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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는 과녁을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향해 쏘는 것이다. 국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한다.
▲ '마음을 향해 쏴라' 활쏘기는 과녁을 향해 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향해 쏘는 것이다. 국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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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창경궁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자주 했다. 41세가 되던 해인 정조 16년(1792) 10월 30일 춘당대에서 10순(50발)을 쏘아 49발을 맞혔다는 기록이 있다. 이날 그는 붉은 칠을 한 과녁의 중심부인 '홍심'에 23발, 그 외의 부분인 '변'에 26발을 맞혔다.

같은 달 12일에 10순을 연속으로 쏴 과녁에 41발을 맞춘 것을 시작으로 17일 32발, 18일 41발, 20일 41발, 22일 46발, 26일 47발, 28일 41발, 29일 45발을 맞혔고 30일에 드디어 49발을 명중시킨 것이다. 불과 18일 만에 자신을 최고 궁사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다.

200년전 정조가 펼치고자 했던 꿈들은 언제 이땅에서 활짝 열릴 것인가.
▲ 동북공심돈에서 바라 본 연무대 200년전 정조가 펼치고자 했던 꿈들은 언제 이땅에서 활짝 열릴 것인가.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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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1월 21일부터는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10순에 49발을 맞혔다는 기록이 10번 넘게 나온다. 그렇지만 50발을 전부 모두 명중시켰다는 기록은 없다. 정조가 자만심에 빠져 마지막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일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조가 당긴 마지막 오십 번째 화살은 과녁을 벗어나 소나무에 꽂혔다. 신하들이 아쉬워 위로의 말을 전하자 정조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가득 차면 못 쓰는 것이다."

최고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절제하고 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 1발은 일부러 여백의 미로 남겨둔 것이다.

정조는 과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그는 <예기>(禮記)에 나오는 "활쏘기는 각각 자기의 과녁을 향해 쏘는 것"이라는 구절을 실천한 것이다.

"활을 쏘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려요!"

활을 당기는 팔은 동(動)이고, 땅을 버티고 선 두 다리는 정(靜)이다. 날아가는 화살은 동이고 멀리 우뚝 서 있는 과녁은 정이다. 활쏘기는 '정중동의 예술'이다.
▲ '움직임과 고요함이 오롯이 하나 된 경지' 활을 당기는 팔은 동(動)이고, 땅을 버티고 선 두 다리는 정(靜)이다. 날아가는 화살은 동이고 멀리 우뚝 서 있는 과녁은 정이다. 활쏘기는 '정중동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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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활쏘기를 통해 심신을 수양했던 정조 임금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원화성 연무대에서 몇 십 년째 자신의 마음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며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그 현장을 찾아보았다.

요즘 <이산>이나 <대왕 세종> 등 역사드라마에 활 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는 기자의 이야기에 답한 이는 화성운영재단 소속으로 일반인들의 국궁체험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안종철(43)씨. 그는 큰 덩치에 비해 친절하고 차근차근하게 국궁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조선시대 때 과녁은 3종류가 있었는데 각기 그림이 달랐어요. 임금이 활을 쏘던 과녁은 곰이 그려져 있었고, 왕족이나 신하들은 사슴, 일반 평민이나 무과시험 때는 멧돼지가 그려져 있었죠.”

'사극에서 활 쏘는 장면에 왜곡된 부분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최근에는 그런 일들이 없는 것 같지만 이전에는 국궁을 들고 양궁에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활 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며 "드라마 <이순신>에 그런 장면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엄지를 사용하는 국궁과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활을 쏘는 양궁의 차이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연무대 사무실에서 바라 본 수원화성. 화살 깃 사이로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연무대 사무실에서 바라 본 수원화성. 화살 깃 사이로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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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발동해 '이성계 장군이 진흙을 묻힌 화살로 구멍 뚫린 물동이 구멍을 막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게 실제 가능한지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지자 "최근에 국궁, 양궁대회에서 과녁에 꽂힌 화살 끝을 맞추어 쪼개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일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옛날에는 활쏘는 것이 일상생활이었고 지금보다 수준이 더 뛰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다소 의외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어깨결림 증세를 고치기 위해 국궁을 시작했는데 어느 듯 11년이 흘렀다'며 건강한 웃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는 허선(61)씨는 '골치 아픈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활을 10발 정도 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딸이나 사위들에게도 국궁을 권하는 중이란다.

허선씨에게 국궁을 취미로 할 경우 드는 비용에 대해 물었다.

- 활과 화살은 얼마정도 합니까?
"활이 20만원 가량 합니다. 화살 10~15개 마련하는데 10만원 정도 소요됩니다. 30만원이면 활과 화살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 다른 부속품은 필요하지 않나요?
"화살을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각지 등이 필요하나 이런 것은 선배들이 공짜로 제공해줍니다."

- 회원가입비는 없나요?
"입회비가 10만원입니다. 그리고 매달 2만원씩 월회비가 있습니다."

- 활을 쏘는 정해진 시간이 있나요?
"없어요. 언제든지 와서 활을 자유롭게 쏠 수 있습니다."

화살을 쏘고 난 뒤에는 직접 주워온다. 과녁과의 거리가 145미터. 쏘고 줍고, 왔다 갔다 하면 자연히 운동이 된다.
▲ '내가 뿌린 것은 내가 거둔다' 화살을 쏘고 난 뒤에는 직접 주워온다. 과녁과의 거리가 145미터. 쏘고 줍고, 왔다 갔다 하면 자연히 운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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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 6단으로 명궁의 반열에 오른 15년 경력의 한창석(40)씨는 '몸이 허약했는데 활을 쏘고 난 이후로 튼튼해지고 아픈 데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활을 쏠 적에 하단전으로 호흡하고 평소에 쓰이지 않는 근육을 사용하게 되니까 그런 모양'이라고 말한다.

국궁 승단 기준
승단은 9순(45발)을 쏘아 맞추는 숫자를 기준으로 심사하여 결정하는데 1년에 2단계까지 허용한다.
3급 : 21개 이상     2급 : 22개 이상
1급 : 23개 이상     1단 : 25개 이상
2단 : 28개 이상     3단 : 29개 이상
4단 : 30개 이상     5단 : 31개 이상
6단 : 33개 이상     7단 : 35개 이상
8단 : 37개 이상     9단 : 39개 이상
(출처_대한궁도협회)
몇 발을 명중시켜야 6단이 되냐고 물으니 45발을 쏘아서 33발 이상을 과녁에 맞춰야 자격을 준단다. 한창석씨도 조그만 더 노력하면 정조처럼 조만간 신궁의 경지에 이를 것 같다.

지금의 연무대 건물은 87년도에 만들어졌지만 활터는 210년 전 정조임금이 별시 무과를 시행했던 유서 깊은 곳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정옥선(72)씨는 여자의 몸으로 45년간 집궁(활 쏘는 일)을 놓지 않고 있다.

나이에 비해 얼굴이 곱다. 활을 쏘면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져 피부가 고와지고 몸도 건강해지며 가정도 평안해진단다. 그녀는 활쏘기가 끝나면 수원화성을 한 바퀴 돌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국궁 경력 24년의 공창겸씨가 각궁을 다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궁협회에서는 5단이상 명궁들에게 개량 활보다 전통 활 사용을 권하고 있다.
▲ '전통 활'인 각궁 국궁 경력 24년의 공창겸씨가 각궁을 다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궁협회에서는 5단이상 명궁들에게 개량 활보다 전통 활 사용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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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과녁 문양은 한문의 같을 동(同)자 모양으로 화살이 과녁 어느 곳에 맞아도 동일하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라며 조금은 심오한 말을 전해 준 24년 경력의 공창겸(59)씨는 일부러 기자를 위해 전통 활인 '각궁'을 수선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각궁을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전국에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전통 활인 각궁이 개량된 활보다 충격 흡수가 뛰어나고 더 멀리 날아가지만 습기에 약해 사용하고 난 뒤 점화장에서 습기를 말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국궁협회에서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5단 이상의 명궁들에게 각궁 사용을 권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활에 관한 한 어느 민족보다 뛰어난 재주를 지닌 민족이지만 오늘날 국궁 인구는 기만명에 불과하다.

<활을 쏘다>의 저자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는 국궁을 이렇게 설명한다.

"활을 당기는 팔은 동(動)이고, 땅을 버티고 선 두 다리는 정(靜)이다. 또 날아가는 화살은 동이고 멀리 우뚝 서 있는 과녁은 정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오롯이 하나가 된 경지. 그래서 활쏘기는 '정중동의 예술'이다. '고요함의 동함'이야말로 국궁의 핵심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하나되는 정중동의 예술인 국궁.  "무엇이든 가득 차면 못 쓰는 것"이라며 일부러 마지막 화살을 과녁에서 벗어나게 했던 정조대왕의 절제와 겸손의 미를 국궁을 통해 터득한다면 우리네 삶이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멋지지 않을까?

수원화성 연무대 국궁 체험 프로그램
"오늘은 나도 정조의 후예다"
초등학생들이 국궁체험을 하기 위해 교사의 인솔을 받아 수원화성 연무대를 단체로 방문했다. 아이들도 이 날 하루는 신궁 정조대왕의 후예가 된다.
 초등학생들이 국궁체험을 하기 위해 교사의 인솔을 받아 수원화성 연무대를 단체로 방문했다. 아이들도 이 날 하루는 신궁 정조대왕의 후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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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 체험은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가능하다. 4학년 미만일 경우 활을 당기기가 힘들다는 이유다. 체험과녁거리는 대략 40미터. 활과 화살은 갖추어져 있으니 준비물은 없다.

주말에는 150명 정도가 방문한다. 지금은 동절기라 숫자가 적지만 하절기에는 주말에 300~400명이 찾아온다. 화살 5발에 1000원인데 더 쏘고 싶은 사람은 매표소에서 추가 구매하면 된다. 주말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추가 매표가 어렵다고 한다. 

- 국궁 체험 시간 : 하절기 - 09:30 ~ 17:30, 동절기 - 09:30 ~ 16:30

- 국궁 체험 지정 시간 : 매시 30분 (점심시간 제외)
  1시간 단위를 원칙으로 운영, 단체 관광객들이 희망할 때는 수시 가능

- 1회당 참여인원 : 15명을 기준으로 하나 여건에 따라 조정 가능

- 체험 내용 : 국궁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및 이해(5분), 기본 자세 설명(3분), 국궁쏘기(5발, 5분)

- 요금 : 국궁체험 1회 5발 - 1000원, 추가 5발 - 1000원(최대 20발을 넘지 못함)

- 예약 접수 : 031) 255-8910 / 228-2763


태그:#국궁, #수원화성연무대, #정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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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tracking photographer. 문화, 예술, 역사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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