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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전 코믹사극 <쾌도 홍길동>
 퓨전 코믹사극 <쾌도 홍길동>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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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캐디의 보조를 받으며 골프를 치는 황당 상황(29일 제9회 방영분)이 계속 연출되는 <쾌도 홍길동>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는 재미를 떠나 홍길동의 원래 이미지를 상당부분 파괴한 드라마’라는 생각을 한 번쯤 했을 것이다.

여기서 엄밀히 따져볼 부분이 있다. 그 ‘홍길동의 원래 이미지’란 대체 어떤 걸까? 허균(1569∼1618년)이 지어낸 <홍길동전>의 이미지를 ‘홍길동의 원래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허균의 <홍길동전>에 친숙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허균의 <홍길동전> 역시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 역시 결국엔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 홍길동이 체포된 시점은 1500년이고 허균이 생존한 시기는 1569~1618년이다. 그리고 허균은 역사서로서의 <홍길동전>이 아니라 소설로서의 <홍길동전>을 썼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홍길동의 이미지는 1500년(연산군 재위기)에 체포된 ‘실제의 홍길동’이 아니라, 선조·광해군 때에 허균이 상상한 ‘가상의 홍길동’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의 홍길동'과 '가상의 홍길동'은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허균이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무절제하게 행사했다는 점이다. 더욱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실제 홍길동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파괴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역사가는 ‘전적으로’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데 비해, 역사 작가는 ‘기본적으로만’ 사실에 근거하면 된다. 역사 작가는 기본적 사실관계와 주인공의 이미지만큼은 살려둔다는 전제 하에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중은 그것을 실제 역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균의 경우에는 과연 그가 그렇게 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주요 사실관계와 홍길동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럼, 허균이 잘못 전달한 주요 사실관계와 홍길동의 이미지란 어떤 것일까? 사료 상으로 발견되는 홍길동은 ‘관복을 입고 첨지(정3품)로 불렸으며, 백성들은 물론 일부 조정 관료 및 향촌세력들의 지지 하에 조선왕조를 공격하다가 연산군 때에 체포된 반체제세력의 지도자’이다.

‘관복을 입고 첨지로 불렸는데 어떻게 반체제세력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체제를 꿈꾸는 혁명조직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존의 관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일반 대중에게는 관복을 입은 관료가 사회의 지도자였으므로 그런 기존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자기 집단에 대한 대중의 충성심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홍길동 집단 브레인의 기획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실제의 홍길동은 엄연히 반체제세력의 지도자였지만,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타난 홍길동의 이미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허균이 상상해낸 홍길동의 이미지는 고작 ‘의적’에 불과할 뿐이었다.

허균이 상상한 홍길동은 의적일 뿐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표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의 표지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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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홍길동을 체포한 조정은 그의 ‘소원’대로 병조판서라는 직책을 제수했다. 그처럼 조선에서 ‘소원’을 푼 홍길동은 나중에 율도국이라는 섬나라에 가서 그곳의 왕이 된다. 허균의 상상은 그러했다.

여기서 허균이 홍길동을 의적으로 처리하고 그의 소원이 병조판서였다는 인상을 남긴 것은, 실제인물 홍길동의 반체제성 혹은 혁명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의 홍길동은 조선왕조의 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관직을 받고 회유되었다면, 그것이 반드시 기록으로 남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록에 그가 체포된 기록만 나오고 회유된 기록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가 체포 이후에 그대로 처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관계와 배치되는 허균의 ‘무절제한 상상’으로 인해 후세 사람들이 홍길동을 혁명적 반체제활동가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의로운 의적 정도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홍길동을 두 번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병조판서를 지낸 홍길동이 율도국에 가서 왕이 되었다는 허균의 처리기법은 다소 엉뚱하다는 인상을 준다. 의적으로서 활동하다가 병조판서 직을 수락한 인물이라면, 그런 사람의 관념은 기본적으로 조선왕조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끝부분에 가서 홍길동이 조선의 왕도 아닌 율도국의 왕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전혀 엉뚱한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허균이 자기 나름대로는 <홍길동전>의 결말을 멋있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혹은 허균 자신의 소망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실제의 홍길동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려 했다’는 일반 대중의 인식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른다.

홍길동의 반체제성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그를 다룬 소설에서는 반드시 그가 왕이 되고자 한 대목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허균도 그런 일반적 인식을 알고 있었기에, 끝부분에 가서라도 홍길동의 등극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홍길동이 율도국 왕이 된 까닭은?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허균이 홍길동의 등극으로 결말을 맺으면서도 끝내 조선의 왕이 되는 것으로써 결말을 맺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율도국이 지금의 오키나와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정확히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알기 힘든 율도국이라는 국명을 끌어다가 홍길동이 그곳의 왕이 되었다고 처리해버린 것이다.

홍길동이 한반도의 왕이 아닌 엉뚱한 율도국의 왕이 되었다는 허균의 상상은 조선왕조를 부정한 홍길동의 혁명정신을 훼손하는 것인 동시에, 작가 자신이 혹시라도 그 소설로 인해 모종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고 염려한 탓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허균의 인식범위가 유교적 봉건국가인 조선왕조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위와 같이 조선왕조에 회유되기보다는 끝까지 싸우다가 붙들린 홍길동. 조선왕조를 긍정하기보다는 그것의 전복을 시도한 반체제 혁명가인 홍길동. 그런 홍길동을 한낱 의적 정도로 묘사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홍길동이 조선왕조의 병조판서직을 수락하고 나중에는 엉뚱하게도 율도국의 왕이 되었다고 처리한 것은 허균의 과도한 상상의 결과물이었다. 허균은 홍길동을 찬미한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두 번 죽이고 만 것이다.

홍길동의 꿈을 짓밟은 허균의 전철을 밟지 않고 그의 혁명정신을 잘 표현하는 드라마. 평민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목숨 걸고 싸우다가 붙들린 홍길동을 그리는 드라마. 홍길동의 반체제성에 열광한 당시 조선민중들의 뜨거운 열망을 담아내는 드라마. <쾌도 홍길동>이 그런 드라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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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