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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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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조직개편 문제를 둘러싸고 현정부와 새 정부가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지게 되었다.

한나라당은 "퇴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대통령이 차기 정부가 할 일에 대해 시비를 걸며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가 생떼를 쓰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동안 노 대통령과의 충돌을 피하던 인수위도 "노 대통령 특유의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며 맹비난했다.

합의해봤자 거부당할텐데... 난처해진 대통합민주신당

인수위나 한나라당으로서도 부담이 커졌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이 정부와 국회를 오가는 시간을 감안하면,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조각을 완료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또한 노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어 국회에서 재의를 해야되는 상황을 대비하려면 대통합민주신당과의 완전한 합의를 이루어야 하게 되었다. 그래야 재의결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행 18부4처인 중앙 행정조직을 13부2처로 축소조정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한 가운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직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서고 있다.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현행 18부4처인 중앙 행정조직을 13부2처로 축소조정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한 가운데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직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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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혹스러운 것은 한나라당만이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 입장에서는 총선 걱정이 태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압박 카드에 따라 신당의 협상력은 높아질 수 있게 되었다. 한나라당이 국회에서의 합의처리 모양새를 갖추는 데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예비여당과 예비야당 사이의 절충이 이루어진다 해도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은 커보인다. 노 대통령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부분 수정이 아니라 기조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한 신당의 입장이 묘하다.

최재성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지적은 충분히 유의미하지만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국민이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거부권 행사라는 방법에 대한 반대의견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 대신 신당이 욕먹을 판

신당의 애매한 입장표명은 그들의 난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노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실제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이 아니라 대통합민주신당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조각이 완료되지 못하고 일부 부처 장관없이 새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상황을 가상해보자. '새 정부가 일할 수 있게 일단은 밀어주자'는 보편적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새 정부에 대한 발목잡기'로 인식되어 상당한 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 예상된다.

노 대통령이야 거부권 행사하고 물러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4월9일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신당이다. 노 대통령을 향한 여론의 비판을 결국 신당이 총선에서 뒤집어쓰게 되는 상황이 기다리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신당을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몰고갔던 반(反)노무현 정서가 4월 총선에서도 다시 신당을 수렁 속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신당을 난처하게 만들어버린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신당은 인수위가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의 큰 틀은 인정하더라도, 존치 여론이 많은 통일부 등의 부처를 부활시킴으로써 원안대로 통과되지 못하도록 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키려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통일부와 여성부의 존치나 부분적인 조정기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이 정부조직개편의 전반적인 기조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요구수준을 높여놓았기 때문에, 신당이 어렵게 일부 부처를 다시 살려놓는다 해도 생색조차 나지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인수위측과 노 대통령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부분 수정을 시도하는 신당이 설 자리가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인수위 조직개편안의 원안통과 저지를 내걸고 부분적인 수정의 성과를 노렸던 신당으로서는 난처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과 신당의 기구한 관계

 김형오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17일 여의도 국회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실에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대통합민주신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김효석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김형오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17일 여의도 국회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실에서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대통합민주신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김효석 원내대표를 만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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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과 신당의 기구한 관계는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다. 이번에도 신당은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지는 못하면서 말을 돌리고 돌려 거부권 행사를 만류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신당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반대하는 것이 '양심'이라고 믿는 노 대통령에게, 손학규 대표가 이끄는 신당의 입장같은 것은 대수롭지않은 문제일지 모른다.

지금 이대로 브레이크없이 가면 4월 총선은 지난 대선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의 그림자가 4월9일까지 드리워지면서 신당을 최악의 상황에 몰아넣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신당은 비명이라도 지르며 살기위한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 아닐까. "국민이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식의 지극히 조심스럽고 소심한 목소리로 신당이 독자적인 위치를 찾을 수가 있을까.

대선에 이어 4월 총선 마저도 '이명박 대 노무현'의 대결로 가버린다면 신당이 맞게될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 대통령의 그림자에 갇혀있는 대통합민주신당. 노 대통령의 탓인가, 아니면 노 대통령에게 끌려만 다니고 있는 그들 자신의 책임인가.


#정부조직개편#거부권#노무현#대통합민주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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