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숭례문. 조선 왕조 초기부터 60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아간 민중의 애환을 지켜본 문이다. 국보1호. 그 숭례문이 큰 불로 삽시간에 사라졌다.

 

아쉽게도 활활 불탄 숭례문을 풍수지리로 풀이할 능력은 내게 없다. 다만 더불어 나눌 ‘진실’은 있다. 숭례문 지붕이 속절없이 무너질 때, 대다수 겨레의 가슴에 억장도 무너져 내렸다. 이 겨레 구성원 가운데 폐허가 된 숭례문을 보며 가슴이 먹먹하지 않은 이는 드물 터다. 불 탄 숭례문으로 이미 민심의 한 자락이 흉흉하다. 관악산의 화기로부터 최고 권력이 머문 자리를 보호하려고 세운 문 아니던가.

 

그렇다. 과학적 인과관계는 없더라도 뭔가 불길한 조짐은 아닐까 누구나 우려하고 있는 게 진실이다.

 

그래서가 아닐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한나라당이 앞을 다퉈 노무현 정권을 비난하고 나선 까닭은. 딴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새 대통령의 앞날에 불길한 암운이 드리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인수위나 한나라당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만으로 위장전입과 위장취업의 난관을 뚫고 당선된 대통령 아니던가.

 

하지만 인수위나 한나라당이 책임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면서 화재와 정부조직개편안을 연결하는 모습은 볼썽사나움을 넘어 울뚝밸을 치솟게 한다.

 

책임규명 철저히 한다면서 정부조직개편안과 연결

 

그래서다. 숭례문의 화재에서 아무런 성찰도 없는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에 명토박아 둔다. 누가 뭐래도 ‘숭례문 큰불’의 무대는 이명박 당선자가 깔아놓았다.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이 당선자는 2002년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숭례문이 시민과 더욱 친숙하게 될 수 있도록 보행공간으로 넓히고 횡단보도를 설치해 세계적인 우리 유산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놓겠다.”

 

물론, 숭례문이 시민과 친숙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실제로 서울시장 이명박은2005년 5월에 숭례문 주변 광장을 개방했다. 2006년에는 2층 누각을 제외하고 모두 열었다. 이 당선자는 자서전에서 과시하듯 ‘숭례문 개방’을 자화자찬했다.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숭례문은 어느 누구에게도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국보 1호라는 숭례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었다. 차도로만 둘러싸여 있던 숭례문이 근 1세기 만에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가 숭례문을 개방하면서 아무런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은 데 있다. 섣부른 개방이 숭례문 소실을 불렀다는 네티즌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과연 그 지적이 불 탄 숭례문에만 해당하는 걸까. 아니다.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은 곧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노 대통령에 이어 이 당선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숭례문이 무너져 내린 바로 그날, 이명박 당선자의 ‘어용 신문’으로 전락한 한 신문의 사설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서둘러 체결해야 한다고 부르댔다.

 

한미자유무역협정과 경부대운하에 보내는 숭례문의 교훈

 

비단 대책 없는 개방의 문제가 아니다. ‘보여주기 정책’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숭례문 개방 또한 ‘보여주기 정책’의 대표적 보기였다. 아무런 대책 없이 추진된 전시적, 과시적 정책이다. 그 정책은 지금 경부대운하 사업 강행으로 나타나고 있다. 언죽번죽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하지만 경부대운하가 불러올 여러 위험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할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여론의 소나기를 피해 강행하려는 꼼수만 보일 따름이다.

 

그렇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따위의 대책 없는 개방과 경부대운하 따위의 보여주기 정책에 보내는 경고다. 캄캄한 밤에 불꽃으로 사라진 저 600년 숭례문의 엄한 자태는.


태그:#숭례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