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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만

새들도 쉬어 간다는 문경새재를 찾았다. 물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돌 틈 사이를 비집고 서로 부딪히며 흐르는 물소리는 고요한 산속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산길을 동행하듯 쉼 없이 따라온다.

   

졸졸졸, 잘잘잘,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그 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표현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 답답하고 갑갑할 뿐이다. 한참을 그렇게 걸으며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조용, 조용히 흐르는 그 물소리를 흉내낼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엔 커다란 바위들이 눈사람인양 편안히 앉아 있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돌 틈 사이를 엎드려 그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산길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이 바위 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돌 틈 사이에 피어난 얼음꽃이었다. 각양각색의 형상으로 계곡에 쏟아지는 맑은 햇빛을 받으며 그들은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 얼음꽃에 반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곡에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어느새 물소리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 계곡속을 이리 저리 헤집고 돌아다녔다. 조개 모양을 한 얼음꽃도 있고, 발자국 모양을 한 것도 있다. 그 모양이 너무 많고 다양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감탄이 절로 난다. 오로지 빛과 물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에 또 어떤 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맑은 햇살에 보석처럼 빛나는 깨끗한 물빛은 세상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걸작이란 생각이 든다. 천년동안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긴  돌 웅덩이,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얼음밑으로 몰래 흘러 내려온 계곡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그 맑은 물은 바위틈을 돌고 돌아 그 안에 피어 있는 얼음꽃을  말끔히 씻기우고 거침없이 또 내려간다. 맑은 물로 깨끗이 단장한 얼음꽃은 전보다 더 반짝이는 모습으로 그림같이 다가온다. 그 모습은 너무 신비하여 보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형상을 달리하며 보석처럼 빛난다.

 

특히 커다란 바위와 돌 틈이 있는 곳에는 무서운 동장군이 그들을 어김없이 그 안에 숨겨놓았다. 어찌 보면 그 작은 얼음기둥이 커다란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 같기도 하고, 돌맹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것 같다. 또 가파른 계곡을 급히 내려오다 매서운 동장군에 들켜 그대로 얼어버린 폭포 얼음꽃도 있어 계곡은 장관을 이룬다.

 

추운 겨울에 얼음지치기로 하루를 보냈던 시절, 배가 고프면 처마 밑에 달려 있는 고드름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적이 있다. 그 때는 고드름을 보고 예쁘고 신기하다 생각하기보다는 허기를 달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오늘 물소리를 따라 계곡에 들어와 앉아 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전에는 산에 들어서면 오로지 산 정상을 향해 가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 욕심을 비우고 귀를 열어 마음을 새롭게 하니 천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매서운 바람이 산등성이를 넘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바람은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그들의 가는 길을 또다시 멈추게 할 것이다.  그들은 잠시 머물지라도 게으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설사  동장군이  또 찾아와 가던길을 막더라도 다시 계곡의 얼음꽃으로 피어나 잠시 머물다 갈 것이다. 

 

수많은 돌들과 수없이 부딪히며 흘러온 강한 그들이기에 어느 곳에 머물더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지만 대양으로 향하는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이치를 하나하나 깨달으며 지혜롭고 여유롭게 계속 흘러갈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태그:#얼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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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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