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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성격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서로 다른 종끼리 만나듯 낯선 것이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됨.
▲ 'love3', 함진 남녀의 성격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서로 다른 종끼리 만나듯 낯선 것이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됨.
ⓒ 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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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함진(1978~)은 미술관에 온 관람객들을 참 곤혹스럽게 만드는 작가다. 그의 전시장은 겉으로만 대충 보면 텅 비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쪽 벽과 바닥 사이의 틈에 길이가 1~2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작은 사람들이 이루는 세상이 있다. 조금이나마 편한 관람을 위해 미술관 측은 방석과 손전등까지 마련해 놓았다.

몇몇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 마침 한 여성이 자신의 친구에게 작품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우선 방석을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어. 그런 다음 손전등으로 하나씩 비춰가면서 봐야 해.” 그 말을 들은 나도 약간의 불편함과 민망함을 무릅쓰고 작품을 감상했다. 어린 아이들은 아예 바닥에 배를 깔고 구경을 한다. 혹시나 시력이 좋지 않은 어른들은 돋보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함진은 스스로 즐기는 것만이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함진은 스스로 즐기는 것만이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 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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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작업하는 작가, 함진

26일 오후 2시, 그의 작품들만큼이나 실제로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을 띤 작가 함진과의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태평로 2가에 위치한 로댕갤러리에서 약 50여명의 관람객들과 함께 그의 작품 소개를 비롯하여 작가와 관객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뭔가 멋있고, 근사하게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건 제 체질에 안 맞더라구요’ 라며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꺼냈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한다. 즉, 손에 잡히고 눈에 띄는 것보다는 손 닿으면 부서질 것 같은, 보일 듯 말 듯 존재하는 작고 사소한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가진 것.

또한 그는 어떻게 하면 미술작업을 스스로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작가다. ‘내가 재미있어야 남들도 재미있게 봐주는 거죠. 작업 중이던 작품도 만약 제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중간에 관둬요’ 라며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돈벌이를 위한 미술은 생각하기 싫은 문제라며,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상업성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작업에 집중이 되질 않는다고. 가끔은 돈이 아닌 물물교환으로 작품을 팔고 싶다고 말해 관람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내 방식!

‘제 작품은 뭔가 대단한 뜻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하지만 제 생각을 담았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요?’

작가는 비록 자신이 남들과 달리 비주류적인 방식으로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캐릭터가 또렷한 자신의 작품들에 항상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시절에, 교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자신의 작품을 평가해달라고 여러 차례로 요구한 끝에 전시에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때는 제 작품에 무지 자부심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작가들 것들에 비해서 좀 허접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죠’ 라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꺼냈다. 이에 덧붙여 작가는 ‘이정도의 상상력은 아마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일 거라며 자신은 ‘보이는 것을 얼마나 세세하게 시각화하여 나타내느냐’가 작품의 주안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그가 만든 ‘작은 사람들’이 상처 받기 쉽고 너무 약해서,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해도 찌부러지는 모습이 자기 자신과 꼭 닮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한때 사람들과 어울려도 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는 작가는 그때부터 혼자만의 작은 세상을 만드는 작업에 뛰어들었던 것. 작업에 영향을 준 사람도 미술계에선 거의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평소에 영화와 만화책, 낙서하기, 혼자 노는 걸 더 좋아한 것이 더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한다.

폭탄 위에 세워진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작품명 <폭탄 위의 도시>, 함진 폭탄 위에 세워진 도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 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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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재료는 작은 곤충, 점토, 먼지?!

그의 작품은 대부분 보잘 것 없고 쓸모없는 것들로 만들어진다. 작품 <폭탄 위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폭탄을 직접 미군부대에서 구해오기도 하고, 죽은 개미, 파리, 하루살이 같은 곤충들을 잡아야 할 때도 있다. 또한 뾰족한 바늘은 섬세한 표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다고.

‘요즘은 진공청소기 안에 있는 먼지에 관심이 많아요. 먼지를 이루고 있는 것들도 자세히 보니까 종류가 참 다양하더라구요.’ 그는 초기 작업을 위해 주로 장난감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합성 점토 등을 이용하다가 최근에는 자신의 방안에 뭉쳐서 굴러다니는 먼지들에게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먼지로 작품을 만들다니, 좀 지저분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작가 함진만이 할 수 있는 기발한 도전이다.

지난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그가 내놓은 출품작이 모두 팔리면서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은 함진. 하지만 어느 날, 야외와 연결된 난간에 설치한 그의 작품이 하나씩 없어지는 일이 생긴 것이다. 며칠 후 범인이 잡혔다.

‘알고 보니까 거기 살고 있던 개미들이 조금씩 제 작품을 다른 데로 옮기는 거였어요. 저에겐 중요한 작품들인데 개미들에겐 한낱 장애물인 셈이었죠.(웃음)’

순수하고 성격 좋은 청년인 그는 이번 5월에 네덜란드에서 열릴 예정인 전시에선 어떤 해프닝이 일어날지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작가는 아직 이런 자리가 어색하다며 수줍은 미소를 띄고 있다.
▲ 행사를 마치고 나서 작가는 아직 이런 자리가 어색하다며 수줍은 미소를 띄고 있다.
ⓒ 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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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장롱 밑 깊숙한 곳에 떨어진 동전을 찾으려고 애써본 적이 있는가? 함진의 작품은 그 만큼의 노력에 의해서 발견해낸 동전과도 같다고 말하고 싶다. 평소에는 그저 사소하고 흔하게 보이는 것들도 가끔은 우리에게 작은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함진의 작품을 찾아낸 순간 사람들은 저절로 ‘씨익’ 웃음을 짓는다. 이것이 바로 그가 바란 예술의 힘이 아닐까. 흔히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어린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유지해야 한다는데. 유독 더 어린아이 같은 눈과 감성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함진. 앞으로 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함진, 신창용, 정연두, 천성명, 최호철 등이 참여한 <나의 아름다운 하루>전은 2월 24일까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다.



태그:#함진, #로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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