다.

가자가자 감나무야
오자 오자 옻나무야
꿀에 빠진 오동나무
건져내는 모개나무
황새 득새 노는 데는
깃이 한개 빠졌네
각시들 노는 데는
연지분이 빠졌네
선비들 노는 데는
여루붓이 빠졌네
머슴들 노는 데는
석자 수건 빠졌네.

- 가자가자 갓나무, 경남 함안 지방 전래동요


태그:#나무, #나무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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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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