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밸런타인 데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요즘 초콜릿과 팬시점은 사랑하는 이에게 줄 초콜릿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밸런타인 시즌을 맞이한 서울 중구 방산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초콜릿 재료를 파는 곳으로 유명한 방산시장은 해마다 밸런타인 시즌이 되면 손수 초콜릿을 만들어 선물해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시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만큼 밸런타인 데이를 실감할 수 있고, 재미난 볼거리가 가득한 이 곳, 방산시장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 상황을 알아보고자 직접 현장 취재했다.

"우와, 사람들 짱 많다!"

'방산시장'의 표지판이 입구 앞에 우뚝 서 있다.
 '방산시장'의 표지판이 입구 앞에 우뚝 서 있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오후 1시, 지하철 을지로4가역 6번 출구로 나왔다. 나온 길 그대로 걸어가니 입구 앞에 우뚝 서 있는 방산시장 표지판이 보였다. 그런데 입구 주변은 맞은편에 위치한 광장시장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장 내에 위치한 사거리 한복판에 다다르자 그곳에서부터 이색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와, 사람들 짱 많다!”

한 여자가 친구와 수다를 떨며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말 그대로였다. 손에 흰 비닐봉지를 한두 개씩 든 여자들이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커다란 흰 봉지에는 초콜릿과 요리 도구들이 담겨 있었다.

초콜릿 광고 티셔츠를 입은 토끼가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초콜릿 광고 티셔츠를 입은 토끼가 재미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사거리 길 옆마다 설치된 가판대 앞에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발렌타인 초콜릿’이라고 붙어있는 가판대에는 온갖 종류의 초콜릿과 장식용 재료 및 도구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방문객들은 한 곳에 뭉쳤다가도 흩어지면서 재료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사거리 주변에는 시즌을 맞이한 시장 내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도 눈에 띄었다. 사거리에서 뻗어 나오는 길에서는 초콜릿 광고 티셔츠를 입은 토끼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토끼는 사람들 앞을 거닐면서 재밌는 춤을 추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으니 언제 카메라를 발견했는지 이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사거리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시장 내에서 보기 드문 분식차가 나와 있었다. ㅅ다방을 운영하는 박모(56)씨는 “밸런타인 데이가 가까워져서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주변에 먹을 곳이 없다”면서 “본업을 하다가 12시부터 6시쯤까지 떡볶이, 순대를 판다”고 했다.  

상점들이 빼곡히 모여 있는 사거리 옆 골목길은 이미 가판대와 재료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골목에 들어가려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야만 했다. 사람들은 팔다리가 사람들 사이에 껴도 초콜릿 재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게 앞 돌단 위에 선 상인들은 방문객들을 향해 “초콜릿 보고 가세요, 저렴하게 드립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무엇을 살지 옆 사람과 토론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와 한데 섞여 시장의 활기를 더하고 있었다.    

밸런타인 시즌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거리 옆 분식차
 밸런타인 시즌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거리 옆 분식차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상점이 모여있는 골목길 안,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상점이 모여있는 골목길 안,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밸런타인 시즌에는 평소의 10배, 대부분 10~20대 여성

밸런타인 시즌에는 방산시장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올까? 이에 대한 답으로 ㄷ상점의 윤봉춘(50)씨는 "이 시즌이 되면 방산시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평소의 10배는 된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최모(17)씨는 "사람들을 이리 저리 밀치게 되어 복잡하다"고 했다. 김모(21)씨는 "앞으로 재료 살 때 2~3일 전에는 와야겠다"고 말했다. 

ㅂ상점의 강석민(30)씨는 방문객의 연령, 성별에 대해 "이 시즌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10~20대 여성으로, 여성이 99%를 차지한다"고 했다. 실제 눈으로 보아도 남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남자는 상인이거나, 초콜릿 재료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온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른 경우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그 중 노욱래(25)씨는 "여자 친구가 초콜릿을 사는데 따라오게 됐다"며 "남자들이 없으니 조금 부끄럽다"고 웃음을 지었다.

밸런타인 시즌에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10~20대 여성이다.
 밸런타인 시즌에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10~20대 여성이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 시장을 바꾸다

방산시장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친구와 함께 온 이모(16)씨처럼 "평소에도 가끔 와서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 모(21)씨처럼 "동생이 작년에 만들어서 알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강모(19)씨처럼 "인터넷으로 보고 왔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방산시장은 원래 제과·제빵 전문 시장이 아니다. 이곳은 40여년 전 부터 포장, 인쇄 등 다양한 방면의 가게가 모여 있는 곳이다. 제과·제빵 전문은 그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방산시장 상인들은 밸런타인 시즌만 되면 제과·제빵에 관련 없는 상점이라도 초콜릿 재료를 팔았다.

그렇다면 방산시장은 어떻게 밸런타인 초콜릿 재료로 유명한 곳이 되었을까? ㅊ상점에서 인터뷰한 이 이야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제과·제빵 전문 ㅊ상점을 운영하는 상인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커다란 초콜릿 원판을 작게 잘라서 사람들이 선물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다음 그는 아버지의 상점에 대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가게에서 초콜릿 덩어리를 작게 잘라 파는데, 그것을 사가지고 가면 직접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는 글이었다.

그러자 인터넷에서 글을 본 사람들이 ㅊ상점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첫 해에는 1000명, 다음 해에는 5000명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주변에 있던 다른 제과· 제빵 상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 둘씩 밸런타인 시즌에 초콜릿을 팔게 됐다.

그 이후에도 많은 상점들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 밸런타인 시즌에 몰려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제과·제빵과 관련 없는 상점에서도 시즌에만 초콜릿을 팔기 시작했다. 요리도구, 포장 전문 상점에서도 시즌 때 특별히 초콜릿 요리도구나 상자를 판매하게 됐다. 중학생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가 시장을 변화시킨 것이다.

상인들 "초콜릿 작년부터 준비, 시즌에는 밥도 못 먹어"

오후 7시, 이미 날이 저물어 방산시장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초콜릿을 파는 가판대 위에는 하얀 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낮보다 날씨가 쌀쌀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언 손을 호호 불며 초콜릿 재료를 살폈다.

사람들이 가판대 앞에서 재료를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판대 앞에서 재료를 구경하고 있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문득 가게 앞에서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들을 부르는 상인들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이들은 밸런타인 시즌을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그리고 시장이 삶의 일부인 그들은 바쁜 요즘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답을 알아보고자 상인들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ㄷ상점의 윤봉춘(50)씨는 재료 준비에 대해 "작년 12월부터 초콜릿 몇 톤을 계약했다, 늦어도 대부분의 상점이 1월까지는 계약을 마친다"고 했다. 이유는 재료 주문이 늦는 경우 이미 도매상에서는 다른 상점들과의 계약이 완료된 시점이라 장사를 못 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도매상에서 큰 묶음으로 사온 것을 작은 묶음으로 소분하는데 약 1달이 걸린다. 초콜릿만 해도 그렇다. 소매상에서는 방문객들에게 물건을 팔기 전, 소분한 초콜릿 봉지에 스티커를 붙이고, 유통기한을 기입하는 등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소매상은 밸런타인 시즌을 일찍 준비해야만 한다.

소매상에서 초콜릿을 가판대 위에 올려놓기까지는 약 2달이 걸린다.
 소매상에서 초콜릿을 가판대 위에 올려놓기까지는 약 2달이 걸린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물론 밸런타인 시즌에 그들의 생활은 훨씬 바빠진다. ㅇ상점의 노재숙(58)씨는 "2월 초부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기 시작하는데, 대략 2~4시에 사람이 가장 많고, 5시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밸런타인 시즌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이 적은 시간대는 줄어든다. 그래서 ㄷ상점의 윤씨의 경우에는 아침 6~7시부터 저녁 8~9시까지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물건을 판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밥도 간혹 굶는다. 마침 인터뷰를 하고 있던 중, 윤씨의 아들이 배고프다며 가게로 들어왔다. "응, 너도 저녁 못 먹었지…" 윤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듯 이렇게 말했다.

올해 방문객 수 작년의 3분의 1, 그 이유는?

밸런타인 시즌을 맞은 방산시장의 상인들은 끼니를 굶어가며 바쁘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올해 방산시장을 방문객의 수가 작년의 1/3수준 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 하나는 인터넷 쇼핑몰 수가 증가해서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얼마든지 초콜릿 재료를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어떤 상인은 "방산시장 대부분의 상점들이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거의 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밸런타인 시즌 때 인터넷 쇼핑몰로 수익을 얻은 상점들이 몇 군데 있다. ㄷ상점의 이경순(37)씨는 "평소 인터넷 쇼핑몰 방문 건수가 약 2000~3000건인데, 요즘은 4000~5000건"이라고 말했다. ㅋ상점의 박경미(28)씨는 "밸런타인 시즌에는 방문 건수가 평소의 6배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이 없는 상점의 경우에는 방문객이 큰 폭으로 줄게 됐다. 초콜릿 포장 상자를 판매하는 ㅇ상점의 정일영(36)씨는 "시장에서 소비자 수를 예측할 때 제작년에는 15만 명, 작년은 7만 명이었지만 올해는 5만 명으로 잡았는데도 2만 5천 명 정도가 방문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시장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서민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방문자 수가 줄어든 원인으로 '유행'을 꼽기도 했다. 방산시장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기사가 TV나 신문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유행이 지속되는 3년 주기가 끝나 유행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이 딱 3년째에 속하는 해인데, 사람들이 유행에 너무 민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산시장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TV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방산시장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TV에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밸런타인 시즌, 방산시장의 매력이 있다면? 

상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올해 밸런타인 시즌 방문객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언급한 이유와 더불어 설 연휴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는 방산시장으로 가려던 사람들의 발목을 더욱 붙잡았다.

하지만 일부 상점에서는 이에 대한 나름의 대처방식을 갖고 있다. ㄷ상점의 윤씨는 굳이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적게 와도 신경 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가게 위치나 재료의 맛, 주인을 확인하고 간 뒤에 또 방문하니까요. 우리 가게에서 얻은 '신용'은 오래 갈 거예요."

추운 날 굳이 방산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설 연휴 때문에 주문시기를 놓쳐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모(21)씨는 "인터넷보다 저렴하고, 이것저것 재밌게 볼 것이 많아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강모(17)씨는 "직접 보고 살 수 있어서 방문했다"고 했다.

방문자와 상인이 함께 준비하는 밸런타인 데이

흰 봉지를 든 여자들로 가득한 방산시장의 모습은 밸런타인 시즌에만 볼 수 있는 방산시장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방문객들의 따뜻한 마음과 두 달에 걸친 상인들의 피땀 어린 준비가 만들어 낸 것이다.

어두운 밤, 방산시장에서 초콜릿 재료를 사들고 돌아가는 길은, 밸런타인 데이가 어떤 이에겐 하루가 아닌 두 달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두운 밤이 되었지만 초콜릿 가판대 위의 등은 환하게 밝다.
 어두운 밤이 되었지만 초콜릿 가판대 위의 등은 환하게 밝다.
ⓒ 이지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방산시장 취재에 협조해주신 상점 사장님들과 길거리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발렌타인데이, #발렌타인, #2월14일, #방산시장, #초콜릿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