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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80만원 받으면서 하루 종일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일하던 우리 조합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우리를 도와주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당을 둘러싼 많은 어려움들을 바라보면서 저희 조합원들 또 한번 절망하고 또 한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이랜드 일반노동조합 홍윤경 사무국장)

 

"우리 삶을 인간답고 진보하는 방향으로 민주노동당이 올바른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코스콤 비정규직도… 굽히지 않고, 꼭 승리의 그날까지, 조직을 살리면서 투쟁하겠습니다."(코스콤 비정규지부 정인열 부지부장)

 

3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 6층에서 민주노동당의 임시 당대회가 열렸다. 임시 당대회는 이랜드 일반노조의 홍윤경 사무국장과 코스콤 비정규지부 정인열 부지부장의 '투쟁 사업장 보고'로 시작되었다.

 

이날 이곳에 모인 민주노동당 대의원은 모두 864명으로 대의원이 아닌 평당원과 참관인까지 합한다면 그 수가 어림잡아 1500명을 넘었다. 홍윤경 사무국장은 "여기 모인 동지분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재정사업 상품을) 한 가지 이상씩 사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며 당원들이 재정사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

 

당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당대회장 입구 밖에서는 이랜드 일반노조, 코스콤 비정규직, 이주노조,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 및 생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상품을 팔고 있었다. 

 

이때 '최기영, 이정훈동지의 제명을 반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던 민노당 학생위원회의 무리 속에서 양복을 잘 차려입은 한 학생당원이 나와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러분, 우리가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오늘 여기 물건들 다 삽시다."

 

이주노조-비정규직, 생계위해 상품판매

 

"이랜드 투쟁기금을 위해 떡국떡 판매하고 있습니다. 떡국떡 2.5킬로 만원입니다. 떡국떡 사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이랜드 일반노조에서 떡국떡 만원에 팔고 있습니다. 이랜드 꼭 이길 수 있게 많이 도와주세요. 저희 코스콤도 싸우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맛도 보시고 구경도 하고 가세요. 저희 기륭전자 4년째 투쟁중입니다."

"비누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이주노조에서는 3개의 비누가 들어있는 비누세트를 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많이 파셨냐는 물음에 김태식(41)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한 20개 팔았나? 가끔 내가 아는 사람들 보이면 강제로 끌고 와서 사달라고 해요. 여유 있으면 한 3개정도 사달라고 하지요."

 

그러고는 지나가던 동료를 붙들고 비누판매를 시작한다. 동료가 허허 웃으며 그냥 지나가자 그가 말한다.

"야, 웃을 일이 아니야. 우리 지금 심각해."

 

이랜드 일반노조에서는 떡국떡과 모자를 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마침 귀를 감싸는 모자가 필요했던지라 모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이 색깔 한번 써봐요."

"잘 어울리네. 이것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걸로 써볼래요?"

"이 총각, 청색이 아주 잘 어울리네."

 

이랜드 노조의 아주머니들은 거울을 비쳐주시며 이것 저것 골라 주셨다. "평범한 것보다 좀 튀어 보이는 줄무늬 모자를 쓰면 좋겠다"는 말에 나는 얼른 줄무늬 모자를 집어 계산했다. 오늘 하루종일 서 계셔서 다리 안 아프시냐는 질문에 한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하도 서 있는 게 버릇이 돼서 이젠 안 힘들어요."

 

저조한 판매량... "안타깝다. 비정규직이 핵심인데" 

 

저녁 8시, 민노당에서 제공해주는 물과 김밥 한줄로 식사를 끝마친 뒤, 이분들을 다시 찾아가 많이 파셨냐고 물었다.

 

이주노조 매대에서 비누세트를 판매하고 있던 김태식씨는 지금까지 47개의 비누세트를 팔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세요. 1000명이 넘게 모여가지고 47개 팔았다? 물론 우리가 선전을 제대로 못한 점도 있고 판매 물품이 비누라

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해요."

 

기륭전자분회는 산머루주, 황태채, 양말, 젓갈 등을 팔고 있었다. 당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일부러 얼마 안가지고 왔다는 젓갈은 가격이 2만원에서 3만원정도 하는데도 다행히 다 팔렸다.

 

2만7000원 하는 황태채는 서너 개 정도 팔렸다. 기륭전자분회 재정사업 물품주문서에는 모두 35명 정도가 상품을 구입한 것으로 적혀있었다.

 

"재정사업들을 워낙 많이 하고, 팔리는 물품 중에 겹치는 것도 있고해서 잘 안 팔린 것 같아요. 또 민노당 당원들도 돈이 없잖아? 당 분위기가 좋지 않기도 하고…."

 

민노당이 제2의 창당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기륭전자 분회의 윤종희씨는 "비정규직이 핵심인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지금까지 그나마 우리를 도와주고 지지해준 분들이 민노당"이라고 했다.

 

이랜드 일반노조의 홍윤경 사무국장은 "오늘 하루 떡국떡 50봉지, 모자도 한 50개 정도 팔았다"며 특히 "떡국떡은 더 팔 수 있었는데 사정상 50개만 팔았다"고 했다. 당대회에 사람이 천 명 이상 왔는데 이 정도밖에 못 팔았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그렇네요"라며 조용히 웃는다.

 

이어 그는 민주노동당 임시 당대회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내 싸움보다 현장에서 싸워 승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전력투구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의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저녁 8시 50분이 되자 이랜드 일반노조의 매대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10시경, 이주노조의 매대도 철수했다. 11시경에는 기륭전자의 매대도 황태채만 제외하고는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다.

 

이랜드 일반노조는 투쟁을 시작한지 220일이 넘었다. 기륭전자분회도 투쟁한지 햇수로만 4년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재정사업을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는 많이 팔지는 못했다.

 

분당이냐 혁신이냐의 기로에 선 민주노동당이었기에, 이주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대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당대회에서 비대위의 혁신안이 수정되고 제명안이 부결되었다. 안타깝게도 이제 민노당의 분당이 확실화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희망이라던 민주노동당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정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다. 오늘 재정사업 판매량의 부진은 시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재덕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민주노동당, #당대회, #이주노조, #재정사업,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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