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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에 주방을 서성대던 아들 녀석이 밥 먹자고 부르자 제 방에서 냉큼 나온다.

“어, 이게 뭐야?”
“뭐긴, 콩나물밥이지!”

밥상 위를 한눈에 훑던 녀석은 별로 탐탁치 않은 표정이다. 그러면서 ‘그냥 밥’은 없냐고 묻는다. 녀석이 말하는 건, 밥 속에 콩나물 따위가 들어가지 않는 말 그대로 다른 것 섞지 않은 그냥 밥을 말한다. 밥통에 그냥 밥은 하나도 없다. 콩나물밥이 내키지 않아도 오늘 저녁은 달리 따로 먹을 게 없다.

내일이면 큰집으로 설을 쇠러 간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우는데 장을 보거나 반찬을 만들어 먹기도 어중간하다. 냉장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고 콩나물 한 봉지와 랩으로 포장해 놓은 달래를 사왔다. 야채박스에 남아 있는 작은 무 반쪽을 꺼내 두툼하게 채를 썰고 콩나물과 같이 넣기로 했다.

콩나물과 채썬 무, 달래를 적당히 준비했다.
▲ 준비재료 콩나물과 채썬 무, 달래를 적당히 준비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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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테 얻어먹기만 했지 잘 해 먹지 않던 콩나물밥. 오늘은 직접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콩나물을 따로 삶고 양념장에 그냥 비벼먹었는데 아무래도 밥을 안치고 나서 콩나물을 같이 넣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밥이 되거나 질어질 수 있어서 밥물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밥이 되는 중간 어느 때 넣어야 할지 때를 잘 맞춰야 한다.

밥이 끓기 시작하면 콩나물과 채선 무를 넣어준다.
▲ 쌀 안치기 밥이 끓기 시작하면 콩나물과 채선 무를 넣어준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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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위에 콩나물과 무를 올리고 소금을 조금 뿌려준다. 간간한 맛이 배도록.
▲ 재료올리기 밥 위에 콩나물과 무를 올리고 소금을 조금 뿌려준다. 간간한 맛이 배도록.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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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신경 써서 만든 콩나물밥은 콩나물의 구수함이 밥에 스며들어 더 맛이 좋다. 간편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먹는 콩나물밥. 직접해보니 콩나물밥에 넣어 먹어도 좋을 것들이 떠오른다.

김치에 양념을 살짝 빼서 쫑쫑 썰어 넣거나 돼지고기를 넣어도 좋겠고, 조갯살 같은 해물을 넣어도 꽤 별미겠다. 조갯살을 삶아 넣고 조갯살 우려낸 물로 밥물을 하면 콩나물과 어울려 구수함이 더 진할 것 같다.

쌀을 씻어서 잠깐 불릴 새도 없이 압력밥솥에 안쳤다. 꼭 닫지 않아 압력이 되지 않게 뚜껑을 그냥 올려놓은 상태로 잠시 끓이다가 콩나물과 무채를 넣었다. 그다음에 뚜껑을 꼭 닫아 압력밥솥 추에서 소리 나기를 기다려 불을 한 단계 줄였다. 콩나물과 무가 섞인 구수한 냄새가 코에 감돌자 불을 끄고 자연히 공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양념장에 달래를 넣지 않고 비벼먹을 때 바로 생달래를 넣어먹기로 한다.
▲ 양념장 양념장에 달래를 넣지 않고 비벼먹을 때 바로 생달래를 넣어먹기로 한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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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동안 달래를 적당히 썰고 진간장에 고춧가루와 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었다. 달래는 비벼먹을 때 바로 먹으려고 양념장에 넣지 않았다.

구수한 냄새가 꼬 끝에 솔솔~ 풍긴다. 입맛이 확 당기는 냄새.
▲ 뚜껑열기 구수한 냄새가 꼬 끝에 솔솔~ 풍긴다. 입맛이 확 당기는 냄새.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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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빠진 압렵밥솥을 열고 주걱으로 저어보니, 와…. 이렇게 적당할 수가. 되지도 않고 질지도 않아 딱 좋다. 콩나물과 무에서 물이 나오니 평소 하는 밥보다 물을 적게 잡았다. 콩나물밥이 남으면 시간이 지나고 수분이 빠지면서 밥 속에 들어간 콩나물은 누런 머리카락처럼 된다.

입맛에 따라 양념장을 적당히 넣어 먹어요. 다음에 또 해먹고 싶은 달래콩나물밥.
 입맛에 따라 양념장을 적당히 넣어 먹어요. 다음에 또 해먹고 싶은 달래콩나물밥.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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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해 먹는 콩나물밥. 밥을 싹싹 훑어 식구 수 대로 펐는데 남기는 사람이 없다. 그냥 밥을 먹고 싶다던 아들 녀석도 달래를 넣고 양념장을 끼얹어 쓱쓱 비벼먹었다. 더 먹고 싶어도 밥이 없어 아쉬워하면서.

보글보글 끓는 두부 된장찌개 국물과 잘 익은 김장김치를 숟가락 위에 올려 먹는 맛도 일품이다. 기름지고 풍성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는 설 명절 전에 먹는 깔끔하고 담백한 달래콩나물밥 한 그릇이 뱃속을 편하게 해준다. 소박하고 ‘착한’ 콩나물밥, 설날이 지나면 다시 보자!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 송고합니다.



태그:#달래 , #콩나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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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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