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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차기 정권의 영어교육강화방안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영어몰입교육방안을 내놓아 한때 거센 역풍을 맞더니, 29일 발표한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도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31일 연합뉴스 보도에 의하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31일 "영어 공교육 문제를 정치 쟁점화 하는 것은 반대다. 국가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이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인수위가 영어교육에 대한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며 독려했다고 한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에 대한 일각의 반발을 염두에 둔 듯 농담조로 "영어 안 하겠다는 사람들 (영어) 배우기만 해 봐라"며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그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국제화 시대에 영어교육강화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정책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게 아쉽지만 차기 정권의 영어교육강화방안의 방향은 옳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명박 차기 정권이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를 내놓는 과정이 너무나도 주먹구구식이고 아마추어적이라는 점이다. 특히 교육 주체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사전 준비도 소홀한 상태에서 너무 지나치게 밀고 나가는 데 대해 국민들은 어처구니  없어 하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방안'은 ▲ 2013년까지 모두 1조7천억 원을 들여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전용교사' 2만3000명을 신규채용하고 ▲ 2011년에는 초등학교 3~6학년이 모든 영어수업을 영어로 실시하고 ▲ 2012년에는 중·고교의 모든 회화 중심 수업을 영어로 실시하고 ▲ 2013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4개 평가영역 중 듣기·읽기 영역만 평가하고 ▲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시험을 치르는 2015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듣기·읽기·쓰기·말하기 등 4개 영역을 모두 평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영어교육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15년 대학입시부터 쓰기와 말하기까지 평가하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미국 중·고교의 영어교육 상황을 미국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문희 씨에게 들어봤다.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언어학 석사인 김문희씨는 1998년 미국 공립 캘리포니아 주 교사 임용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홀리내임 컬리지 대학원에서 교사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글랜부룩 중학교과 마운틴 디아블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마운틴 디아블로 교육청의 글쓰기 교사 양성 프로그램 지원 교사와 교안 작성 개발원으로 임명되는 등 영어 쓰기 교육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김문희 씨에게 쓰기와 읽기, 교사 재교육 등으로 나누어 미국 영어 교육 현황을 들어본다. 다음은 영어 쓰기 교육에 대한 일문일답.

 

- 미국 중·고등학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글쓰기 교육을 하는가.

"미국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글쓰기 지도를 한다. 능률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 어떻게 체계적으로 지도하나.

"글을 무조건 쓰라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1번 문장은 어떻게 시작해야 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대부분 첫 번째 문장은 짧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문장을 쓰도록 안내한다. 나도 예전에는 무조건 글을 썼는데 미국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운 뒤 큰 도움을 받았다. 내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은 미국 교육 덕이다."

 

- 글쓰기 프로그램은 누가 만드나.

"교육청이 교안개발 교사 팀을 구성하여 이 같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리고 글쓰기 교사 연수회에서 모의 수업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수를 받은 교사들은 자기 학급에서 아이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적용하여 지도한다."

 

- 글쓰기 지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학생들의 눈높이에 따라서 다섯 문단 쓰기 훈련을 하는 게 있다. 이것은 공교육 12학년까지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대한 학년별 성취 수준이 교과 과정에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다.

 

글쓰기 지도에는 나름대로 교과과정이 있다. '콩쥐팥쥐전'이 있으면 콩쥐와 팥쥐를 비교하게 하고, 좀 더 크면 비슷한 이야기인 '장화홍련전'을 읽게 한다. 나중에는 '신데렐라'와 '장화홍련전'을 비교하게 한다. '신데렐라'는 모든 나라에 다 있다."

 

-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도 이런 방식을 따라올 수 있나.

"영어 실력이 떨어져 혼자 못하는 학생들은 그룹으로 하라고 준다. 그러면서 서로 돕고 사는 사회형 실습을 경험하게 한다."

 

- 미국 중·고교에서 지도하는 글쓰기의 종류에는 어떤 게 있나.

"정말로 다양하다. 미국에는 프로젝트 라이팅(Project Writing)이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는 글쓰기를 기껏 가르쳐야 논술이겠지만 미국에서는 논쟁적인 글(Argumentative Essay)로부터 광고문, 감상문, 기사문, 그리고 매뉴얼과 같은 실용문 작성법까지 가르친다. 심지어는 구입한 물건에 대해 소비자 입장에서 비평하는 글쓰기까지 가르친다. 학생들의 지식 수준에 따라 기술문, 설명문, 논술문 등 학년 별로 알맞은 글쓰기를 지도한다고 보면 된다."

 

-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와 차별화된 글쓰기를 지도할 것 같은데.

"중학교 글쓰기 과정은 상대적으로 쉽다. 고등학생이 되어야만 비판적 글쓰기를 한다. 제시문을 읽고 비판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일 주일에 한 타임 정도 글쓰기 수업에 할애하는데 학교마다 약간 다르다. 한 학기에 몰아서 하는 학교도 있다. 고등학교 역사 과목의 과제 중 '조지 워싱턴의 전쟁과 조지 부시의 전쟁을 비교 분석하라'와 같은 식의 문제를 본 적이 있다."

 

- 미국에선 일상생활에서 글쓰기가 무척 유용하게 쓰인다고 하던데.

"미국에서는 모든 일이 글쓰기를 해야 진행된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미국인에게는 글쓰기가 일상의 작업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 글쓰기 수업 시간은 보통 몇 분 정도인가.

"미국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수업은 대개 90분 정도 진행한다. 50분씩 수업하면 효과가 떨어진다고 하여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시간을 너무 쪼갠 수업은 효율성이 낮다. 하루는 읽기, 하루는 글쓰기와 같은 방식으로 날마다 진행한다. 미국 공립학교는 'block'이라고 해서 90분씩 하루에 4과목을 수업한다. 고등학생 나이가 되면 한 번에 90분 정도 집중해서 수업을 받게 함으로써 학업 성취도를 높인다."

 

- 글쓰기 교과서가 따로 있나.

"작문 책이 별도로 없지만 글쓰기 프로그램은 따로 있다. 각 학교의 대표 교사(2~4명)는 교육청 글쓰기 연수회에서 이 프로그램을 배워온 뒤 동료 교사들에게 시범 수업을 한다."

 

- 한국에서는 글쓰기 숙제를 해도 첨삭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미국에서는 빨간색 펜으로 첨삭해 준다. 학생들의 생각을 점검해 주고, 논리적으로 틀린 것을 바로 잡아준다. 문법적인 오류와 접속사 연결 오류도 자세하게 점검한다. 최종적으로 전체적인 작품 평을 한다."

 

- 과제물을 받은 뒤에 교사가 첨삭하여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 작문 교과가 아닌 일반 교과에서도 글을 쓰는가.

"당연히 글을 쓰게 한다. 요약문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문학 작품에 대한 요약을 하고 그 작품에 대해 학생들의 감상을 써 오게 한다. 또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작가와는 다른 결말을 지어 오도록 한다. 역사 과목의 경우에도 '네가 아브라햄 링컨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 등에 관해서 써 오라는 과제를 준다. 수동적인 지식 탐구가 아닌, 역동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 글쓰기를 지도할 때 특별히 강조하는 사항이 있다면.

"주장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충분히 확보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미국에서 글쓰기는 어렸을 때부터 생활 속에서 날마다 해야 하는 과제다. 토론할 때에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요구한다. 그 증거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글쓰기가 활용된다.

 

어떤 초등학교는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뭐냐. 그럼 그게 왜 소중하냐. 그 이유를 써 보라'는 식으로 주장에 대한 근거를 쓰게 한다. 이것이 정말로 소중한 공부다. 충분한 증거를 마련하여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아울러 논리적으로 잘 쓴 학생의 글을 본보기로 읽는 방법으로도 글쓰기 훈련을 한다."

 

- 미국에는 외국에서 온 학생들도 많을 텐데.

"미국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사회다. 남미에서 온 학생이 다수인 학급도 많다. 그래서 학교는 백인 학생들과 소수민족 학생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훈련하는 장소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것이 아름답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을 동원한다."

 

- 그 예를 들어 볼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무조건 쓰라는 식이 아니라 우선 '박쥐와 새의 삶'을 제재로 하는 책을 읽힌다. 책 내용을 예로 들어 보자.

 

'박쥐가 잘못해서 새 둥지에 떨어졌다. 그 박쥐는 자기가 새인 줄 알고 성장한다. 새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날 박쥐엄마를 만나 자기가 박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거꾸로 매달리지 못하던 박쥐가 거꾸로 매달리고 밤에도 돌아다닌다. 그런데 깜깜한 밤에 형제 새들이 위기에 처하자 도움을 준다.'

 

이처럼, 새의 둥지에 박쥐를 품고 사는 '새 가족'과 박쥐라는 자신의 본성을 찾은 뒤에도 새를 아끼는 '박쥐'의 이야기는 다양성 교육에 도움이 된다. 다문화 사회에서 서로의 가치관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말이다."

 

- '박쥐와 새의 삶'과 같은 소설을 읽은 다음에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이 같은 소설을 읽은 뒤 토론을 한다. 그 다음 한국 생활과 미국 생활을 비교 대조하라는 식으로 글쓰기 과제를 준다. 책을 읽고, 글 쓰게 하는 것이다. 이 글쓰기는 비교 대조하는  형식의 글쓰기다. 이를테면 미국학교와 한국학교를 비교하고, 너의 생활을 비교하여 글을 써 오라는 과제를 주는 것이다.

 

그 다음엔, 학생들이 주제에 대해 완전히 이해했는지 확인한 뒤, 구체적으로 글의 논리적 전개를 위해서는 어떤 접속사(비교 대조)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지도한다. 또한 문장 표현력이 좋아지도록 어떤 형용사와 부사를 써야 하는지 알려준다. 기승전결에 각각 어떠한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박쥐이야기를 예로 들어 보여준다."

 

- 우리나라에서는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아이들은 힘들어 한다

"솔직하지 못한 정서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아버지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아버지의 훌륭한 점만 쓴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그러나 미국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는 불량 청소년이었다'는 식으로 글머리를 쓰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엄마 같은 좋은 여자 만나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나도 낳았다. 그러니까 불량 청소년들이여! 희망을 가져라!'와 같은 방식이다. 정말로 솔직하고 예쁘게 쓴다."

 


태그:#영어몰입교육, #글쓰기, #논술, #영어교육, #미국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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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글쓰기 전문가. 스포츠조선에서 체육부 기자 역임.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등에 글을 씀. 경희대, 경인교대, 한성대, 서울시립대, 인덕대 등서 강의.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 받은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 연구'가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게재.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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