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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 원형을 디지털 콘텐츠 형태로 가공, 문화콘텐츠산업과의 접목을 꾀한 문화원형콘텐츠. 역사 다큐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한 장면의 그래픽에서 교육교재, 드라마 소재에까지 우리 문화원형을 디지털화한 문화원형 콘텐츠가 활약하고 있다. 문화원형콘텐츠 활용 실사례를 분야별로 살펴본다… <기자 주>

 

- 차례

1 방송·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2 디자인
3 전시
4 에듀·도서

 

'<별순검>, 케이블사상 최초 마의 4% 시청률 돌파'


“대한민국을 놀라게 할 과학 스릴러”. 새 드라마 제작에 들어가는 MBC 프로덕션 이승영 PD의 포부였다. 그러나 웬만한 재미나 볼거리로는 티도 나지 않는 상황. 전세계를 사로잡은 <CSI>의 여파로 저마다 ‘과학수사극’을 표방한 유사 프로그램들이 이미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분명 달라야 하는데, 그게 뭘까.

 

고민 해결의 단초는 한 신문에서 발견됐다. 조선시대 미제사건 에피소드를 다룬 한 교수의 칼럼에서 ‘조선시대 과학수사극’이라는 목표를 잡아낸 것. 그러나 관련 자료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문화원형닷컴(www.culturecontent.com)의 ‘검안’(http://egurman.culturecontent.com) 사이트.

 

“사이트를 통해 조선시대 인명사건을 기록한 법의학서 <중수무원록>이나 정약용이 쓴 법정서인 <흠흠신서> 등 당시 실제 있었던 수백 건의 사건 기록을 접할 수 있었죠.”

 

덕분에 일일이 고서를 뒤지거나 도서관을 헤매지 않아도 됐다. 검안 문화원형콘텐츠는 법의학 지식은 물론 백성들의 생활상까지 당시 조선사회를 면밀히 보여줬다. 진흥원의 협조로 제작진은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자문단 교수들을 만나고, 닷컴 사이트에 정리된 내용들을 모조리 출력해 읽었다. 기록의 한 구절과 캐릭터 하나가 드라마에 주요한 영감을 줬다.

 

기록과 상상력, 발로 뛴 노력이 더해져 총 20편의 에피소드가 구성됐다. 이것이 곧 2005년 잠시 MBC를 통해 방영된 <추리다큐 별순검>이다. 드라마는 그러나, 저조한 시청률을 이유로 중도하차하게 됐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적인 수사방법과 뚜렷한 매력을 발산하는 캐릭터들, 여타 수사극과는 다른 인간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있는 이야기에 소리없이 마니아들도 생겨났다.

 

 

캐릭터를 손보고, 이야기를 더욱 확장하는 등 2년간의 숨고르기를 거친 후 <추리다큐 별순검>은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MBC 드라마넷, 이하 <별순검>)으로 다시 태어났다. 케이블사상 최초로 마의 4% 시청률을 뛰어넘고(최고 시청률 4.3%), 가히 케이블계의 ‘대장금’으로 불리게 됐다.

 

우리만의 이야기와 정서, 소재


“‘조선시대 수사극’이 아니죠. ‘조선시대 과학수사극’이라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드라마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승영 PD는 이렇게 밝혔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과학적인 수사방식-썩은 식초로 혈흔을 찾아내고, 죽은 이의 입안에 넣은 밥을 닭에게 먹여 독극물 여부를 알아보는 등-은 매우 이색적이어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19세기 초반, 아관파천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배경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민초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색다른 이야기로 다가왔다.

 

여인들이 축첩 반대 시위를 벌였던 것,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 등.

 

드라마가 근세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첨단장비는 꿈도 꿀 수 없던 상황. 그러나 제작진은 역으로 이 상황을 이용해 ‘미드(미국 드라마)’와는 다른 결정적인 차별점을 뒀다. 화려한 볼거리 대신 민초들의 삶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그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촘촘하고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있는 과학수사극, 드라마가 있는 과학수사극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죠. 한계를 극복하도록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주목받지 못한 한 인생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죽고 나서 주목받고, 감춰진 기구한 인생이 드러나게 되는 점에 이야기의 묘미가 있었죠.”

 

문화원형, 이야기 속 숨은 조미료에서 주재료로

 

문화원형콘텐츠 활용의 대표사례로 흔히 영화 <왕의 남자>가 손꼽히곤 한다. 왕이 연회를 베풀던 근정전 교태전 바닥 디테일을 완성시키는 데 문화원형콘텐츠가 사용돼 주목받은 것. 말하자면 문화원형콘텐츠는 숨어서 이야기를 더욱 실재감 있고 정교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또, 이미 <KBS스페셜>과 같은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과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소재로서 문화원형이 익히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화원형콘텐츠는 이야기 소재 그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을 위한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문화원형닷컴 160여 개 각 과제 속에 수십, 수백 편씩 집적되고, 이야기의 원형으로서 혹은 이야기를 이끄는 소재로서 기여하고 있는 것.

 

문화원형사업을 기획, 주관하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정우채 문화원형팀장은 “최근 들어 문화원형콘텐츠 활용이 동영상이나 그래픽에 한정되지 않고, 이야기 자체나 프로그램 자체를 이끄는 콘텐츠로 활용 범위가 차츰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가택신을 소재로 한 어린이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문화원형콘텐츠를 활용한 작품이다. <고스트 팡팡>이라는 이 드라마는 삼신할매, 조왕신, 성주신 등 우리 전통 가택신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평일 오후 4시 30분이라는 시간대로 인해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매우 색다른 시도로 평가받는다. 방영 이후 현재는 관련 필름북과 완구 등이 출시되고 있다.

 

<고스트 팡팡>을 제작한 이가미디어 이혜형 대표는 “사라져가는 전통을 아이들이 한 번 더 접할 수 있게 한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드라마”라면서 “전통과 현대를 잇는 퓨전의 소재로서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과학수사, 가택신 등 우리 문화원형이 주목받는 것은 이야기의 구체적인 동기와 함께 소비자, 즉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예산에 특별한 스타 없이도 큰 성공을 거둔 <별순검>은 우리만의 독특한 이야기에 성공열쇠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승영 PD는 <별순검>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1970년대말부터 미국 내에서 과학수사기관 필요론이 대두했죠. 사실 19세기 말부터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무원록>이 쓰여진 원나라(1200년대)나 중세 조선시대에도 썩은 식초로 혈흔을 찾고, 사계절별 시체 부패 시간을 정리해 놓는 등의 과학적인 시도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지금 과학수사극 하면 흔히 ‘미드’를 생각하지만 이미 수백 년 전 동양에서도 과학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아마 세계적인 강점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별순검>은 세계적으로도 통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즌1의 폭발적 성공에 힘입어 <별순검>은 올 8월께 시즌2가 방영될 예정이다. 현재 작업중인 시즌2에는 사방지나 해외 유학파 등 좀더 아웃사이더적인 인물들이 등장,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전망. 시즌1의 해외 판권에 대한 반가운 소식도 속속 날아들고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동남아와 아랍권에 이미 선판매가 이뤄졌으며 일본 공중파에도 1월 중 판권이 팔려나갈 예정입니다. 미국은 1월 3주부터 한인방송 방영이 시작되고, DVD도 곧 발매됩니다. 움직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MIPTV 박람회에서 <CSI> 포스터 옆에 <별순검> 포스터를 세우는 것, 저희 제작진의 목표입니다.”

 

실제 사건 반영한 50편의 시나리오 눈길

엠에이컴-서울대 규장각 기획, 조선시대 ‘검안’ 홈페이지

 

해부는 절대 불가. 오로지 시체의 외상을 면밀히 조사하고 피의자와 증인의 심리 내용만으로 범인을 잡아내야 했다. 초검, 재검도 부족해 5검까지 가는 일도 많았다. 이 모든 내용이 일종의 법정조사 보고서인 ‘검시문안(儉屍文案)’에 하나하나 꼼꼼히 적혔다.

 

드라마 <별순검>이 탄생하는 데 한몫을 해낸 엠에이컴-서울대 규장각 특별 연구팀의 ‘조선시대 검안 홈페이지(http://egurman.content.com)’.

 

개발팀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600종의 검안류 자료, 책으로는 20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검안 자료와 법의학 자료인 <중수무원록>과 <신주무원록>을 토대로 ‘조선시대 검안기록을 재구성한 수사기록물 문화콘텐츠 개발’이라는 과제를 수행했다. 조선시대 살인사건 보고서가 현대어로 고스란히 번역된 셈이다.

 

본래 법의학서 <신주무원록>은 원나라 왕여가 쓴 <무원록>을 저본으로 조선시대 최치운 등이 세종의 명으로 편찬한 의학서인데, <무원록>은 본래 중국 원나라 왕여가 쓴 검시 지침서다. 책이름 그대로 (죽은이의) 원통함을 없애기 위해 살인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참고했던 책. 또, <중수무원록>은 조선 정조 때인 1792년 서유린 등이 중국 <무원록>에 토대를 두고 <중수무원록대전> 원문에 토를 달아 본문을 국한문혼용체로 번역한 것이다.

 

사이트에는 현재 번역서 50편, 요약서 531종, 삽화 520종에 드라마, 영화, 게임 등 각종 문화콘텐츠 장르에 적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 50편 등이 수록돼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600여 편의 자세한 검안기록 중에 선정된 50편을 바탕으로 한 범죄 수사 추리물 시나리오가 눈에 띈다.

 

허구의 인물 ‘홍삿갓’과 ‘마갑동’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나리오는 조선시대 폭행과 강도, 강간, 살인 사건들을 풀어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주인공들을 제외하곤 모두 실재 피해자나 가해자 등이 시나리오에 등장한다는 점. 그러므로, 시나리오를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 사건의 양상과 해결과정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평범한 이들의 ‘스토리텔러 시대’

KBS-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기획, 이색 프로그램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발전소’

 

오늘날 콘텐츠의 성공여부는 ‘쌈박한 이야기’로 귀결되고 있다. 화려한 볼거리와 억대 몸값의 스타로 무장한 콘텐츠들도 이야기의 뒷심이 없으면 맥을 못 추고 어이없이 꺼꾸러지는 상황.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정보혁명에 이어 우리는 바야흐로 ‘이야기 혁명’의 세기를 맞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된 <해리 포터> 시리즈가 영국 경제에 기여하는 돈은 연간 5조 7천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영국 이야기의 힘은 3만여 개에 달하는 ‘스토리텔링클럽’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문화원형콘텐츠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난해 KBS와 함께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을 한 편 선보였다. 이름하여 스토리텔링클럽 ‘이야기 발전소’. 이야기꾼을 모아 더욱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입담 좋은 실력가라면 누구나 이야기꾼으로 참여 가능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의 형태로 구현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방송 3사에서 한 번 시도되지 않은 이 독특한 프로그램의 인기는 소리없이 오르고 있다. 자체 운영중인 네이버 카페 ‘KBS 문화지대C 스토리텔링클럽’(http://cafe.naver.com/stellingclub.cafe)에는 현재 700명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고,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스토리텔링클럽’ 결성을 앞두고 있다.

 

진흥원은 동아리 인력과 기획·창작 아카데미 인력을 스토리 텔러로 활용하는 한편,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을 프로그램 자문단으로 제공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매주 목요일 밤이면 3편의 신선한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보고 들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별순검, #문화원형,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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