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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17:00

 

거리를 걷다보니,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다. 주변 길가에는 사람들이 주저앉아 손바닥만한 접시에 담긴 음식을 홀짝이며 먹고 있다. 뭔가 나눠주나 보다. 무료 시식코너라도 여나?

 

“저곳에서 뭐하는 거예요?”

“보시하는 음식을 나눠먹는 겁니다. 힌두교의 오랜 관습이지요. 굶주림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겐 가장 큰 고통이니까요.”

“힌두교인이 아니면 얻어먹을 수 없나요?”

“하하… 음식을 나누는 건 우리가 가진 생명을 서로 격려하고 지켜주자는 뜻이 담겨 있죠. 힌두교이든 아니든 다 똑같은 생명인데 안 될 리가요.”

 

     

 

21:00

 

약속했던 밤 9시가 다가오면서 다시 빗줄기가 토닥토닥. 여행사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청천병력! 모든 버스가 불통이란다. 북쪽에서 델리로 들어가는 모든 도로가 통제되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나 어떡해?’ 숨 돌릴 틈 없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안돼욧!”

“글세, 우리로서는….” 이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도 안돼요! 15일 새벽 1시 비행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 밖에 남지 않았어요. 방법을 찾아봐 주세요! 부탁해요!”

“불가해요. 비행기표를 물리시고 다시 리컨펌하세요. 그 수밖에 없습니다.”

“알아요. 그 점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다시 발권한다지만, 원하는 날짜에 좌석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솔직이는 귀국하기로 맘 먹은 이상 그 시간에 맞춰 돌아가고픈 거예요. 방법이 정말 없는 건가요?”

“으음… 그러시다면 택시로 찬디가르로 간 후 거기에서 버스로 델리로 들어가는 거예요.”

 

곁에서 들락날락하며 이야길 듣고 있던 이 사무실의 책임자인 듯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안돼오. 그 길도 위험하오. 지금 상황은 찬디가르로 가는 길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소. 안됩니다. 이런 폭우에 길이 속수무책 무너지고 있어요. 자칫 갇히는 수가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며 침묵하자 그는 더는 할 말이 없었던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괜찮을 거예요. 저 분 워낙에 민감하게 재고, 안 되는 쪽으로 사고가 발달하신 분이라서.”  

“그래요? 여러분의 생각에 괜찮다 하심 가는 쪽을 택하겠어요. 그럼, 택시비는 얼마나 들까요?”

 

장부를 뒤적이더니,

 

“7000루피(우리 돈 21만원)네요. 이 지역의 공시가격입니다.”

“웩! 그렇게 비싼가요? 그 비용으론 도저히…. 도저히 또다시 절망이네요.”

 

고개가 푹 떨궈지고 다리 힘이 쪼르르 풀리더니 어디라도 주저 앉아야 했다.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한 시나리오. 이제 주사위는 내게 주어졌고, 어떻게든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엉망이 된 머리와 낙심으로 상채기 입은 마음을 달래서 뭐가 뭔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무엇을 먼저 정해야 하나? 이대로 밀어붙여야 하나? 밤도 늦었으니 숙소를 정한 후 천천히 생각해야 하나? 애걸하면서 가격을 깎아봐? 괜히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조용히 인사하고 돌아서 나가? 사무실 안쪽으로 몇몇 사람들이 TV앞에 모여 있다. 뉴스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

 

“올해 몬순이 몇 십년 만에 처음~~! 곳곳에서 산사태로~~!”

 

한 외국인 여행자가 들어와 상황설명을 듣고는 표를 돈으로 바꾼 후 나가버리고, TV도 꺼지고, 사무실 안은 정적만 감돌고 있다. 덩치 큰 서양남자가 들어오고 뒤따라 인도인 꼬마아이들 둘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그 남자의 짐꾼들인가보다. 멍하니 바라본다.

 

한쪽 구석에 족히 20여개의 여행 가방이 산처럼 쌓여 있다. 꼭 병풍 같이 길고 커다란 것들도 있다. 한 녀석이 짐을 번쩍 들어올린다. 아이의 몸을 가리고도 남을 짐덩어리가 어깨를 누르자 순간 비틀거리지만 다시 균형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허리를 깊숙이 숙인 녀석의 등에 두 개의 가방이 올라가고 오른손에 작은 가방이 하나 더 들리자 문 밖으로 나간다.

 

나머지 한 녀석은 서투르고 짐도 하나 간신히 짊어진 채 흐느적거리며 뒤를 따랐다. 드러나 있는 비척 말라 가는 두 다리가 안쓰럽다. 버스 운행이 취소되면서 다시 숙소로 운반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 녀석이 대여섯 번은 실어 날랐다. 일당이 전달되나보다. 두 녀석이 받은 돈은 총 80루피(2400원)!

 

‘무겁구나…. 일 루피의 무게가, 저리도 무거웠구나.’

 

그래, 한번에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만 포기하면. 택시비란 여행비용을 싹싹 긁어모으면 될 터이지만. 하지만 그렇게 해서 꼭 이 빗속을 뚫고 가야 하는 이유가 내게 뭐였을까? 다시 창 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에서도 비는 여전히 사납게 퍼붓고 있었다. 빗소리는 밤이 오면 더욱 선명히 들리는 법이다. 보이는 빗줄기와 들려오는 빗소리 모두 시퍼렇게 기세가 등등하다. 넌 쉽게 빠져나갈 수 없어. 한 번 걸려 넘어져봐. 그래봐야 지구촌 어딘가에  발 붙이고 있는 건데, 뭐가 걱정이야.

 

‘에잇! 그래… 걸려 넘어져 주마! 길이 뚫릴 때까지…. ’

 

“저… 아무래도, 전… 기다려야 할 거 같네요.”

“저기,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려 볼래요?”

“네???”

 

그때까지 스포츠 모자 깊이 눌러쓰고 사무실 카운터 안 한 쪽 의자에 앉아서 관객 모양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 젊은 친구가 불쑥 일어나더니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대답할 사이도 주지 않고, 뭔가 자기네들끼리 의논을 한다. 잠시 후 그가 쓰윽 사무실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전화를 걸고 또 의논을 하고. 나갔던 젊은 친구가 돌아오고, 그 젊은이와 나이든 사람 두 사람이 다시 나가고, 그리곤 나이든 사람만 돌아왔다. 뭐야.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당사자인 나는 쏙 뻬고 지네들끼리. 뭐 하자는 거야?

 

“오늘 밤 택시로 찬디가르로 갑니다.”

“네? 뭐라고요?”

“1000루피면 어때요? 이 델리행 버스표값이 800루피니까 200루피만 더 내시면 돼요.”

“어떻게? 그렇게? 된 거죠?”

“아까 그 젊은 친구는 제 동생 라나Rana입니다. 프로 카레이서인데요. 10월 초에 델리에서 경기가 있어서 며칠 후에 델리에 가려던 참이었어요. 일정을 땡겨서 오늘 가겠답니다.”

“그게 그렇게 된 거로군요. 하지만….”

“Rana는 좋은 녀석입니다. 저도 외국여행자들 특히 동양여성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을 따라 나서야 하는 심정 이해합니다. 지금 Rana는 택시를 모는 친구를 데리러 갔어요. 준비하시죠. 오늘 밤 출발하실 수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만! 사실 어리둥절합니다. 호의는 고맙습니다만….”

“네. 시간을 가지시고 마음을 정하시지요. 괜찮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리 그래도 택시비를 그렇게까지 깎아주다니, 그리고 동행이라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는…. 또 다시 두려웠다. 고맙고도 두려웠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싫었지만, 지금까지 내 삶의 메카니즘은 이럴 때마다 두려움을 가르쳐왔다. 두려움을 인정하면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미하지만 거부할 수없는 목소리, ‘여자가 겁 대가리가 없네. 이럴 땐 무조건 거절하는 게 상책이야. 만의 하나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나중에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거야. 남아있는 두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그러나,  ‘눈물나게 고맙군. 그런 걱정까지 해주니. 그러고 보니, 늘 그랬지. 새로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움츠려들고 긴장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때도. 아!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몰라. 이 갑갑한 곤궁한 삶의 자세가 싫어서, 길들여진 나를 바꿔보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이 제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다. 이를 깡 물고, 궁여지책이란 심정으로 주어진 기회를 덥썩 물어볼까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용기일 것인데, 진정한 용기란 도대체 뭘까? 두려움없이 선택하는 것일 터인데….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두 형제가 보여준 말과 행동에만 집중했다. 이 순간에만 마음을 두고자했다. 눈을 감아버렸다.

 

이들이 보여준 건 다름 아닌 배려와 동정이었다. 그래, 이 느낌에 충실히 따르는 것, 이것이 나의 새로운 여행수칙이지 않았던가? 그걸 실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런 내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를 깡 물지 않아도 되었다. 용기란 분명한 자기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희망 아닌 용기-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대한 에피소드27 에릭호퍼자서전에서’

 

“저, Rana씨와 함께 가겠어요. 이런 선택의 기회를 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

 

내 자신에게 힘을 주듯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밖으로 나와 몇 가지 음식과 물을 구입하고 돌아오니, 이미 Suresh Rana는 여행용 가방과 함께  돌아와 있었다.

 

“감사합니다. 덫에 걸린 셈 치려 했었는데요, 이렇게 도와주시니.”

“내일 모레 어차피 가려고 하던 참이었으니 별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가 오는데로 출발하도록 하지요. 친구 녀석이 모는 영업용택시입니다. 일단 그 택시로 찬디가르까지 가구요, 그 후에 델리행 차편을 살펴봐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럼요. 지금 마음 같아서는 찬디가르까지만이라도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곳에서 길이 뚫리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니까요.”

 

다시 길은 중단 없이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빗줄기가 아직 꺼지지 않은 레온사인에 반사되어 꿈틀거린다.

 

23:00

 

라나의 친구와 나를 태운 택시는 매끄럽게 출발하는가 싶더니 그것도 잠시, 카레이서 라나의 운전솜씨는 절묘하다고 해야 하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질주하는 속도가 왜 이래? 아무리 신호등은 고사하고 사람이 없기로서니 이리 난폭해도 되는 걸까?

 

곤두선 머리카락 끝까지 혈류가 역류한다. 힐끗 Rana를 보니 물같이 고요하고 물끄레한 표정에 동요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운전대를 가지고 놀고 있다. 차와 운전자가 밀착해서 움직일 때마다 나는 추풍낙엽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요란하고 심란하다. 라나는 이런 걸 왜 즐길까?

 

“저기요! 잠깐만요! 우리… 뭐 뭐 좀 먹고 가지 않을래요? 어디서 좀 세워주세요! 네?”

 

8월 14일 화

 

00:00 시계바늘은 다시 제로에서 시작이다. 우리들은 길가의 한 식당에 들어섰다.

 

"인도 내쇼날리그 경기에 참가합니다. 마날리, 레, 스리나가르 쪽이 제가 좋아하는 코스인데요, 한 달 이상 길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계속 달릴 때면, 세상의 끝 언저리와 또 다른 세계의 경계를 달리는 듯한 어떤 희열이 느껴지죠. 그럴 땐 이 직업을 선택할 걸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있잖아요. 철저히 카레이싱은 자기와의 싸움이죠. 출발신호가 떨어지면 차들은 아우성치듯 살벌하게 달려 나가죠. 그러다가 시야에서 경쟁 상대들이 모두 사라져서 몇 시간이고 혼자 달려야 할 때는 정말 고독해져요. 그 고독에 눈을 뜰 때쯤이면, 다른 레이서들이 먼지 뒤집어쓰고 씨익 웃으며 나타나요. 그쯤 되면 경쟁자라기보단 동료애 같은 묘한 느낌을 받게 되죠.

 

히말라야요? 물론이죠. 히말라야를 열 번은 더 넘게 넘었나 봐요. 한 번도 쉽다고 느낀 적이 없어요. 언젠간 중간에 엔진이 고장 나서 며칠을 사막 같은 벌판에서 벌벌 떤 적도 있었어요. 밤에는 온도가 내려가면서 어찌나 춥던지 와들와들 떨었죠. 정말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어요. 겁나더라구요. 그때 하늘의 별들이 눈앞에 반짝이는데, 눈물이 다 나더군요. 하지만, 다시 해가 떠오르듯 새롭게 나를 부추겨 일으켜 세우고 결국 엔진을 고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었죠. 첫 시동이 걸릴 때 그 소리란. 정말 대단한 느낌이었답니다. 중요한 어떤 지점을 넘어갔다온 듯했어요. 카레이싱은 기계인 자동차와 인간인 나 자신과 자연환경과의 교감으로 전진하는 항해라고나 할까요. 뭘요. 하하하. 이런 비유쯤은 누구나 느끼는 걸 거예요.

 

가족이요? 늘 위험을 안고 산다고 걱정하죠. 아내와 함께 할 시간도 부족하구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생기면 제 생활도 좀 달라지겠지요. 수입이요? 협찬사과 대회출전해서 받는 상금이 저의 고정 수입입니다. 뭐 넉넉하다고 할 순 없어도, 궁핍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네, 그렇죠. 협찬을 해주는 대신에, 회사를 상징하는 로고와 제 이름이 나란이 새겨진 이 모자를 어디서나 항상 쓰고 다녀야 하죠. 집에 들어가 있는 동안을 제외하면 늘 마누라같이 끼고 살죠. 하하하…. 스타 티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어요? 그럼, 10월 6일 시합이 스타티비로 중계된데요. 하하하! 네,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시고요.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응원의 글도 남겨주시면 반갑죠. 왜 도와줄 생각을 하게 됐냐고요? 글쎄요.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뭐 굳이 말하자면, 도와주고 싶었다는 것이 그나마의 이유겠죠, 뭐. 하하….

 

왜 속도감을 즐기느냐…. 엄밀히 말해서, 속도감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제 신체의 어느 한계에 도달하고 싶은 느낌을 즐기는 거랄까요? 이번 기회에 이왕이면 한 번 즐겨보시죠? 자, 나가실까요?”

 

미치겠다. 몸이 차창 밖으로 튕겨 나동그라질 것만 같다. 라나의 친구가 내게 충고를 한다.

 

“긴장을 푸시고요, 리듬이 있습니다. 그냥 고공행진 하듯 빨리만 달리는 것이 아니거든요. 잘 느껴보세요. 호흡이 있습니다.”

“글쎄요. 잘 모르게…ㅆ….”

 

이 때 멀리 앞 차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에 언뜻 살아 있는 물체가 빗속에서 어른거리고 번뜩이는 안광!

 

“애그머니나! 저기 저…!”

 

제법 큰 물체일 것 같았다. 차는 벌써 안광이 노려보는 지점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라나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느닷없이 헤트라이트를 끄면서, 안광의 방향으로 살아 있는 물체가 움직여갈 방향을 짐작했는지, 한쪽 길가로 급히 핸들을 꺾었다. 급정거로 차체가 심하게 덜커덩 흔들리고, 다음 순간 쾅! 뭔가에 부딪히고 나서야 차는 완전히 멈췄다.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손전등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살아 있는 물체는 어디론가 빠져나갔는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양철통이 쓰러져 있고, 차는 말짱했다. 

 

“휴유…그런데, 헤트라이트를 끈 건 왜죠?”

“불빛이 오히려 동물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주거든요.”

“저희 나라에서도 로드킬이라고 해서, 많은 동물들이 치여 죽고 있어요. 이곳도 그런가요?”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요. 이런 산길 좁은 차로에선.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동물들이 냄새를 잃고 길을 헤매는 수가 있죠. ”

“그렇군요. 동물들도 이젠 인간이 도와줘야 살아갈 수 있는 어찌 보면 약자인 거 같아요.”

“네, 저도 여행을 좋아합니다만, 여행 중 제일 힘든 건 제 자신 때문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죠. 이런 모습 보려고 여행했나 싶기도 하고, 또 그래서 다시 살아가는 자세를 다듬기도 하죠. 그러면서, 뭐랄까? 삶에 대해 유연해지는 거 같아요.”

“맞아요. 왜 개들도 그래요. 집에서 가두고 묶어서 기른 녀석들은 외부인이 조금만 다가와도 사납게 으르렁대잖아요. 바깥 세상과 접촉하는 경험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 영역에 대한 집착 때문이기도 한 거 같아요. 차라리 놓아서 기른 녀석들은 누구에게나 꼬리를 살살 치며 잘 어울리면서 놀잖아요. 하하하…. 많이 부딪힐수록 유연해지는 거겠죠.”

“하하하….”

 

우리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밤하늘로 멀리 멀리 퍼져가고 있었다.

 


태그:#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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